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박시온(주원 분)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도중일 것이다. 자폐를 딛고 더욱 보통의 일반에 가까워진다. 말이 많아진다. 처음의 자기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굳이 누군가 말을 걸지 않아도 현학적인 내용의 대사까지 제법 읊조린다.
한 마디로 말이 너무 많다. 말이 많더라도 처음에는 그저 사람만 앞에 세워 놓았을 뿐 혼자서 저 하고 싶은 말이나 웅얼거리는 독백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법 대화를 주도할 줄도 안다. 연설도 하고 교훈도 준다. 비유와 같은 고도의 표현기술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과연 좋은가? 그것이 전부다.
액션은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의 합이 맞아야 한다.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행동하던 두 캐릭터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서로 충돌하고 반발하며 혹은 서로에게 이끌리고 협력하게 된다. 더구나 캐릭터가 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시온이 있고, 차윤서(문채원 분)가 있으며, 김도한(주상욱 분)과 유채경(김민서 분)가 있다. 최우석(천호진 분)과 강현태(곽도원 분)도 있다. 고충만(조희봉 분)과 우일규(윤박 분)도 있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을 대하는 캐릭터의 입장이나 행위에 따라 갈등이 빚어지고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대사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수단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변수들을 면밀히 검토해 작품에 반영하기에는 드라마 제작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그래서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대사를 묘사가 아닌 서사의 수단으로서 사용한다. 캐릭터란 단지 서사의 수단으로써 대사를 전달하는 매개로써만 존재한다. 한 마디로 말로써 모든 것을 때운다. 제한된 공간과 고정된 인물들을 통해 마치 서술하듯 캐릭터의 대사들만 나열한다.
박시온만 말이 많은 것이 아니다. 다른 캐릭터도 말이 많다. 굳이 말로써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마저 아주 쉽게 말로써 풀어 전달하고 있다. 김도한이 아웃되어서는 안된다. 묻지마 살인범에게 칼을 맞았어도 김도한이 드라마에서 사라져서는 곤란하다. 유채경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 계속해서 유채경이 정회장과 강현태의 협력자로 남아 있는다면 결국 유채경 역시 그 존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착해진다. 착해져서 김도한은 물론 박시온과도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박시온과 차윤서, 김도한, 유채경, 강현태, 최우석, 중심인물의 구성에는 변화가 없다. 한진욱(김영광 분)과 나인영(엄현경 분), 나인혜(김현수 분), 조정미(고창석 분), 남주연(진경 분) 주변인물들 역시 그 변화란 무척이나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대신 나머지를 말이 채운다.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는 알겠다. 영리병원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이슈일 것이다. 그러나 말 몇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드라마다. 드라마라면 드라마에 걸맞는 표현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강현태가 이미 병원을 장아간 상황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영리병원이 됨으로 인해 얻어지는 장점과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부작용에 대해 직접 시뮬레이션하여 보여준다. 굳이 성원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추가로 들어가야 할 테고, 그것은 상업드라마로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윤이 남아야 한다.
사람만 세워두면 된다. 사람을 세워두고 서로 대화를 나누게끔 한다. 대화 속에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고스란히 담아 전한다. 드라마를 본 것 같다. 어떤 드라마인가를 알겠다.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 한층 더 가까워진다. 왜 기분나쁜지도 모르고 기분나빠진다. 김도한과 유채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차윤서의 모습은 최소한의 성의일 것이다. 계기도 고비도 없이 김도한과 유채경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다. 역시 사소하게 차윤서의 감정이 시청자에 전해진다.
과연 나인혜가 피를 토한 상황은 다음주 급박한 전개로 이어질 것인가. 알고 있다. 김도한이 칼을 맞았지만 그것은 내장을 비껴찌른 의사로서의 업무를 잠시 쉬어야 할 정도도 안되는 상처였다. 어려운 수술인 것처럼 끝나지만 그러나 너무나 간단히 문제는 해결된다.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대사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인영과 나인혜, 그리고 한진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피까지 토했는데 이렇게 긴장이 되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피상적이다. 과연 강현태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강현태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의 병을 치료하려는데 그 태도가 너무 무덤덤하다. 말인 즉 설득력이 있다. 성원대학 소아외과 의료진을 100% 신뢰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유일하게 치료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성원대학 소아외과였던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란 지푸라기라도 잡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을 매개로 강현태의 영리병원과 김도한의 입장이 충돌할 수 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리병원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리병원은 안된다.
드라마로서는 무난하다. 정확히 드라마로서 무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러티브 뿐이다. 나레이션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작가의 의지를 대변하는 나레이터들이다. 쉽게 이해된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누군가 수다를 듣는 것 역시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한 것이다. 대미가 다가온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은 바람이 차지는 것으로 안다. 어떤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만 같아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고충만이 박시온의 아버지같다. 순진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물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실망하고, 그러면서도 낙천과 긍정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들떠 있다. 박시온을 위해 화도 내준다. 써전이 수술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며 의사다운 말도 할 줄 알게 되었다. 가장 변화가 극적이다.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일 것이다. 마지막 그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비록 수술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보여진 적 없지만. 아마 마지막까지 없지 않을까.
마지막 짐을 정리하느라 손발이 무척 분주하다. 부모와의 관계도 정리하고, 차윤서와의 애정라인도 마무리지어야 한다. 김도한과 유채경의 문제도 해결한다. 쉽고 빠르게 넘어간다. 제목의 뜻마저 차윤서의 입을 빌어 직접 설명해준다. '굿닥터'. 걸러도 남는 것이 없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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