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박수하(이종석 분)를 위한 재판에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 식구들이 모두 나선다. 최고참 신상덕(윤주상 분)의 지난날의 아픈 패배의 기억과 전직경찰 차관우(윤상현 분)의 날카로운 직관과 성실한 수사, 그리고 존재감없던 사무원 최유창(최성준 분) 역시 부지런히 발로 뛰어다니며 도움을 주려 한다. 장혜성(이보영 분)은 그런 가운데서도 오로지 피의자이자 자신의 의뢰인인 박수하의 무죄를 믿고 그의 편에 서고 있다.
"아무도 내 편 안 들어줄 때 내 편 들어주는 사람 아닙니까?"
장혜성이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성장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었다.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아서. 그럴 가치나 의미를 찾지 못해서. 아예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 여겨서. 하지만 모든 개인은 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법이 자기에게 부당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을 쌓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개인에게 그런 것이 부담이 된다면 국가가 그 권리를 보장해준다. 그야말로 세상에 손을 내밀 곳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다. 유일하게 그들의 편이 되어준다.
장혜성이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 경찰로서의 경험을 살려 차관우가 그녀를 돕는다. 신상덕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은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준다. 몸으로 때우는 역할도 한 사람쯤 필요하다. 현실의 벽은 높다. 검찰은 이미 많은 증거를 확보한 뒤다. 결코 자신들에 뒤지지 않을 실력과 경험까지 갖추고 있다. 최선 그 이상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정면으로 부딪힌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의 긴장이나 모든 것이 끝난 이후의 성취감 또한 더욱 커질 것이다. 서도연 역시 장혜성의 반대편에서 진정한 적수로 등장하게 된다. 이미 검찰들에 유리한 게임이기에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박수하는 뒤로 물러나 있다. 물러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방해만 되고 있다. 마음을 읽는 대신 단편적인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다시 더욱 드라마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유리한 내용은 없다. 하나같이 불리한 내용 뿐이다. 박수하는 그때 민준국(정웅인 분)과 실제 만나고 있었다. 민준국의 목을 조르기도 하고, 다른 장면에서는 민준국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박수하는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 그대로 민준국과 만나 그를 살해하고 있었던 것인가. 과거 박수하가 읽었던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구체적이지도 않고 연속적이지도 못하다. 다양한 해석과 추리가 가능하다. 그래도 주인공이기에 장혜성의 무죄주장을 믿으면서도 워낙 장면들이 선명하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도 가지게 된다. 아닐 것을 알면서도 그리 느끼고 만다. 더욱 드라마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드라마 방영 초반 국내케이블TV의 '뱀파이어검사'와 일본만화 '사이코메트러 에지'의 예를 들어 우려를 보낸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뱀파이어 검사'의 주인공 민태연은 뱀파이어의 권능으로 단지 살인현장에서 피를 통해 살해당하던 당시 상황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때로 민태연이 보았던 장면들은 수사를 통해 구체화되면서 시청자의 기대를 배반하기 일쑤였다. 피를 통해 살인이 일어나던 현장을 직접 보았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더욱 수사과정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헤프닝과 반전이 일어난다.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재미있다. 설정까지 매력을 더한다.
'사이코메트러 에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이코메트리는 참으로 편리한 능력일 것이다. 단지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 사물의 기억을 읽어낸다. 사물에 기억된 특정한 순간의 어떤 이미지를 연상해낸다. 다만 너무 추상적인 이미지이다 보니 결국 사건이 모두 해결될 즈음에서야 그같은 이미지들은 구체적인 단서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의 시마 형사의 수사노력은 작품을 단지 초능력에 의존한 단순한 내용으로 끝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룬다. 사이코메트리의 능력 자체가 끌어가는 중심이 되어간다. 말 그대로 '사이코메트러 에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작품이 재미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다.
박수하가 빠지고 나니 결국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재판정에서의 재판과정 역시 흥미를 더한다.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그에 맞는 대책을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장혜성과 차관우, 신상덕 등의 국선전담변호사 사무실의 - 아니 적대관계에 있는 서도연마저 동료검사의 도움을 받아 박수하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쉽게 결판도 나지 않는다. 재판만으로도 재미있다. 원래 그런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박수하의 일방적인 능력으로 인해 그같은 재미를 누리기란 힘들었다. 그런 순간에조차 장혜성은 박수하가 잃어버린 능력을 아쉬워한다. 그만큼 쉽고 편한 능력이다. 박수하가 장혜성과 지금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다. 박수하가 없어서 재미있다.
다시 원래대로 돌린다. 박수하의 능력을 빼앗는다. 기억을 빼앗는다. 그리고 주변으로 떠밀어낸다. 박수하의 빈자리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비로소 박수하 이외의 캐릭터들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다.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박수하였다. 박수하가 기억을 잃고 주위 역시 바빠졌다.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한 번에 이해시키고 있었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되돌린다.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아주 적게만 남은 것도 아니었다. 드라마같이 되어간다. 마지막 힘을 낸다. 그나마 재미있다. 역설일 것이다. 제목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인데 정작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드라마가 드라마다워진다. 실패다. 겨우 수습하려 하고 있다.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멀리 돌아왔다.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초기화시켰을 때 드라마도 더 재미있다. 불필요했다. 지금도 전혀 필요치 않다. 장혜성만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할 뿐 당사자인 박수하 역시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수하가 아니더라도 신상덕과 차관우가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 모든 것도 읽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아낸다. 그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것이 드라마인 것이다. 아직은.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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