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울리는 제목이구나 생각했다. 감성과 열정사이. 열창을 하던 시대였다. 그러면서도 감성으로 녹이던 시대이기도 했다. 정수라와 함께 이선희가 있었다. 유열과 같은 해 이정석이 데뷔했었다. 정수라와 이선희 둘 다 치마를 입지 않기로 유명한 가수들이었다. 이정석은 유열 만큼이나 달달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10대의 소녀팬들이 가요시장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수들은 열창을 했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소녀팬들이 바란 것은 자기들에게 들려주는 노래였다. 순정만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게 해주는 노래를 들려주기를 원했다. 감미로운 미성의 남성가수들이 환영받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남성가수들에 뒤지지 않는 여성가수들의 열창은 막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당시의 여성들과 닮아 있었을 것이다. 치마대신 바지를 입고, 중성의 매력으로 여성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사실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유열은 가수로서보다 라디오DJ로서 더 익숙하다. 하기는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을 정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 대한민국'이 1984년,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환희'가 1988년이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정수라라는 이름은 대중에게서 잊혀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불리고 있는 그들의 노래는 지나간 시간의 화려한 각인일 것이다. 노래를 기억한다. 그들을 기억한다.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린다. 만남이 반갑다.
유열의 '이별이래'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덤덤했다. 그래서 슬펐다. 아직 슬픔이라는 감정이 밀려들기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리둥절하게 멍하니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남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조금씩 슬픔에 젖어든다. 그에 비하면 이수영의 '이별이래'는 어느새 슬픔에 잠겨버린 여자의 절규가 아니었을까. 빗속에 젖은 듯 무겁게 짓누른다.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다. 이질감일 것이다. 아마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녀의 노래는 슬픔보다 더 슬프다.
정수라의 '환희'는 댄스음악으로의 편곡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안타깝게도 정수라는 그다지 춤을 잘 추지 못했다. 빠른 리듬에 흥겨운 멜로디, 무엇보다 가사가 밝고 희망차다. 제목 그대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화자의 '환희'와 열정을 노래하고 있다. 신디사이저 편곡이 일렉트로닉과 어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돌의 젊은 에너지가 노래가 갖는 기쁨의 메시지와 어울린다. 조금은 오랜 느낌이 있지만 틴탑 자신이 새롭다. 원곡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그 안에 자기들만의 매력을 더했다. 멋지다.
김소현, 손준호 부부의 '사랑의 찬가'는 화가 났다. 솔직히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그리고 경외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자세잡고 들었다. 편하게 듣다가 어느새 정자세로 감상하고 있었다. 남의 진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자신도 역시 진지해지는 것이 예의다. 자기들 노래처럼.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맞잡은 손이 너무나 다정하다. 키스는 그저 행복하기만 할 뿐이다. 행복한 자신들로 행복을 전염시킨다. 가을도 깊어가는데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을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승자였다. 행복이 영원하기를.
빠른 리듬으로 춤까지 추며 부르는데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아마 그것이 소울일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에서는 '뽕끼'라 부른다. 뼛속깊이 스민 한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딛고 이기려는 힘과 의지가 느껴진다. 그것을 다시 '신명'이라 부른다. 처용의 춤처럼. 슬퍼서 춤을 춘다. 아파서도 춤을 춘다. 잊기 위해 춤을 춘다. 다시 웃을 수 있기 위해 춤을 춘다. 다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춤을 춘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것. 멍하니 빠져들었다. 문득 임정희가 부른 트로트를 듣고 싶어졌다. 오래된 사골같은 트로트를 듣고 싶다. 아름다웠다.
아웃사이더의 '에루화'는 필자의 비루한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재즈피아노와 성각과 현대무용이 힙합과 만난다. 절제된 예술의 여백에서 아웃사이더의 랩이 배경처럼 빠르게 흐른다. 아웃사이더 특유의 속사포랩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피아노의 선율이 흐르고, 가수의 노래가 들리고, 무용수는 춤을 춘다. 랩퍼는 랩을 한다. 익숙한 감정이 그 위에 흐른다. 다만 마지막 아웃사이더의 손에 들린 신은 너무 익숙했다. 의식이 넘쳤다. 아웃사이더에 대한 어떤 편견을 철저히 부숴주는 아름다운 무대였다. 이런 걸 예술이라 부른다.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깎고 깎고 또 깎아 곱게 갈아댄다. 구슬을 그렇게 만든다. 거친 돌을 쪼고 깎고 다시 갈아서 하나의 아름다운 구슬을 만든다. 먼데이키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들으며 느낀 감상이다. 유열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 원석이라면 먼데이키즈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은 그것을 더욱 다듬고 가공해서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낸다. 과연 남자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아름답다. 같은 노래였던가. 그러나 자기 이야기였던 유열의 노래에 비해 너무 다듬었다. 들려주기 위한 노래다. 그들은 노래를 들려주는 가수다. 프로다. 다른 의미에서 거르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무대는 훌륭했다.
유열이나 정수라나 충분히 혼자서도 전설이 될만한 가수들이라 여겼었는데. 하지만 선배가수의 노래를 주제로 팀을 나누어 후배가수들이 겨루는 모습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나란히 앉아 선배고 오빠고 하는 모습도 그들이 함께 활동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히트곡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불후의 명곡2'가 추구하는 재미란 이렇게 유쾌하고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사랑한다.
이수영이라면 차라리 전설로 자리했어도 좋았을 이름일 것이다. 하기는 유리상자도 있다. 왁스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조장혁도 있다. 중견과 아이돌이 함께한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스타가수들이 무명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어울린다. 격의없는 대기실의 시간은 그들의 거리를 더욱 좁혀준다.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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