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런 것이 세대차이라는 것일 게다. 부모님 세대는 가수 장미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장미화란 가수라기보다 오락프로그램에 나와 시답잖은 이야기나 늘어놓는 목소리크고 주책맞은 아줌마 이상은 아니었다. 그것도 바로 뒷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어느날 음악프로그램에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노래를 부르는 장미화를 보았다. 그때 처음 가수 장미화를 알게 되었다. 매력적인 목소리와 세련된 무대매너, 무엇보다 그녀가 있는 공간 자체가 즐겁고 유쾌했다. 아직은 우울한 노래가 주를 이루던 시대 젊었던 장미화의 무대는 당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었던 노랫말들도 가수 장미화를 정의하는 이름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임희숙에 대해서는 그리고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귀를 간질이던 노래들이 있었다. 누구의 노래인가도 모르고 따라부르고 있었다. 지금도 필자가 히트곡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누구의 노래이고 어떤 노래인가를 알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부르고 문득 따라부르면서 정작 가수도 노래의 제목도 알지 못한다. 그 노래가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였다. 노래가 발표되고도 여러해가 지난 뒤였다. 그 깊은 울림의 주인공이 바로 임희숙였다. 매우 고급스러운 호소력짙은 슬픔을 간직한 목소리였다.
새삼 '불후의 명곡2'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였다. 필자에게 장미화란 흘러간 가수에 불과했다. 임희숙 역시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던 왕년의 스타일 뿐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들이 전설이다. 확실하게 와닿는 무언가가 없어도 한 시대를 풍미하며 동시대의 수많은 대중을 울리고 웃겼고, 그들의 무대가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없다. 그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들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전성기의 장미화와 임희숙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중요한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전설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익숙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가. 하기는 장미화와 임희숙를 방송과 음악을 통해 직접 체험했던 세대였기에 더 그들의 가치에 대해 소홀하게 여기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전성기를 지난데다 시간의 기억이 역사로 기록되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게 듣고 여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나는 참 대단한 사람들을 보아왔었다.
장미화가 '내 인생 바람에 실어'를 불렀을 때는 벌써 불혹을 넘긴 나이였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이기고, 혹은 가슴에 담고, 혹은 흘려보내며 그 즈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길미는 아직 열정과 패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다. 당당하다. 그리고 귀엽다. 사랑스러운 무대였다. 회한이라기보다는 다짐이고, 관조라기보다는 결심이다. 삶 그 자체를 즐긴다. 다만 길미 자신의 자의식이 조금 넘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미에 대해 항상 느끼던 불만이 무대에서 감정이 자칫 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을 게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물론 감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연성을 잃고 선을 넘어선다면 혼자만의 신파로 끝나기 쉽다. 하기는 이전부터 노래실력만큼은 관계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던 유미였을 것이다. 무대에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데 '가수'로서 실력을 인정받기란 꽤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폭주하는 듯한 그녀의 감정이 임희숙의 '사랑의 굴레'와 제대로 궁합을 맞췄다. 여유가 생겼다. 감정을 일부러 누르지 않으면서도 마치 눈물을 흘리듯 자연스럽게 흘려낸다. 펑펑 울어제낀다. 지금까지의 유미의 무대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한 무대였다. 울고 싶어졌다.
조장혁은 과연 '클래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들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포미닛의 '이름이 뭐에요'를 떠올리고 있었다. 1977년과 2013년의 감성은 이렇게 다르다. 혼자서만 수줍게 고민하던 1970년대의 감수성과 당당하게 먼저 물어보는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여자와 남자다. 같은 노랫말도 남자인 조장혁이 부르면 장미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아마 조장혁은 바로 날이 밝으면 노랫속의 상대를 찾아가 거칠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있으리라. 거칠지만 고급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였다.
EXO의 '진정 난 몰랐네'에 대한 평가는 임희숙의 '나도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불렀는데 EXO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 EXO만의 감정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노래는 훌륭했다. 화음도 좋았다. 노래가 갖는 일반적인 감정을 기술적으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EXO만의 그들 자신들이 느끼고 경험한 감정이었는가. 조금 더 과감하게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편곡이었으면 어땠을까. 경연이란 것이 무척 아쉽다.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작은 카페에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배경삼아, 모든 것이 정리된 듯한 평온한 얼굴로, 한 남자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자기의 이야기인 듯한. 혹은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듯한. 자신에게 들려주는 듯한. 어쩌면 혼자서 읊조리는 독백처럼. 단어 하나 - 아니 음절 하나까지 천천히 곱씹어 내뱉는 신중함이 차라리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겸손한 공들인 목소리, 사람의 소리', 임희숙의 평가는 말 그대로였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려놓고 노래 자체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JK김동욱의 내공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는 과연 진짜였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강했다. 홍진영을 보면서 문득 어려서 오락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을 웃겨주던 장미화를 떠올렸다. 그녀의 무대도 홍진영처럼 활달하고 즐거웠다. 홍진영 특유의 꺾이는 비성이 '안녕하세요'라는 노래와 만나 유쾌한 애교스러움으로 살아난다. 관객마저 무대로 빨아들인다.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줄거리있는 무대구성과 간결하지만 신명나는 복고적인 느낌의 군무, 그리고 강렬한 전자음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있었다. 디스코에서 일렉트로닉까지 서로 다른 시간과 문화와 감성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난다. 의도했을 것이다. 그만큼 완벽하게 고려되고 준비된 무대였을 것이다. 최고였다. 홍진영과 아웃사이더의 우승이었다.
JK 김동욱의 뻔뻔스럽기까지 한 넉살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조장혁의 소심함이나 홍진영의 무례하다 싶을 정도의 애교 역시 즐겁다. 무대에서는 항상 진지하다. 그러나 대기실에서까지 진지해지지는 않는다. '불후의 명곡2'가 편안하다. 무대가 반갑고 만나서 어울리는 사람들이 반갑다. 프로그램이 마치 자신의 집처럼 소중하다. 누구나 장난스럽고 개구져진다. 승부가 갈리는 순간은 시청자 자신도 자연스럽게 긴장하지만 승패를 떠나면 익숙한 이들을 만나는 듯 마음을 열고 기껍게 즐긴다. 역시 '불후의 명곡2'의 가장 소중한 미덕 가운데 하나일 터다.
아는 노래가 많았다. 거의 아는 노래들이었다. 딱히 장미화의 노래라던가 임희숙가 불렀다던가 하는 의식 없이 그냥 일상에서 익숙하게 부르고 있었다. 반가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래도 기억은 남는다. 두 사람이었다. 두 배였다. 항상 고마운 시간이었다. 언제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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