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라면과 캐리어 - 서비스업과 권위에 대해...

까칠부 2013. 7. 9. 20:53

당장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불이 났다.

 

종업원이 일어나 손님들에게 외친다.

 

"지금 불이 났으니까 비상구로 안전하게 한 사람씩 대피해 주십시오."

 

그러자 손님이 말한다.

 

"네까짓게!"

 

완전 미친 손님이라면 그럼에도 계속 술을 마실 테고,

 

그나마 정상이라면 질서를 유지하며 손님들을 대피시키려는 종업원을 밀치고 나설 것이다.

 

왜냐면 고작 그런 주제니까.

 

그냥 까라면 까고 하라면 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니까.

 

그런 종업원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오히려 고깝고 보기 싫다.

 

그래서 무시한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세워준다.

 

아시아나 항공의 사고에서 대피하는데 승무원의 제지에도 캐리어를 챙겨 내린 승객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결국은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된다.

 

라면을 제대로 끓어오라며 심지어 승무원을 무릎꿇린 승객, 그리고 그런 승객을 방치한 채 오히려 그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승무원을 징계하려 한 항공사, 승무원이란 승객이 하자는대로 따르는 존재이지 승객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무시한다.

 

"네까짓게 뭔데!"

 

을 앞에서 갑노릇을 하려면 목숨도 걸어야 한다. 승무원이 하는 말이니 우습게 들린다. 승무원이 하는 말이니 같잖게 들린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손님이 왕이라 한다. 손님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도록 오히려 업체측에서 방치하고 조장한다. 종업원의 존엄과 가치는 그만큼 추락한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났을 때 손님들을 안전하게 책임져야 하는 것이 바로 이들 종업원들이다. 종업원의 말에 권위가 실리지 않는다면 만에 하나, 하지만 그 하나로 인해 자칫 사람의 생명이 사라질 수 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로 인해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다른 승객들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상관없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그렇게 가르친다. 그렇게 배운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 심지어 자신마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의 가치가 그와 같다. 인민혁명당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사라졌어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제주도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어도 나라를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하기는 결국 같은 맥락이다. 갑이 되기 위해서. 갑질을 위해 목숨을 건다. 하찮은 을따위. 을의 말을 듣느니 죽는 게 낫다. 한국사회의 또다른 현주소를 보게 된다.

 

서비스업에 종사해보면 알게 된다. 진상이 왜 진상인지. 멀쩡한 사람들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진상이 된다. 왜일까? 그리고 그것이 또 한 번 큰 사고를 불러올 뻔했다.

 

왜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알게 된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흥미롭다. 언제부터인가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