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강하다. 말 그대로 광기였다. 슬픔을 잊기 위한 광기. 차라리 화를 낸다. 차라리 원망하고 미워한다. 차라리 비웃고 조롱한다. 취하도록 마시고 지쳐 쓰려질 때까지 춤을 춘다. 수다를 떨고 돈을 쓰고 시간을 내버린다. 차마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없기에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린다. 오히려 더 들뜬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자신마저 속이려 한다. 아무렇지도 않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필사적인 발버둥이다.
데이브레이크의 '화려한 날은 가고'였다. 그야말로 화려한 나날들이 저무는 종말적 비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무대였다. 화려한 브라스의 연주를 배경으로 데이브레이크가 춤을 춘다. 잠시도 멈추지 못하고 무대를 누비며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명이었다. 절규였다. 분명 모두가 신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끝내 감추지 못한 처절한 슬픔이 묻어난다.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강박적으로 신명으로 몰아넣는다. 역시 밴드는 강하다.
홍진영의 '도시의 거리'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쇼'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다. 춤과 노래를 하나의 무대로 즐긴다.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 위에서 역시 화려한 차림의 댄서들이 가수와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들려준다. 철저히 관객을 위해 계산되고 준비된 무대다. 뮤지컬에서와 달리 그것이 하나의 완결된 무대인 것이다. 하기는 '불후의 명곡2'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뮤지컬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는 탓에 극적인 구성이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홍진영의 무대는 그보다 더 다채롭다.
확실히 어떻게 하면 관객이 즐기며 놀 수 있는가 알고 있는 것 같다. 박휘순의 등장은 전혀 새롭지도 않은, 오히려 무대를 장난스럽게 가볍게 만드는 역효과를 불러온 듯 보였다. 다양한 것을 많이 보여준다고 모두 좋은 무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무대를 통해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완벽한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만한 힘과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할 것 같았다. 멋진 무대였다. 아쉬웠다.
왁스의 '아버지의 의자'는 한 마디로 '추억'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얼마전의 직접적인 기억이 아닌, 시간에 의해 곰삭은 아련함일 것이다. 아득한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더니 어느 순간 견딜 수 없이 들끓어 오른다. 세월이 흐르고 감정도 마모되었는데 어느새 떠오른 기억이 잊혀진 상처마저 욱신거리게 만든다. 어느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지나갔지만 슬픔의 기억은 남아 있다. 그리움의 기억이 남아 있다.
조장혁은 '남자'였다. 성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가지는, 남자이기에 가지게 되는 그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정수라의 원곡은 소녀처럼 풋풋했다. 아니 소녀였다. 갓 스물을 넘겼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노래까지도 풋풋했다. 그에 비하면 조장혁은 벌써 당시의 정수라를 넘어서 있었다. 그만큼 나이도 먹었고 많은 것들도 경험했다. 무르익은 감정이 농익을대로 농익어 터져나온다. 이별을 앞에둔 감정마저도 풋풋했던 정수라와는 달리 터지는 감정마저도 절제된 슬픔과 아픔을 담아낸다. 이런 가수였던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놀랍다. 그것은 분명 조장혁의 '바람이었나요'였다.
유리상자의 '가을비'는 촉촉했다. 스산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빗소리처럼. 가을비는 뼈에 스민다. 무어라 말을 더해야 할까? 그냥 듣는다. 그리고 젖는다. 스며든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최고의 찬사다. 경연에서는 패했지만 놀라움 없이 그저 듣게 만든다. 문득 가을이 되면 빗소리와 함께 듣고 싶어지는 것은 유리상자의 노래가 아닐까. 모두의 평가대로 순서가 안좋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듣는다. 유리상자였다.
제아의 '아, 대한민국!'은 준비한 것과는 달리 상당히 산만하고 심심했다. 노래에는 힘이 없었고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목소리도 춤도 무대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도가 부족했을 것이다. 풍물과 아리랑은 전혀 뜬금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냥 여러 아이디어를 단순히 나열한 것에 불과한 무대였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편곡과 퍼포먼스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가득 채우던 정수라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이 많다고 무대까지 꽉 차는 것은 아니다.
문득 정수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옛날 영상을 보니 더 확실해진다. 앞집 살던 동생 친구와 닮았다. 누군가의 누이이고, 누군가의 동생이며, 누군가의 이웃인 어느 평범한 누군가. 보편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귀여운 인상이었다. 가까운 느낌이었다. 물론 노래는 최고였다. 열광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한다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만의 시간들이 정말 반갑다. 유열의 축가는 멋진 퍼포먼스였다. 만남이란 항상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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