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어린시절 필자는 전영록을 무척 싫어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유였다. 여동생들이 전영록을 좋아했다. 여자아이들이 전영록에 빠져 있었다. 전영록의 모습에 열광하고 전영록의 노래에 자지러지고 있었다. 좋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노래는 따라부르고 있었다. 좋았으니까.
8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은 두 사람의 이름으로 요약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필과 전영록. 조용필이야 말로 원조오빠였다. 오빠부대라는 말이 조용필에게서 시작되었으니까. 조용필이 보다 전연령을 아우르며 음악인으로서의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었다면 전영록은 그보다는 조금 더 젊은 그야말로 오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음악인으로서만이 아닌 연기와 MC등 다양한 연예활동을 통해 특히 소녀팬들의 일상에 보다 폭넓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돌이었을 것이다. 만능엔터테이너란 바로 전영록을 위해 생겨난 말이었다.
전영록의 음악에는 전영록만의 색깔이 있었다. 전통적인 대중음악이 갖는 이른바 '뽕끼'와 캠퍼스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포크와 캠퍼스밴드가 바로 그의 음악에 녹아들고 있었다. 고고리듬에 기반한 흥겨운 리듬과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 그러면서도 대중가요의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은 친숙함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6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온 한국의 청춘문화가 전영록을 통해 만개되었다 보아도 좋을 것이다. 록이 대중음악의 전면에 나서고 있을 때 전영록 역시 자신의 밴드와 함께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었다. 권불십년, 그러나 10년을 넘겨서도 전영록은 여전히 소녀들의 오빠였다. 서태지가 등장하며 10대 팬들의 음악적 취향이 혁명적으로 바뀌기 전까지.
전영록에 대해 더 이상 쓰기가 꺼려지는 것은 그만큼 전영록이라는 이름이 필자에게 익숙한 때문일 것이다. 넘쳐난다. 2세 연예인으로써 당대의 스타였던 황해와 백설희를 부모로 둔 이야기라든가, '오달자' 이미영과의 결혼에 대해서, 혹은 전영록이 직접 제작하고 감독했던 영화 '돌아이'까지. 아마 우슈를 꽤 오랫동안 했어서 우슈도장도 하나 운영했던가 했을 것이다. 알려고 해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들려왔고 그래서 그만큼 익숙하게 떠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하나하나 다 적으려면 도대체 얼마의 공간이 필요할까. 그것이 스타다. 차마 말이 너무 넘쳐서 채 다 적지 못하는. 80년대 조용필과 유일하게 비교될 수 있었던 전영록의 이름일 것이다.
아웃사이더와 김재경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는 조금 지나친 느낌이 있었다. 김재경이 너무 섹시하다. 너무 매력적이다. 김재경과 같은 여자선생님이 그처럼 노골적인 차림을 하고 교단에 선다면 더구나 남학생들인데 수업같은 것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혈기방장한 나이의 아이들이다. 편곡은 상당히 세련되고 좋았는데, 그러나 여자선생님과 남학생과의 사랑이야기까지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로 들리고 있었다. 노래는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작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느낌이랄까. 욕심이 너무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보는 즐거움은 있었다.
그에 비하면 길미의 '하얀 밤에'는 80년대와 21세기, 그리고 소녀적 감성과 성숙한 여성의 관능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훌륭하게 소화해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섹시하다. 단지 노출이 많고 유혹적인 몸짓을 보인다 해서 섹시한 것이 아니다.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길미의 목소리에는 담겨 있다. 사랑처럼, 혹은 아픔처럼, 슬픔처럼, 체념처럼, 문득 귀기울여 듣고 싶고 한참을 듣고 있고 싶어진다. 매력적이다. 1승을 축하한다. 점수가 너무 낮았다.
바다의 '불티'는 이제 하나의 장르라 봐야 할 것이다.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러도 그것은 전영록의 노래가 된다.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러도 그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다 자신의 무대가 되어 버린다. 여전히 바다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어떤 데자뷰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의상도 다르고, 편곡도 다르다. 곡해석도 다르다. 창법까지 달리한다. 그러나 같다. 다름아닌 무대에 선 자신이 바다인 때문이다. 무대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다다. 항상 자신의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함과 열정이 결국 그녀를 바다이게 만든다. 그녀가 바다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환한 조명이 무대를 비추듯, 꿈결처럼 부서지는 연주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장미여관에 항상 감탄하는 이유다. 유쾌하다. 장난스럽다. 그리고 단단하다. 연주가 무척 탄탄한 밴드다. 호흡이 완벽하다. 그들 역시 자기만의 장르를 가지고 있다. 밴드는 곧 하나의 장르다. 아주 오랜 기억을 떠올리듯, 어떤 간절한 소망을 떠올리듯, 곁눈으로 지나쳐 보이는 듯한 그 아련함과 아쉬움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꿈이란 그런 것일 게다. 이 또한 그들만의 장난스러움일까? 그것은 추억이며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장미여관인데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전영록의 '종이학'이다. 바다가 강했다.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리고 있었다. 목소리의 질감일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야 말로 가장 완벽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일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노을이 된다. 불길할 정도로 스산한 감정이 노을과 함께 무대위에 젖어든다. 전영록의 '저녁놀'을 들으면서 항상 느끼던 감상이었다. 불길하다. 우울하다. 절규한다. 마침내 터져나온다. 그러나 그조차도 애써 누르며 노을과 함께 낮게 깔린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잡아끌고 있는 것일까. 조장혁의 목소리는 명품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단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돌이라 해서 그들의 무대에서 실력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이제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철저하게 단련하고 준비했다. 완벽한 군무는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흘린 땀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자기들만의 색깔을 담아 부르는 노래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EXO다. 다른 누구도 아닌 EXO의 '이 어둠이 가기 전에'였을 것이다. 스산할 정도의 암울한 외로움이 군무의 사이를 메운다. 보통의 노력으로 준비한 무대가 아니다. 선배에 대한 경의와 함께 자신들을 보여주고자 하는 자의식이 보였달까? 우리는 EXO다. 멋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름아닌 길미의 '하얀 밤에'였을 것이다. 필자가 남자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 풍부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조장혁의 '저녁놀' 역시 남자가 반할 정도로 관능적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과도 같다. 세상이 끝나는 날 한 가지만을 남겨야 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을 정도로.
사실 일주일로는 부족했다. 고작 일주일만으로 전영록의 수많은 히트곡들을 다 담아 들려줄 수 있을까? 역시나 남는다. 찾아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도 반주도 가사도 아무것도 없이도 몇 곡이든 더 불러제낄 수 있다. 필자는 전영록을 싫어했다. 세상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전영록만을 외쳐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기억한다. 아쉬움을 남긴다. 노래는 영원하므로.
오빠특집이다. 필자가 싫어하는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려는 모양이다. 어째서 그토록 싫기만 한데 그들의 무대는 선명히 떠오를까. 그것이 바로 스타라는 것일 게다.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숨쉬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그들이 존재했던 시간을 필자 또한 함께했다. 전영록이 반갑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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