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물은 이래서 재미있다. 중간과정이 없다. 당연히 거쳐야 하는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 이미 준비되어 있다. 단지 계기가 필요했을 뿐. 인간을 벗어난 방대한 기억은 수술에 필요한 모든 기술과 과정에 대해서까지 빠짐없이 머릿속에 입력해 두고 있었을 것이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알고 있는 그대로만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는 이미 훌륭한 소아외과의다.
너무 빠르다. 그래서 통쾌하다. 인간승리를 본다. 억눌린 자신을 해방시킨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좌절도 절망도 있었다. 체념하고 포기도 했었다. 남들과 다르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다. 오해는 상처가 되고, 몰이해는 편견으로 이어진다. 남들처럼 한 걸음을 내딛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과연 자폐아 출신의 박시온(주원 분)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단지 과정에 불과하지만 이미 그는 한 사람의 훌륭한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부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한 사람의 소아외과의로서 훌륭히 자신의 첫집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있었다. 응급으로 실려온 환자가 어느새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에도 아버지를 찾아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다.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보답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제는 한 여자를 품에 안으려 한다. 비록 짝사랑에 불과하더라도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자신만이 아닌 다른 누구가를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늘이 어울린다. 그런데도 웃을 수 있다. 웃으며 울 수 있다는 것은 어른의 증거다.
급박하게 상황이 흘러간다. 병원을 노리는 정회장(김창완 분)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선대이사장의 딸인 유채경(김민서 분)의 협력을 얻어 재단의 채권을 인수, 채권자로서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해온다. 유채경이 새이사장이 되겠지만 그러나 실제 모든 실권은 정회자의 손에 쥐이게 될 것이다. 유채경의 바람처럼 세상은 그렇게 온정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김도한(주상욱 분)을 통해 정회장의 실체를 알게 된 유채경의 눈가에 후회의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단지 약했을 뿐이다. 그녀의 나약함이 뻔히 보이는 궁지로 자신을 내몰았다.
차윤서(문채원 분)에게 이끌리면서도 유채경의 눈물이 김도한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려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부쩍 자란 박시온이 차윤서는 무척 서운하다. 품안의 자식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자신마저 품으려 한다. 언제까지나 아이인 줄 알았던 박시온이 어느 순간 남자가 되어 그녀의 주위를 서성거린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울고 있는 그녀를 품을 수 있을 만큼 그의 가스도 넓어졌다. 기뻐해야 하는데 이 지독하 상실감은 무엇일까. 남자 박시온은 바로 가까이까지 다가와 있건만 놓아주어야 할 어린 박시원이 그리도 속상하다. 어머니이고 누이이던 차윤서도 여자가 된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박시온을 보게 된다.
모든 게 극적이다. 이미 준비는 끝나 있었다. 박시온이나 차윤서나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박시온이 성장하고, 그런 박시온으로 인해 차윤서 또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급박하게 돌아가는 병원의 사정이 이들의 사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리 서운해하고 원망하면서도 유채경은 김도한과 박시온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회장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면 부원장 강현태(곽도원 분)의 통화내용이 단서가 되어줄지 모르겠다. 의사가 되었고, 남자가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는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다.
항상 폭력이나 휘두르던 무서운 아버지에게야 어떤 기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였다. 항상 자신을 품에 안고 무서운 아버지로부터 지켜주던 어머니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라면 어머니는 그리운 만큼 배신의 상처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버지에게는 한 발 내딛을 용기를 내 볼 수 있었다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을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상실감과 상처는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상처도 없다. 차윤서도 그것을 느낀다. 박시온 만큼이나 자신도 상처입는다.
박시온이 마침내 의사가 되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억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에만 의지하는 얼치기가 아닌, 환자를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강한 바람과 의지로 잃어버렸던 능력까지 다시 불러오는 명실상부한 의사로서의 자신을 비로소 일깨운 것이다. 남자가 되었다. 사랑을 하고 누군가를 안아주고. 어눌하지만 남자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뜨겁다. 서운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드라마를 끝낼 때도 되었다. 성급하지만 그래서 더 통쾌하다. 그는 영웅이다. 자신과 맞서싸우려 한다. 두려움과. 실망과. 포기와. 어머니만 남았다.
오히려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드라마가 한결 촘촘해지고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를 위해 의사로서 환자의 병과 싸우는 현장의 장면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 가장 쉽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을 하다. 치밀함보다는 정겨움이 좋다. 정교함보다는 따뜻함이 좋다. 사랑을 한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나쁘지 않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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