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서영이>는 드라마다.
누군가 현실에서 서영이에게 말한다.
"그러면 안돼! 아버지랑 화해해!"
차라리 그 사람과 의절하고 만다.
사람의 감정이 그렇다. 더구나 가족이라면 더 그렇다.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무심할 수 없느 관계다.
타인에 대한 증오는 무관심으로 해소할 수 있지만 가족에 대한 증오는 그렇게 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다면 어땠을까?
벌써부터 낸시랭이 잘못했네 아버지에게 문제가 많네 말들이 많다.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다. 더구나 아무리 그래도 남들이 아버지를 욕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때로 아예 죽은 사람 취급 하는 쪽이 더 편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면 인정해 준다.
어차피 내 가족도 내 아버지도 아니다.
효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효라고 하는 그 자체마저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것이다.
가족이기에 더 예민하고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단편적으로 액자에 걸린 이야기들로 판단한다.
어렵다. 솔직히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말하려면 심장이 너무 무거워진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중요한 건 남의 이야기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는 캐릭터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수 있지만,
현실의 인간은 보다 복잡한 입체의 세계에 살고 있는 때문이다.
참 비열하다.
그런 식으로 남의 가정사를 파헤쳐 모두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편에 서서 낸시랭을 비난하면 아버지는 좋을까?
그저 자기만족이다. 자기가 좋은 것이다. 타인을 상처입힘으로써 자기를 만족시킨다.
일단은 지나봐야 할 것 같다.
심정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먼저 동정하게 된다.
그것은 내 개인의 성향이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인간이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그동안 꾸준히 여러 글들을 통해 반복해 주장해 온 것이다.
어떤 사정들이 있을까? 그에 따라 더 동정하게 되거나 동정이 안타까움이 되거나.
혹은 낸시랭이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실망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섣부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말은 하기 꺼려진다.
너무 착하다. 너무 정의롭다. 그게 항상 너무 부담스럽다.
지켜본다. 판단도 유보한다. 다만 안타까움만을 지키려 한다. 인간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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