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불후의 명곡2 -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 그 전설을 만나다

까칠부 2013. 8. 11. 08:44

80년대 이전 밴드들은 주로 미군무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한국의 대중들은 밴드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들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미군무대에서 미군들이 즐기는 해외의 음악을 스스로 부르고 연주하는 가운데 그들 역시 해외의 세련된 문화를 몸으로 체화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밴드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사랑과 평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었다. 미군무대에서 인정받은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밴드였다. 이남이, 김명곤, 김태흥, 이근수, 최이철... 이 가운데 벌써 이남이, 김명곤, 김태흥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러 버렸다. 초창기 멤버로는 이제 거의 최이철 한 사람만 남아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이태원 등지의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음악인들의 경우 그들의 지향점은 국내의 음악인이나 팬들이 아니었다. 본토의 연주인들의 연주를 그대로 똑같이 카피할 수 있으면 '원단'이라 불렸고 클럽의 업주들로부터 A급으로 분류되어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보다 한 수 위의 - 즉 본토의 연주인들보다도 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이들은 특A급으로 분류되어 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밴두산의 리더 유현상이 속해 있던 '라스트찬스'나 이번에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한 '사랑과 평화'가 바로 당시 특A급으로 분류되던 당대 최고실력의 특급밴드들이었다. 참고로 유현상은 1982년 잠시 '사랑과 평화'에 보컬로써 몸을 담기도 한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주로 해외의 음악을 카피해 연주하고 있었다. 국내 작곡가들의 곡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기들이 직접 쓴 허술한 곡들 또한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밴드들은 카피곡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대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라스트찬스'의 음반이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그래서다. 혹은 데뷔만을 목적으로 기성작곡가의 곡을 받아 앨범을 취입하는 경우도 매우 흔했다. 안타까운 역사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당시 활동하던 밴드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1970년대 '사랑과 평화'의 데뷔는 그같은 밴드의 한계를 깨는 새로운 역사였을 것이다. 물론 '사랑과 평화' 역시 데뷔앨범은 당시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있던 당대 최고의 인기음악인 이장희의 곡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데뷔앨범을 내기도 전 이미 무대위에서 연주하며 발표되었던 '청바지 아가씨'의 경우처럼 그들은 주류밴드로서 자신들이 쓴 자작곡으로 무대에 선 어쩌면 첫케이스였을 것이다. 리더인 신중현 자신이 작곡가로서 자신의 밴드를 꾸려 활동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본격적인 밴드문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후배 밴드음악인들에 끼친 영향이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다. 1980년 2차 대마초 파동은 '사랑과 평화'라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리더인 최이철이 구속되고 김명곤과의 음악적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긴 휴지기를 가지게 된다. 1982년 바로 그 유현상을 픽업해 펑키리듬이 빠진 3집을 내놓지만 사람들이 진정으로 인정하는 '사랑과 평화'의 3집은 이남이가 돌아오고 다시 결성되어 내놓은 1988년의 앨범이었다. 그 사이에도 계속 활동은 이어가고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거의 긴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1988년 이남이가 발표한 '울고싶어라'는 '사랑과 평화'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그 뒤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3집의 성공 이후 이남이가 탈퇴하고 다시 박성식과 장기호를 받아들여 1989년에는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샴푸의 요정'을 크게 히트시킨다. 매번 멤버를 바꿔가며, 심지어 1999년에는 초창기 멤버였던 최이철까지 탈퇴하면서 '사랑과 평화'는 새로운 멤버로써 지금까지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장수밴드라고나 할까? 앨범수에서는 부활에 비할 바 못되지만 활동한 기간만 놓고 본다면 심지어 세계적으로도 '사랑과 평화'와 비교할 수 있는 팀이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 밴드의 역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사랑과 평화'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들과의 갈등 때문인지 '불후의 명곡2'에는 예전멤버였던 최이철과 송홍섭만이 출연하고 있었던 점은 무척 아쉽다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그렇다면 과거의 멤버였던 최이철과 현재의 구성원들이 함께 무대에 섰어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의 '사랑과 평화'의 연주와 음악을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듣고 감상한다. 음악적으로도 색깔을 많이 달리하고 있다.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활의 멤버 가운데 김태원만 출연하지 않았다. 김태원이 부활 1집으로 데뷔한 것이 1986년이다. 사실상 부활과 사랑과 평화는 그 활동시기가 겹친다. 같은 시기 활동했던 음악인으로서 이미 김태원 자신도 원로라 불리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는데 전설로 출연한 최이철이나 송홍섭 입장에서도 판단하기가 많이 불편하다. 전성기의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원로란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활만 따로 헌정무대를 꾸민다면 상관없겠지만 경연에 참가한다는 것은 어색하다. 채제민은 1999년, 서재혁은 2000년부터 부활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구분된다. 부활이 아닌 부활의 젊은 음악인들이다. 


