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미워하기를.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미움이라도 받겠다. 사랑과 증오가 닮은 이유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미워하기 위해서도, 항상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그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야 한다. 아무도 없다면 사랑도 미움도 불가능하다.
차은상(박신혜 분)이 정확하게 보았다. 최영도(김우빈 분)는 초딩이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괜히 짓궂게 굴고는 하는 초등학생 남자아이 수준이다. 후회하고 있었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김탄(이민호 분)을 떠나보낸 것을. 그러나 사과할 수 없었다. 사과하는 방법을 몰랐다. 사과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도 몰랐다. 그렇다고 이대로 김탄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사과는 하지 않지만 김탄을 계속 자신의 주위에 붙잡아두는 방법을.
미워하게 만든다. 자기를 보며 화를 내고, 보지 않을 때도 자기를 생각하며 화를 낸다. 때로 주먹다짐도 한다. 어깨동무를 하든 서로 끌어안고 주먹다짐을 하든 서로의 몸이 닿아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선명하게 김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오로지 자기에게만 허락된 김탄이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김탄의 비밀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는 야릇한 쾌감도 있었다. 언제든 비밀을 모두에게 까발려 김탄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녀의 날개옷이었다. 자기가 김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상 결코 김탄은 자기를 잊을수도 절대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라헬(김지원 분)에게 김탄의 비밀을 알리지 말 것을 경고할 때 최영도의 모습은 묘하게 우울해 보였다.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김탄이 만든 룰을 김탄이 미국으로 떠나고 없는 사이 최영도가 지켜오고 있었다. 다분히 상징적이다. 자신이 만든 룰임에도 이제와서 멋대로 부수려 하는 김탄에게 최영도는 말한다. 만든 것은 김탄이지만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은 최영도 자신이다.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래서는 곤란하다. 더 선명하게 각인시켜준다. 자기가 지켜온 의미를. 그가 남긴 실체를. 벌떡 일어나 싸움을 걸어올 때는 반갑기조차 했을 것이다. 애들은 싸우며 크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이제 김탄과 다시 예전처럼 놀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이성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빠르게 어른이 되어 간다. 김탄으로 인해 관심을 가지게 된 차은상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김탄 만큼이나 - 아니 김탄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겨 버리고 말았다. 나름대로 김탄과 차은상의 사이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김탄이 차은상을 좋아하고 차은상이 김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결국은 김탄이나 차은상 둘 다 다치고 말 것이다. 그저 주위를 맴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런 차은상이라도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다. 차은상이 지금까지처럼 여전히 모호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면 최영도 역시 마음껏 그 모호함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차은상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단지 김탄을 의식해 차은상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차은상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이 진심인지. 어쩌면 김탄을 자극하려 짐짓 그렇게 보이도록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같은 모호함 속에 익숙지 못해 수줍기까지 한 자신의 진심을 숨겨두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착각해주고 오해해주기에 더 쉽게 차은상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차은상이 그만 진심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진심이 되어 버렸다. 모호함에 가려진 가면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김탄과 차은상은 달랐다. 김탄의 뒤에는 제국그룹이 있었다. 자기의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제우스호텔과는 그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탄 자신 역시 함께 끌어안고 바닥을 두르며 주먹다짐을 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했다. 아직 그들이 친구이던 무렵 김탄이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최영도가 조금 괴롭힌다고 김탄이 좌절하거나 망가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차은상의 경우는 다르다. 가진 것도 없고 배경은 더더욱 없다. 말도 못하는 어머니는 제국그룹 회장집 가정부고, 차은상 자신도 하루에도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여자다. 자칫 선을 넘거나 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김탄은 자기를 미워할수라도 있지만 차은상은 그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차은상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차은상 자신이 아닌 차은상의 주위를 선택한다. 차은상이 좋아하는 김탄과, 그리고 차은상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자기 자신이다. 김탄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듯 차은상에게도 원망과 걱정을 듣고 싶다. 가끔 뉴스로도 보도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자신을 인질삼아 협박을 하는 군상들을. 차은상이 달려오기를 바란다. 김탄도 따라 올 것이다. 어쩌면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느다는 절망이며 자격지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있고 싶다.
비로소 김탄도 깨닫는다. 특별한 신분이란 단지 특별한 출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의미하는 바가 특별하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지만 사람의 가치까지 모두 평등하지는 않다. 짊어지고 있는 것이 다르다.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다.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의도와 의지가 그에게로 몰리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 최소한 많은 사람들의 이해에 개입한다. 어째서 자신의 출생을 가리기 위해 아버지 김남윤(정동환 분)과 정지숙(박준금 분)은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가. 김탄의 출생이 밝혀지면 결국 빌미를 주어 제국그룹을 둘러싼 분쟁이 격화된다. 김남윤도 김남윤이지만 그것이 결코 제국그룹에 이롭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사랑에 빠진 것 뿐이지만 그로 인한 영향은 막대하다. 개인이 개인으로서만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이미 김탄의 형 김원(최진혁 분)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김탄의 형일 수만 없듯이 김탄 역시 자신의 동생으로서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현주(임주은 분)과의 사랑 또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전현주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칫 그로 인해 아버지 김남윤과 관계가 틀어지면 여러가지가 꼬이고 헝클어지게 된다. 나름대로의 책임감일 것이다. 그런 자각이 없는 김탄이 그래서 더 한심하고 위태롭게 보인다.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으면 그쪽이 더 나을지 모른다.
김탄에 대한 형 김원의 진심을 어렴풋 느끼게 한다. 집에서 쫓겨나 자신을 찾아온 김탄을 그러나 형 김원은 평소처럼 박대하거나 내쫓지 않는다. 말로는 퉁명스럽고 거칠지만 결국 김탄을 자기의 호텔방에 재우고 만다. 일부러 김탄에게 들려주려는 것 같다. 김탄의 지금의 위치에 대해서. 김탄에게 지워진 것들에 대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들 역시도. 아직 김탄은 어리기만 하다.
아무튼 진심이 되어 내쫓을 수 있다는 것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나가는지 마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김탄은 투덜거리지만 그것이 더욱 김원과 아버지 김남윤과의 거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역시 김탄이 아직 어린 탓이다. 김남윤은 이미 늙었고 그의 아들은 아직 한참 어리기만 하다. 이것저것 신경쓰이는 것들이 많다. 물론 김원 역시 김남윤에게는 아직까지 모라라고 걱정만 끼치는 아들일 테지만 말이다. 김원이 마침내 결심한다.
자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자신보다, 어쩌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있을 것이다. 자식이 자신을 인질로 협박을 해도 끝끝내 자식이 이르게 될 목표만을 말한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가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이 외로워 최영도는 겉돈다. 김탄마저 잃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같이 잔치국수를 먹을 차은상은 얼마나 소중한가. 놓치고 싶지 않다. 유일하게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처음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차은상에게 김탄이 꿈이듯 김탄에게도 차은상은 꿈이다. 그래서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어떻게 차은상이 있는 곳까지 이를까. 그래도 학교가 있어서 다행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은 동갑내기이고 같은 학교 같은 반의 동급생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된다. 두 사람의 꿈이 만난다. 언제 깨어나더라도 지금에 충실한다. 작은 깨달음이었을까. 차은상 역시 지금 순간 만큼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 한다. 한결 밝아진 모습이 그래서 더 시리게 느껴진다. 발버둥이다.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한.
어려움이 많다.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비슷한 많은 이야기에서 그 끝은 비극이거나 혹은 기적이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일방적인 관계가 오래 가기란 힘들다. 예상하기 쉽지 않다.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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