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앞에 두고 생각한다. 저 여자는 머리가 커. 저 여자는 머릿결이 안 좋아. 저 여자는 키가 작아. 저 여자는 팔다리가 짧아. 눈이 커. 코가 길어. 턱이 작아. 입술이 두꺼워. 피부가 거칠어. 그리고 말한다.
"도대체 뭘 보고 예쁘다는 거지?"
사실 내가 그런다. 처음에는 예쁘다고 감탄하다가도 이내 찬찬히 뜯어보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때 미인인 경우는 아마 극히 일부의 예외에 불과할 것이다. 참 불쌍한 인생이다.
그냥 인상을 받아들인다. 머리가 커도 예쁘면 예쁜 거다. 몸매가 별로라도 예쁘면 예쁜 거다. 피부가 거칠어도 일단 예쁜데. 코가 길어서 예쁘기도 하고 눈이 작아서 예쁘기도 하다. 예쁜데는 이유가 없다. 예쁘고 나서 이유가 생기는 거지 이유가 있어서 예쁜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볼 때도 그래서 일일이 장면을 분해해서 보는 취미같은 건 없다. 배우 개개인의 연기나 개성 등에도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흘려본다. 재미있는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종합되었을 때 인상이라는 것이 결정된다. 오히려 그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흘려보더라도 전체를 보려 할 때 보이게 된다.
도대체 음악을 들으면서 누가 더 노래를 잘하니, 누가 더 가창력이 좋으니, 누가 더 춤을 잘 추니, 어디가 어색하고, 어디가 부족하고, 사실 평론가라는 직업이 그리 아름다운 직업은 아니라는 이유일 것이다. 듣고 좋으면 좋다. 전체적인 인상을 가지고 판단하고 즐긴다. 그게 안된다. 그래서 그들은 평론을 하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그럴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찌르는 맛이 부족하다. 그런 노래도 있다. 대단한 가창력이 필요한 무대라는 것도 있다. 어떤 무대는 화려한 안무보다는 간결한 안무가 어울린다. 조금은 유치할 필요도 있다. 역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무대라는 것일 터다. 그냥 자기를 비우면 된다. 좋은가 싫은가. 너무 빡빡하다. 너무 엄격하다.
평론하려 문화를 즐기는 것은 아닐 터다. 비판하는 것을 과시하려 문화를 즐기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고 비하하고. 그것이 문화를 즐기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인터넷상에 어설픈 평론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감상을 넘어 권위를 가지려 한다.
그냥 예쁘면 예쁘다. 그냥 좋으면 좋다.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것이다. 즐거우면 즐겁다. 가끔은 지적 유희도 즐긴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사실 평론문화도 그다지 예전에 비해 수준이 높지는 않다. 감정적인 판단이 이성적 비평을 대신한다. 내가 옳다. 여기서도 갑질이다. 웃는다. 피곤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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