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고 만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을 것이다. 그만한 능력과, 무엇보다 적당한 처세술로 회사로부터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던 터였을 것이다. 이대로 별다른 일만 없다면 그의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만할 수 있었고, 부하직원들로부터도 싸가지라 불리울 수 있었다. 그는 그럴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런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하던 일들은 부하이던 구영식(이지훈 분) 대리의 차이가 되어 버렸고, 그의 출세를 보장해주던 황갑득(김응수 분) 부장의 옆자리마저 동기인 무정한(이희준 분)의 몫이 되어 버렸다. 무정한을 지방으로 좌천시키려던 황갑득이었지만 그의 기획안이 회사로부터 인정받으면서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윗선에 제대로 찍힌 장규직(오지호 분)이 아닌 무정한이 지금의 황갑득에게는 더 이익이 되는 가치있는 존재였던 탓이다.
사무실 직원들의 대우도 달라졌다. 아무 거리낌없이 허드렛일을 시키고, 커피 한 잔조차 눈치를 보아가며 자기가 직접 타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토록 자기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던 직원들이었건만 이제는 그의 존재가 그저 안쓰럽고 우스울 뿐이다. 더 이상 계약직이라고 함부로 대하기는 커녕 자기가 먼저 주눅들어 움츠러들고 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출세가도에서 미끄러진 이상 더 이상 장규직은 장교주도 무엇도 아닌 두려워할 대상도 동경할 대상도 아니게 되어 버린 때문이다. 그동안 장규직이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생각케 한다.
물론 장규직 자신은 매우 뛰어난 인재였을 것이다. 합벌도 좋고, 그동안 회사일을 통해 보여준 능력 또한 탁월했다. 그랬으니 젊은 나이에 그토록 빠르게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오만할 자격이 있는 유능한 직원이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도시락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단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자 장규직은 바로 개인용 플라스틱 도시락용기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리고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까지 직접 찾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황갑득 부장보다도 더 윗선에서 그를 안좋게 보기 시작한 이상 그의 앞날을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가 지금껏 누려온 모든 것들이란 장규직이란 개인의 능력이 아닌 회사의 선택에 의해 주어진 것들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흔히 말한다. 더 이상 계급이란 의미가 없다.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다. 장규직과 같은 노동자도 하청업체의 사장 앞에서 얼마든지 위세를 부리고 강압을 행할 수 잇다. 그렇다면 노동자라고 사용자보다 반드시 열등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하청업체 사장 앞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원청업체 직원의 힘이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계약직이라고 무시하고 윽박지를 수 있었던 장규직의 권력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회사가 신뢰를 접고, 자기보다 윗선의 눈밖에 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눈치를 본다. 정규직이지만 계약직의 눈치를 보며 사무실에 앉아 있다.
결국 마지막은 장규직이었던 것이다. 계약직에서 시작된 직장인의 냉혹한 현실은 마침내 누구보다 회사로부터 인정받고 미래를 보장받았던 장규직을 통해 마지막 방점을 찍게 된다. 하기는 장규직만일까? 황갑득 부장 역시 어느 순간 회사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더 이상 부장이 아지게 될 것이다. 부장의 자리는 유지하더라도 전처럼 주위에서 떠받들어주는 그런 힘있는 부장은 아닐 것이다. 같은 과장이라고 만년과장인 고정도(김기천 분)를 같은 과장으로 취급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는 회사와의 관계에서 단지 을의 위치에 불과하다. 장규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장규직도 그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새삼 모든 것을 잃은 처지가 되고서도 그의 표정은 해맑기까지 하다. 그런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다. 자기가 실수한 탓이다. 그래서 당연하게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맞게 되었다. 그렇다면 받아들인다.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반발하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바로 회사가 돌아가는 룰이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출세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은 오로지 회사로부터 인정받아 출세하는 것이다.
그것이 장규직이라고 하는 인간이었다. 자아니 자존이니 하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모호하고 형체도 없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직급이란, 그리고 권력이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다. 회사라고 하는 룰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재를 확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국가라고 하는, 민족이라고 하는, 혹은 학교나, 가족이라고 하는, 그리고 장규직은 가족이라는 말 그대로 회사라고 하는 구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설사 한순간에 미끄러지고 말아 더 이상 원래의 길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그 또한 자신이 동의한 회사의 룰이며 그로 인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닥에서부터 다시 위로 올라간다.
장규직이 미스김(김혜수 분)을 들개라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 문명사회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유분방함이 부럽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동경하는 마음도 있다. 미묘하다. 미스김이 장규직이게 이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가장 순수하다.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조직에 속해 있는 유형의 인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존경이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전혀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도 맞은편에 보이는 상대를 인정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하려 한다.
미스김이 은행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토록 마음으로 믿고 따르던 그가 바로 장규직의 어머니였다. 6년 전 그날 목숨을 잃은 그의 아들이 바로 장규직이었다. 미스김이 눈물을 흘린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자학을 터뜨린다. 과연 그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토록 오랫동안 방황하며 자신을 닫아놓으려 하는가. 비밀이 밝혀지려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풀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그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직장을 집이라 동료들을 가족이라 여기던 장규직, 그러나 그는 가족을 위해 집을 저버리고, 그리고 집으로부터 버림받고 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가족이다. 그곳은 그의 집이다. 어떤 편리한 인정의 논리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회사에 자신을 묻고 회사로부터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좌천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열심이다. 새로운 현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장규직으로 끝난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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