아무튼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었다. '사랑과 평화'가 빠질 수 없다. 빠져서도 안된다. 한 번 쯤 가수가 아닌 당시의 음악 그 자체를 재조명해 보는 것은 어떨까. 70년대 말 미군무대를 통해 성장한 한국의 대중음악이 조금씩 주류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던 과정에 대해서. 80년대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90년대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2000년대와 2010년대 한류가 그 위에 열매를 맺고 있다. 역사를 본다. 시대를 본다.


임태경은 과연 뮤지컬 배우였다. 그에게는 뮤지컬이 어울린다. '청바지 아가씨'는 또한 그에게 어울리는 노래다. 조금 목에 힘이 들어간 듯 싶지만 서사가 있는 무대와 어우러져 신명을 돋는다. 처절하고 아련하다가 신이 난다. 원곡은 차라리 신중현의 '미인'을 떠올리게 하는 솔직한 욕망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지만 그것을 임태경은 뮤지컬의 서사로써 풀어 보여준다. 머릿속을 맴돌던 장면 그대로다. 정주리가 방점을 찍어준다.


과연 부활이었다. '사랑과 평화'에 뒤지지 않는다. 전동드릴을 사용한 기타연주 또한 놀랍다. 원곡이 70년대의 수줍고 자폐적인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면 정동하의 '얘기할 수 없어요'는 바보같은 자신마저도 크게 외치며 과시하고 자랑한다. 그게 나다. 자아도취다. 훨씬 강렬한 사운드와 촘촘한 연주가 진정한 선배에 대한 경의를 보여준다. 하필 '사랑과 평화'의 베이시스트였던 송홍섭이 자리에 있었다. 선배와 비교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TOP밴드' 시절과는 달리 송홍섭은 여전히 젊다. 이번에는 소금이 아니다.


이상의 '어머님의 자장가'는 가스펠의 느낌이 있지만 힘이 부족했다. 고음에서 강하게 치고 나가며 호소력을 이끌어야 하는데 결정적인 곳에서 힘이 부친 느낌이었다. 그래서 노래가 조금 심심했다. 연주가 절제된 만큼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 감정의 전달도 그런 점에서 조금은 아쉽지 않았을까. 경건함과 애절함이라는 기본전제는 충실하지만 목소리가 그것을 뚫고 들리지 못했다. 방송이어서일까?


길미의 '장미'는 감탄 그 자체였다. 서정적인 도입부를 지나 원곡의 펑키한 리듬을 살리며 부를 때 끝을 살짝 끌어올려 처리하던 가성에서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원곡을 벗어나지 않고 그 위에 자신의 개성을 실었다. 자신감이 있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안다. 한 마디로 노래를 가지고 논다. 자기 노래처럼. 강박처럼 노래를 바꾸려 들지도 않는다. 가수다. 


이남이의 원곡이 처절하면서도 해탈한 느낌이라면 JK김동욱의 '울고싶어라'는 경건한 종교적 희열마저 느끼게 하고 있었다. 가스펠이다. 영가다. 누구를 위해 우는 것일까? 누구로 인해 울고 싶은 것일까? 그 끝은 무엇일까? 이남이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체념어린 관조조차 그의 노래에서는 단단한 울림으로 들려온다. 절로 노래에 빨려든다. 그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주고도 바꾸고 싶은 목소리였을 것이다. 시간이 절로 지난다.


역시나 바다의 무대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의 톤을 바꾸고, 안무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달리 하고, 그러나 어떻게 해도 바다의 무대는 가수 '바다'의 무대다. 무대의 구성이 너무 비슷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롭게 들리는 것 역시 그녀가 '바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를 다름아닌 '바다'가 불렀다. 변화가 필요할 때도 되었다. 가장 변화의 폭이 좁다. 그런데도 훌륭하다.


무척 반갑고 기뻤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그만큼이나 대단한 이름 최이철과 송홍섭, 그들 자신 또한 전설로 불려야 했을 것이다. 음악인으로서도, 또한 제작자로서도. 한국 대중음악의 산증인들이다. '불후의 명곡2'의 무대조차 작아 보인다. 여기까지 성장했다. 어떤 대단한 이름들을 다시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올까. 벌써 두근댄다. 예고편을 보고 또 두근거렸다. 추억이 된 이들의 현재를 본다. 그들과의 만남을 기뻐한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