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직장의 신 - 계약직이라는 현실, 미스김과 장규직의 이유

까칠부 2013. 5. 22. 09:06

어느 정치인이 공약을 내건다.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

 

가난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며, 부자가 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그를 뒷받침할 여러 정책들을 구상해 실천한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 것인가. 그런데 만약 그 정치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모든 정책은 오로지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에만 촛점이 맞춰진다. 부자가 되기까지와 부자가 되고 나서에 모든 정책이 세워지고 시행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럼에도 부자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한 채로 남아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어찌하는가? 모두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남아있다면?

 

드라마가 굳이 미스김(김혜수 분)과 장규직(오지호 분)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일 것이다. 6년 전 그날,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고 있었다. 계약직이라고 하는 현실이 그늘이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날 같은 사건을 경험한 미스김과 장규직은 서로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죽은 진미자 계장을 대신해 계약직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는 삶을 살고자 했던 미스김에 비해 장규직의 경우 철저하게 계약직을 부정하며 오로지 안정된 정규직으로서의 삶만을 꿈꾸게 된다. 그들이 만난다.

 

이미 첨예한 현실의 문제로 대두된 계약직에 있어 그 대안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모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다. 하지만 계약직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정도(김기천 분) 과장의 경우처럼 정규직의 경우 그 쓸모가 다해도 정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안고 가려 할 때 그것은 모두 기업에 부담이 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하게 되면 그 만큼의 새로운 인력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일시적인 필요에 의해 고용된 인력은 필요없는 나머지가 된다. 그렇다고 더 이상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함께 가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필요한 만큼 고용하고, 다시 필요한 만큼 인력을 덜어낸다.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일 것이다.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기업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고용은 탄력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계약직이다. 굳이 정규직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는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고용해서 쓰는 단기노동력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현실적으로 정규직이 되지 못한 나머지 계약직들은 어찌하는가? 모든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 한다면 정규직이 되지 못한 나머지 계약직들의 처지는 어찌되는 것인가?

 

그래서 단추를 잘못끼웠다 하는 것이다.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계약연장을 얻어낸 것만으로도 계약직 노동자들은 잠시나마 마음을 놓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굳이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계약직으로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자기만의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계약직이라 할지라도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자기의 일에 보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이 갖추어져 있다면.

 

물론 미스김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그렇게 수많은 자격증을 개인이 따서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미스김 만큼은 아니더라도 계약직으로 있으면서도 계약과 계약의 사이 자기계발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임시로 쓰는 해고하기 쉬운 값싼 노동력에서 필요할 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필요한 인력으로 개념을 바꿀 수 있다면 -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정규직으로의 전환 역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미스김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렇게 했지만 정부와 기업, 사회 전반이 나서서 그를 보장해준다. 계약직으로 있으면서도 충분히 자기계발도 자아실현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 가장 확실한 대안은 정규직 전환일 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비용도 적게 들고 노력도 그다지 필요없다. 그에 비하면 계약직으로서 당당하게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살라는 것은 아예 사회구조 자체를 근본에서 뒤집어 엎자는 소리다. 계약이 만료되면 그때부터 공포가 시작된다. 다시 일자리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수입이 사라진다. 수입이 사라진다면 그나마 수입으로 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자기계발을 커명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경영실적의 악화에 따른 정리해고에 대해 노동자들이 과격하게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그때부터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지옥이 기다리게 된다.

 

소속이 있기 때문에. 안정된 직장이 있기 때문에. 꼬박꼬박 월급도 나오고 회사가 직원인 자신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준다. 해고의 불안에 떨 일도, 열악한 처우에 굳이 인내하거나 할 일도 없다. 충분히 자기 시간을 가지고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도 있고, 더 높은 곳까지 승진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잘못 판단했다. 장규직이 회사에 집작하는 이유 - 그것은 다름아닌 어머니와 닮기 싫어서였다. 계약직의 비참한 현실을 알기에 자기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겠다. 그래서 무시된다. 저들은 정규직이 되지 못한 계약직이기 때문에. 오로지 정규직만을 바라보느라 소외되어가는 계약직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계약직의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계약직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 점에서 무정한(이희준 분)의 존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정규직이다. 나름대로 엘리트다.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출세를 보장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계약직을 존중한다. 나름대로 그들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려 한다. 아직은 힘들다. 판타지다. 장규직이 아니었다면 좌천당한 것은 다름아닌 무정한이었을 것이다. 장규직의 마지막 선택, 것은 자신의 입버릇처럼 한식구인 무정한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통터치를 한다. 무정한이 인정한다. 황갑득(김응수 분) 부장과 회사에서 미스김을 인정하듯 무정한이 정유미를 인정한다.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다시 누군가의 승진으로 인해 관계가 역전되기도 한다. 자기만의 기술을 가지고 창업에 나서기도 한다. 정주리(정유미 분)은 회사원이 아닌 동화작가였던 모양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회사가 아닌 자기를 위해서. 정규직이니 계약직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행동에 옮기는가. 정규직이나 계약직과 같은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다. 답은 없다.

 

왜 계약직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그리고 기업들이 계약직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열악한 계약직의 현실에서 그들을 정규직으로 바꾸는가, 오히려 계약직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주는가. 미스김과 장규직처럼. 무정한처럼. 미스김의 잘못이 아니라는 장규직의 문자는 구원이 된다.

 

처음 시작과 이어진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대한은행의 건물에서 불이 닜다. 그 불로 진미자 계장이 죽었다. 장규직의 친어머니가 죽었다. 미스김은 미스김의 길을 걷는다. 장규직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해 걷는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나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해준다. 미스김이 장규직을 찾아간다. 마지막 남은 것은 사랑... 일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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