정치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정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다못해 권력을 이용해 뇌물이나 향응을 받으며 일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려 하더라도 바로 그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권력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에 다리 하나를 놓으려 해도, 더 많은 뇌물과 향응을 받아 사치를 누리려 해도 결국은 권력이 손에 쥐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같은 정치인의 추구에 대한 동의를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동의하여 그가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정치인이 목표하는 것에 자신의 그것을 일치시킴으로써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낸다. 정치인이 추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유권자 자신이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그래서 선거란 어떠한 경우에든 정책선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당선되었을 때 정치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그것을 전제한다. 즉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 결과는 결국 당선자가 장차 가지게 될 권력에 의해 추진되어질 정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유권자가 당선자를 선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것은 선거에서 패배한 측도 마찬가지다.
당장 묻는다. 무엇 때문에 특정후보를 지지했는가? 바라는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정치인의 공약이든, 혹은 그동안 보여온 행보이든, 그가 평소 보여왔던 모습이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치가 현실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책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겼다면 당연히 그같은 정책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이 과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아니 과반이 아니라도 좋다. 가장 많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마침내 당선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대한민국 사회의 다수가 그것을 원하고 그에 동의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그러고자 하는 후보가 있다. 그런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옳음을 다른 유권자를 통해 확인했다.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는 것은 최소한 그 과반에게 그들이 정의로써 여겨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투표를 하지 않은 나머지 25%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당선은 최소한 굳이 반대할 필요없는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을 터다. 당연히 승자는 자신이 약속한, 자신이 평소 보여왔던 모습 그대로를 현실에 보여주려 한다. 유권자들이 그를 지지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승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바로 그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있다.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의 공존이다. 선거가 전쟁과 다른 이유다. 전쟁에서의 승리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선거는 그럼에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함으로써 서로 공존을 꾀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로 겨루었으니 이제 상대가 승리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존중하고 인정해준다. 만일 진정 그것이 잘못되었고 그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면 다음 선거를 기약하면 된다. 최소한 선거가 끝나고 일정한 기간 정도는 하고자 하는 바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선거에서 이긴 이유일 것이므로.
최근 인터넷에서 과열된 어떤 패배의 후유증들에 대한 우려를 갖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전쟁이 아니다.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다. 정히 인정할 수 없는 상대이고 그래서 용납할 수 없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선거라고 하는 제도를 받아들여서는 안되었다. 차라리 전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선거를 치렀고 선거에서 이기기를 바랐다. 반대로 패배했다. 그렇다면 인정해야 한다. 최소한 과반의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은 정의가 아니었다. 다음을 기약한다.
사실 그동안 정책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는 바로 이러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선과 악으로 나눈다. 서로를 상종못할 집단으로 여긴다. 그렇다 보니 정책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내 편과 네 편만이 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진지하게 정책에 대해 논의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과연 저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바르고 옳은 것인가 검증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정책에 대한 판단여부와는 상관없는 소모적이고 지루한 논쟁과 갈등만 이어진다. 그것은 다시 진영의 대립만을 불러온다. 선거란, 아니 정치란 그런 것이다.
선거에 이겼으니 마음껏 정치를 펼친다. 그것을 현실에 구현함으로써 모든 국민들로부터 검증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다음 선거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정책은 진영논리의 뒤에 숨은 채 무엇을 하려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만일 지금의 결과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책선거는 선거에서 이기고 난 뒤 승자가 다수의 유권자에게 선택받은 그것을 마음껏 펼쳐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설사 비판이 있더라도 그것은 승자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패자는 패했다. 즉 선택받지 못했다. 다수가 아니다. 승리한 다수의 내부에서 비판도 하고 검증도 이루어진다. 그것은 승자의 권리다. 만일 그것을 납득할 수 없다면 최소한 1년의 시간은 두었다 차근히 그동안의 문제들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대안이 다음 선거에서는 승리의 키워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선거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이다. 짐승과는 달리 사람은 아무리 목이 마르다고 샘으로 끌고가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인간이 갖는 존엄함일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 독선과 독단, 나아가 독재로 이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은 지켜본다. 오히려 지지해준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도록. 잘하면 좋은 것이고 못하면 그것은 다음의 기회가 되어준다. 그만한 자신이 없다면 민주주의따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단은 지켜본다. 공약을 그대로 따르는지. 그것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어떤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이기지 못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진정 막아야 하고 말려야 하는 것이었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먼저 최선을 다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패했다. 책임은 함께 진다. 역시 민주주의의 선거가 갖는 전제다. 부정하려 해서는 안된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모두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서거를 치르고 경쟁을 한 것이다. 전쟁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음 선거를, 최소한 승자에 대한 배려가 끝나고서 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이며 양식이다. 바로 승자가 되었을 때 패자에게 요구했을 그것이었을 터다. 역지사지란 이런 때도 쓰인다. 상대주의이며 상호주의다. 침착해지고 냉정해져야 한다. 이성이야 말로 인간이 존엄한 이유일 것이다.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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