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서 조금은 우울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너무 멀다. 윤심덕은 가수로서보다 한국 근대화기의 어떤 상징처럼 기억된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 장국영, 김현식, 김광석... 정재형의 말대로다. 문희준의 말처럼이다. 어쩌면 가장 소중했을 시간들을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나 새롭다. 그런데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장국영은 하필 만우절날 죽었다. 장국영의 사망소식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아무리 만우절이라고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해서야 되겠는가. 필자 역시 그 기사를 인용해 올린 사람을 앞장서서 비난하고 있었다. 최가박당에서 드럼을 치던 앳띤 얼굴이 바로 어제같았는데. 그러고 보면 아비정전에서 그는 고독이 어울리는 중년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기억은 기대로인데 사람만 늙어간다는 것은 저주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광석이 죽었다 했을 때도 농담인 줄 알았다. 그렇게 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직 가야 할 때도 아니었다. 아직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그래야 한다고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 그나마 김현식은 그보다 오래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제 필자가 김현식보다 더 오래 살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모든 이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모든 이들을 뒤로 하고 홀로 떠날 것을 결심했던 김광석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음악인이 아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기억보다는 그들의 음악을 향유하던 일상에 대한 기억이 더 강하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보다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누리던 일상들이 좋았다. 그들의 음악을 따라 부르며, 때로는 마치 배경음악처럼 당연하게 그들의 음악이 흐르기도 했었다. 학창시절 또래들과 어울릴 때는 당연하게 장국영의 '당연정'이 들리는 것 같았다. 좀 놀 줄 안다는 녀석이 춤을 추고 있을 때는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린시절 공부방이던 다락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면 빗소리와 함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들린다. 서른이 한참 남은 나이에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세월을 느끼기도 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하면 박철순을 떠올린다. 도나 서머의 'Hot Stuff'는 참 여기저기 많이도 들렸다. 너무 흔하다는 것은 때로 기억을 흐리는 이유가 된다.
가수들이니 또 다를 것이다. 특히 최최의 대중가수이며 여가수였던 윤심덕의 '사의찬미'를 무대에서 불렀던 바다의 감회는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조곡이었다. 마치 사후세계에서 윤심덕이 부르는 듯, 혹은 죽음 저편으로 건너간 윤심덕을 부르는 듯, 그리고 또한 자기의 이야기처럼. 삶이 허무한 것은 슬픔이 있기 때문이고, 죽음에 이끌리는 것은 분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긋남과 뒤틀림이 삶을 슬프게 하고 삶에 분노하도록 만든다. 죽음의 여신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다.
이정의 목소리는 확실히 마이클 잭슨과 닮았다. 가녀리면서도 마치 숨소리처럼 살짝 긁으며 나오는 소리가 있다. 춤도 잘 춘다. 다만 하필 마이클 잭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비슷하게 따라하려 해도 어지간한 노래와 춤으로는 무리다. 학예회가 되어 버린다. 차라리 아예 다른 스타일의 무대로 꾸몄으면 모를까 너무 정직했다. 이래서야 마이클 잭슨과 비교가 된다.
하지만 임태경의 'My Way'에 비하면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미국 스탠다드 팝의 전설 프랭크 시나트라와 비교하기에는 임태경의 목소리는 너무 가늘다. 많은 가수들이 그래서 그들의 음악을 탐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가지려 노력해온 것이다. 임태경에게는 임태경만의 스타일이 있겠지만 그것이 프랭크 시나트라와 비교되면 아무래도 많이 아쉬워진다. 스탠다드는 다름아닌 미국인, 특히 백인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다.
JK김동욱의 '당연정'은 그야말로 남자의 노래였다. 장국영의 노래가 마치 소년과도 같은 여리면서도 강박적인 정서를 들려주고 있다면 JK김동욱의 노래는 그 자체를 당당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남자의 여유를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JK김동욱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불렀다면 어땠을까? 당시 20대이던 장국영이 나이를 먹어 40대가 되어 다시 '당연정'을 처음 부르게 된다면 이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참 오래전이다. 주윤발과 적룡과 장국영. JK김동욱은 남자를 반하게 만드는 남자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쓸쓸함이었다면 문명진의 '서른즈음에'에는 어떻게든 거부하고 싶은 안타까운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아마 더 멀리 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잡힐 듯 아련하던 무렵과는 달리 닿을 수 없이 멀리 지나와 버린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문득 떠오르는 관조가 아니다. 치열한 현실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문득 서러운 것을 느낀다. 소리치고 발버둥친다. 울며 화를 내본다.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은 어른이었지만 문명진은 아직 소년이었다. 마흔을 넘겨도 모두는 소년이다.
제국의 아이들은 영리했다. 도나 서머의 'Hot Stuff'는 아무래도 그들의 세대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 음악일 것이다. 아이돌인 자신들에 맞게 편곡한다. 디스코세대가 아닌 한참 뒷세대가 바라보는 디스코를 무대에서 재현한다. 편곡 역시 색다르면서도 훌륭했다. 물론 원곡을 넘어서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명곡이 괜히 명곡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는 그 완결함을 넘어서기에는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했고 할 수 있는 최고를 보여주었다. 즐거웠다.
말 그대로였다. 전설과 함께 노래하다. 김현식과 정동하의 듀엣곡이었다. 김현식의 노래와 정동하의 노래가 어우러진다. 때로는 김현식의 노래를 정동하가 받치고, 때로 김현식이 정동하의 노래를 이끌어준다.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노래는 세월을 뛰어넘어, 이제는 삶과 죽음으로 갈린 선후배를 하나로 이어준다. 한 번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한참 어린 후배가 그가 남긴 노래를 통해 무대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사람은 가지만 예술은 영원하다. 무대에 김현식이 살아있었다. 최고의 경의였다. 소름이 돋았다. 필자 역시 김현식을 좋아한다. 김현식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역대 최고점수였다. 439점. 정동하를 위한 점수인 동시에 정동하와 무대를 함께 해 준 김현식을 위한 점수이기도 했다. 그 순간 김현식은 무대에 함께 있었다. 죽은 귀신이 아닌 살아있는 감동으로 무대를 함께 하고 있었다. 노래가 죽은 이를 부른다. 노래의 감동이 죽은 사람마저 되살려낸다. 피곤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한 그는 결코 죽을 수 없다. 장국영도, 마이클 잭슨도, 김광석도, 도나 서머도, 프랭크 시나트라도. 우리는 결코 그들을 놓아보낼 수 없다.
기억을 떠올렸다. 아주 오랜 기억들이다. 빛바랜 사진 위에 다시 색이 하나 덧입혀진다. 지워져가던 기억들이 새로운 색을 입고 새로운 기억으로 머릿속을 맴돈다. 가슴에 스민다. 감동이라 부르는 것일 게다. 그들과 시간을 함께 한다. 지난 시간과 그리고 지금의 감동을. '불후의 명곡2'의 미덕이다. 항상 감사한다. 최고의 시간이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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