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손호영의 자살미수에 달린 어떤 리플들을 보며...

까칠부 2013. 5. 25. 00:33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은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외롭다. 죽으면 차라리 이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즉 죽으려고 하는 그 자체가 쉽게 편해지고 싶은 인간의 나약한 본능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약하기에 더 편해지려 한다. 약하기 때문에 더 안락한 무엇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죽으려 한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러 더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하는 경우란 드물다.

 

대개는 말로는 다하지 못할 메시지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하려 할 때 그같은 방법을 택한다.

 

그런 비장하고 단호한 결심이 없다면 대개는 최대한 고통이 덜한 방법을 쫓아 보다 쉬운 길을 찾으려 한다.

 

죽겠다던 사람이 불이 났다고 도망쳐 나왔다? 이해가 안간다? 우습다? 한 마디로 뇌가 없다는 뜻이다.

 

보다 쉬운 길을 쫓아 죽으려 한다. 그런데 불이 나서 순간 너무 고통스럽다. 그래서 피하려 한다. 본능이다.

 

그건 이해못할 무엇도, 우습게 여길 무엇도 아닌 인간이 갖는 본능인 것이다. 뭐가 문제인가?

 

쉽게 단정지으려 한다. 쉽게 결론지으려 한다. 그러 정작 자신이 아는 것은 종잇장 정도다.

 

그래서 얄팍한 머리로 대충 쉽게 역시 그 답을 내리려 한다. 그리고는 도취된다.

 

"난 똑똑해!"

 

음모론이 나오고, 불순한 의도가 나오고, 아주 명탐정들 나셨다. 조롱하는 인간들조차 있다.

 

다행히 그렇게까지 막나가는 인간들은 소수다. 그냥 쓰레기들이다. 상종하기도 싫다.

 

어째서 자살을 택하는가? 죽을 용기로 살아라? 살 용기가 없어 죽는다.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공포지만 죽으려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피안이다.

 

이해할 수 없으면 그저 모르는 채 남겨두면 좋으련만. 어린 녀석들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이고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싫어지려 한다. 그래도 그것을 비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무사하기를. 불후의 명곡에서 보여준 그의 무대는 정말 훌륭했다. 잃고 싶지 않다.

 

싸지르면 다 글이 아니고 말이 아니다. 뇌란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다. 혐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