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와 발라드라는 구분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유재하 이전까지 가요는 그냥 가요였다. 변진섭이 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명을 붙이기까지 가요는 단지 가요에 불과했다. 적절한 뽕끼와 한결 세련된 멜로디,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랫말이 있다.
발라드를 부르다 트로트도 부르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가요를 부른 것이었다. 뽕끼가 조금 덜하고 더한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다. 창법에서도 차이가 없었다. 한결 뽕끼가 강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최진희의 목소리는 그저 시원시원하기만 했었다. 하기는 목소리 자체가 '뽕'이었다. 끈적거리며 감성을 헤집다가도 막히거나 기교로 에두르는 법 없이 직구로 뚫어주는 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최진희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시원하다. 후련하다. 굳이 정의하자면 최진희의 '가요'가 아니었을까. 필자 역시 최진희의 노래를 무척 즐겨부른다.
가요시대 최고의 스타였을 것이다. 전통의 트로트가 보다 정교하게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한국전쟁 이후 수입되기 시작한 해외의 음악들은 더욱 우리화되어가고 있었다. 미군무대에서 미군을 상대로 들려주기 위해 연습했던 음악들이 이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감정을 담아 연주되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대중음악의 원형질과도 같은 시대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많은 장르가 파생되구 한국 대중음악의 견고한 뿌리가 되어주었다. 한국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한국인의 목소리였다. 최진희가 전설인 이유였다.
놀랐다. 설마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라니. 무대에서 떠는 것이 이해가 된다.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작은 무대에나 서보았지 주말 황금시간대 시청률만 10%를 넘나드는 주류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음악이 참 개성적이다. 인디밴드 가운데서도 너무 개성적이어서 저변이 넓지 못하다. 그런데 '불후의 명곡2'를 통해 많은 대중들에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 역시 좋아하는 밴드다. 감사한 이유다. 이같이 실력에 비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들이 대중에 자신을 알리는 통로가 되어준다.
제이투엠은 생소하다. 엠투엠도 사실 그다지 기억에 없다. 워낙 무명시절이 길어 6개월 전 쯤 음악을 포기하려 했었다 말한다. 그래도 아주 적은 수이나마 팬들이 있는 한 그 팬들을 위해 음원이라도 내보자 다시 제이투엠을 결성했다 말하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은퇴까지 결심하고 겨우 재결성해 음원을 냈다면 더 이상 버틸 여력따위 없었을 것이다. 기회가 되어준다. 실력에 비해 역시 더 이상 통로가 보이지 않는 무명의 음악인들에게 마지막 기회가 되어준다. 유미도 그렇게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우승은 덤이다.
조장혁의 '그대는 나의 인생'은 남자인 필자조차 설레게 만들었다.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였다.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었다. 담담히 절제하여 부르는 조장혁의 목소리가 과장되지 않은 진심을 전하는 듯하다. 아내를 생각하며 불렀다고 했다. 처음 사랑을 고백했을 때의 격정과 열정은 남아있지 않지만 세월은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깎고 다듬어 원만해진 진실한 마음을 남겨주었다. 특별해서 사랑이 아니라 당연해서 사랑이다. 당신이 내 삶이고 내가 당신의 삶이다. 남자의 목소리다. 남자의 고백이다. 남자다.
아마 상당히 낯설었을 것이다. 인디씬에서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과 같은 음악을 하는 팀은 흔치 않다. 처음은 좋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 클럽무대를 보는 듯 촌스럽기까지 한 옛스러운 연주가 '미련때문에'에서 느껴지는 뽕삘을 제대로 살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치 수렁과도 같은 미련의 감정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사이케델릭 사운드와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던 퍼포먼스는 자칫 장난스럽게 비쳐질 여지가 있었다. 파격이란 사람들로부터 항상 환영받는 것이 아니기에 파격이다. 하기는 그렇다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면 그들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음악을 했다. 팬으로써 만족할 수 있었다.
소유와 박재범의 무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미로'의 후렴부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박재범의 랩이 대신하고 있었다. 원곡이 갖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고 다시 구축하고 있었다. 마치 대화를 나누듯 소유의 사비와 박재범의 랩이 교차하는 구조는 흥미로웠지만 원곡을 생각나게 만들고 말았다. 사실 박재범의 랩 역시 가사가 그다지 설득력있거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 아니었다. 편곡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이고, 더구나 최진희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썩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좋은 무대였다.
유미에게서는 이제 여유같은 것이 느껴진다. 처음 마이크를 스탠드에 고정시키지 못해 당황하던 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역시 노래제목을 말하며 살짝 혀가 꼬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그러나 무대에서 유비는 포효하는 야수와도 같다. 그냥도 우는 것 같은데 절규하듯 토해내는 소리들이 절절하게 가슴을 울린다.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담담하게 회상하듯 부르던 원곡과는 달리 당사자를 앞에 두고 부르는 듯 원망과 분노의 감정마저 느껴진다. 호소하고 애원하고 절규하고 원망하다가 이내 체념하고 만다. 항상 감정이 지나친 것이 아쉬웠지만 그 넘치는 감정이 노래를 살린다. 다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담백한 노래였다. 이야기하듯 잔잔하게 부르던 노래였다. 처음 그렇게 시작했다. 자신을 누르고 감정을 벼리며. 그러나 끝내 감출 수 없는 진실한 이야기가 노래를 뚫고 튀어나온다. 말로도 다 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노래와 함께 무겁게 전해진다. 울고 있었다. 절규하고 있었다. 희망을 말하지만 희망이 아니다. 꿈을 말하지만 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희망이고 꿈이다. 그래도 그것은 희망이고 꿈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자신들의 노래였다. 실력이 있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기회는 찾아온다. '불후의 명곡2'가 있음을 감사한다.
마치 왁스의 음반을 듣는 것 같았다. 아니면 왁스의 콘서트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경연을 잊었다. 담담하게 오로지 노래에만 충실하게 부른다. 조심스럽게 가사를 곱씹고 세심하게 멜로디를 쫓으며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려 한다. 프로다.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고,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고, 혹은 관객을 설득하고 윽박지르려 한다. 하지만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작사가가 가사를 쓰는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 터다. 명곡이 명곡인 이유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천상재회', 좋은 노래임을 좋은 가수를 통해 알게 된다. 왁스다. 그녀는 가수다.
홍경민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이번에는 퍼포먼스도 얼마 없었다. 오로지 노래와 하모니카만으로 승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미국 텍사스의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듯 컨트리풍의 사이케델릭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모니카 소리는 때로 흐느낌처럼 들린다. 원곡의 멜로디를 최대한 살리며 전혀 다른 느낌으로 소화해 들려준다. 역시 상대가 나빴다. 홍경민은 이미 너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가수다. '기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신인'에 비해 평가가 더 엄격해졌다는 뜻이다. 역시 음원으로 다시 듣고 싶어지는 무대였다. 홍경민은 노래만 불러도 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한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오랜 무명의 터널을 지나온 제이투엠의 무대도 좋았고, 공중파에서는 보기 힘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무대는 차라리 경이였다. 갈수록 실력있는 음악인들이 대중들에 자신을 알릴 기회가 사라져가고 있다. 음악프로그램은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좁은 공간으로 바뀐 지 오래다. 아니면 아이돌을 소개하는 용도이거나. 예능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역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나마라도 기회가 있으니 좋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최진희를 다시 만난다. 볼 기회도 거의 없었던 제이투엠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도 만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대스타와 아는 사람이 없는 무명가수가 한 무대에서 만난다. 차라리 기적이라 할 만하다. 감동하기보다 먼저 감사하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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