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면 된다'다. 해도 안되는 건 안된다. 어떻게 해도 안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도전하고 노력해봐야 괜한 힘만 빼고 말 뿐이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그같은 필자의 생각을 조금은 수정해도 좋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해보지 않으면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없다. 일단 해보고 나서 그것이 되는지 안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국진의 파마나 이경규의 홀인원처럼.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는가 의심부터 하고 있었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대로 아무일없이 넘어가더라도 달리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벌써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해가 넘어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니 끝이 보인다. 단지 하지 않았을 뿐.
주상욱의 슈퍼카에 대한 꿈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할 것이다. 대당 수십억을 호가한다. 차야 어떻게 장만한다 하더라도 그 유지비 또한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방송국의 제작비로도 그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파마 정도야 가까운 미용실에서 단 몇 시간만 투자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니던가. 설사 실패하더라도 - 실제 김국진의 경우도 처음의 파마머리는 도저히 못봐줄 정도였지만 이후 미용사들에 의해 제법 그럴싸한 근사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시 원상복귀는 못하더라도 또다른 더 멋진 스타일로 다시 꾸며볼 수는 있다.
물론 제주도는 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나 있을 때에야 크게 결심을 하고 제주도를 한 번 방문한다. 하지만 그 특별한 일이라는 것도 결국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당일치기였다. 그 멀기만 한 제주도가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바로 하루 거리로 가까워진다. 비행기 요금도 비싸고, 하루라는 일정 또한 상당히 부담스러울 테지만, 그러나 반가운 얼굴이 있고 그와의 정겨운 시간들이 있다. 뜬금없는 방문이었지만 별 것 없는 대화속에 의미있는 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허수경의 딸과 주상욱은 헤어지기 아쉬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마음먹기가 어려울 뿐 현대의 과학문명은 제주도까지 하루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이경규의 홀인원은 그 가운데 백미였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경규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 크게 기대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날씨였다. 눈이 내리고 땅은 얼어있었다. 더구나 벌써 어두워진 밤이었다. 바로 앞에 홀이 보이는 짧은 코스지만 과연 그동안 하지 못한 홀인원이 이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할 것인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경규가 있었고, 그를 돕는 김국진과 이윤석, 김준호가 있었다. 말은 짓궂게 해도 주상욱 역시 추운 겨울에 일부러 밖에 나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니까 된다. 운이고 우연이었을 테지만 그만큼 수백번의 티샷을 날리는 노력이 있었기에 그 한 번도 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린 듯한 깨끗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잔디위를 굴러 홀컵으로 떨어졌을 때 필자역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어쩐지 그 장면 하나로 2013년은 바라던 모든 일이 뜻대로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아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아니 중간에라도 포기하고 그만두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짜릿함이었을 것이다.
굳이 맑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가 아니어도 좋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한다는 자체가 아니던가. 투덜거리며 모인 것 치고는 자정을 넘긴 시간임에도 모두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김준호가 얼마나 소속 개그맨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가 알 수 있었다. 모일 수 있어서 즐겁고, 모여서 게임을 하며 단합할 수 있으니 또한 즐겁고, 그리고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 그것이 다시 즐겁다. 한겨울 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결국은 그것을 위해 소속개그맨들도 운동회를 열고자 했던 것이었다. 시간과 장소는 그 다음 문제다. 만일 때가 아니고 번거롭고 성가시다고 포기했다면 짧지만 즐겁던 그 시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년이 아닌 올해이고, 다음이 아닌 지금이다.
윤형빈의 깜짝프로포즈는 그러나 준비에 들어가기 전부터 정경미에게 들키고 있었다. 언론의 스포일러 때문이었다. 언론의 보도를 보고 윤형빈이 프로포즈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 정경미는 윤형빈이 준비하는 내내 설레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윤형빈이 바보같이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미 미리 알고 있었고, 더구나 뻔하게 보이는 이벤트였지만,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온 진심어린 한 마디가 그녀의 감정을 북받치게 만든 때문이다.
미리 알았고, 혹은 너무 늦었고, 아니면 너무 뻔하게 보이는 이벤트였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형빈이 정경미에게 프로포즈하는 그 순간이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 온 그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너무 늦었다고 다시 며칠 뒤로 늦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 멋지고 더 화려한 이벤트로 정경미를 놀래켜주고 또한 역시 감동시킬 수는 있었을 테지만 오늘의 이 감동과는 전혀 다른 감동이었을 것이다. 오늘이 아니면 안된다.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기에 가능한 감동이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올해 달리는 10Km와 내년에 달리는 10km는 전혀 다른 의미다. 올해 달리는 10km는 채 완주하지 못한 철인 3종경기의 나머지 10km다. 그러나 내년에 달리는 10km는 그냥 단지 10km의 단축마라톤에 불과하다. 그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이윤석이 눈까지 내리는 추운 겨울 10km의 결코 짧이 않은 거리를 달리려 한 것은 끝내지 못한 자신의 경기를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자신의 도전을 마무리짓기 위해서였다. 올해가 아니면 안된다. 이윤석은 남자다. 항상 그에게 감탄한다. 누구보다 부실한 몸으로도 그는 항상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그리고 극복해낸다. 우습지만 우습지 않은 이유다.
주상욱을 제외하고 하나같이 의미있었던 미션들이었다. 그리고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든 미션들이기도 했다. 혹시 필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는가? 어차피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레 포기하고 만족해버린 일들은 없었는가? 마지막의 마지막에라도 혹시라도 한 번 쯤 시도해 보았다면 어쩌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한 해가 가는 의미와 새해를 맞는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늦은 것이 아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일 분.
잘생겼다는 건 분명 대단한 재능일 것이다. 짓궂고 때로 얄미운데 그것이 그렇게 악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남자의 자격>에 익숙해지며 상당히 공격적인 캐릭터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런 공격성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김준호를 비롯한 <남자의 자격>멤버들의 힘일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활력이 돈다. 김성민과는 다르다. 김준호가 특유의 허술함으로 주상욱과 대비를 이룬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이경규가 있다.
작지만 가까운 일상들이 있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들과 작고 유쾌한 웃음들이 있다. 생각케 한다. 일상의 재발견이다. <남자의 자격>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PD에 대한 우려른 한 번에 날려버린다. <남자의 자격>의 부흥기라 할만하다. 이런 것을 기대했었다. 재미있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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