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 - 진실의 이름, 김탄과 차은상 만나다

까칠부 2013. 11. 22. 07:48

둘 다 자기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를 미워한다. 그것이 자기에 대한 가장 큰 형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소중한 친구였건만 더 이상 서로의 곁에 머물지 못한다. 떠나보냈고 스스로 떠나왔다. 유배중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때 억지로 끌고라도 최영도(김우빈 분)를 어머니가 기다리는 분식집으로 데려갔어야 했다. 한 번 쯤 자존심을 굽히고 김탄(이민호 분)이 그토록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들어주었어야 했었다. 최영도를 볼 때마다 그때의 후회가 떠오른다. 김탄을 볼 때마다 그때의 한심했던 자신을 떠올리고 만다. 그래서 최영도를 보면 미안하고 김탄을 보면 미안해진다. 그런 자신이 또한 불편해진다. 모든 사람이 솔직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쉽고 편해질까?


김탄과 최영도의 복잡미묘한 우정이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나즈막이 들려온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서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다. 원래 연인들도 그래서 너무나 사랑해서 헤어지고는 한다. 사랑이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너무나 간절한 사랑이 또한 너무나 순결해서 작은 티끌조차 용납하지 못하게 한다. 입으로는 차은상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정작 차은상의 곁에 머물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라도 바라봐주기를. 이름을 불러주기를.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자기를 생각해주기를. 하염없이 언저리만 맴돌다 끝나고 있다. 최영도의 김탄에 대한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일부러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자기들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것도 나름대로 그들의 우정일 것이다. 이미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김탄은 최영도의 그같은 행동들을 모두 받아준다. 최영도는 그런 김탄에게 마음껏 응석을 부린다. 


과연 방송을 통해 김탄의 비밀을 폭로하려 했을 때 최영도가 진심으로 만나고 싶었던 것은 차은상이었을까? 김탄이었을까? 차은상이 방송실을 나가는 순간까지 최영도의 눈은 김탄을 쫓고 있었다. 차은상을 지키려 하지 말라는 말은 김탄에 대한 질투라기보다는 차은상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자기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김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차은상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공교롭게도 최영도 자신 역시 차은상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차라리 차은상을 자기에게 오게 하기보다 김탄에게 가지 못하게 하려 한다.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는 최영도의 사랑이란 이렇게 비루하다.


누구보다 차은상을 걱정하고, 심지어 자신보다 차은상을 더 생각한다. 차은상이라는 이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먼저 행동으로 옮기기부터 한다. 자신으로 인해 유라헬(김지원 분)이 차은상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표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정작 차은상에게 다가갈 때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거리다. 차은상은 넘어올 수 있지만 자신은 넘어갈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을 용서해준다면. 이제는 그만 되었다 말해줄 수 있다면. 그러나 최영도의 말대로 그때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었다. 유일한 기회였다.


겉으로 보이는 자신만만한 모습에도 오히려 최영도의 캐릭터에서 애잔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편의점에서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삼각김밥도 안 먹어 본 것이 없다. 차은상에게 같이 먹자 한 것도 고작 잔치국수다. 의도적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본능적인 식욕을 통해 최영도가 느끼는 고독과 소외를 보여주려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혜택받은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그에게 허락된 것은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먹는 라면과 삼각김밥이 전부다. 하다못해 분식집조차 아니다. 편의점에서 즉석으로 데워먹는 인스턴트 식품들이다. 황량한 사막과도 같다.


자기마저 수단이 되어 버린다. 자식마저 수단으로 여기고 만다.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어쩌면 자신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다. 자신이란 바로 그를 위해서 존재하게 된다.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할아버지의 손자이기에. 어머니의 자식이기에.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 또한 누군가의 딸이며, 아내이고, 며느리일 것이다. 당위는 도덕적 의무가 된다. 실망하고 상처입게 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과 아들마저 희생하고 만다. 아들을 위한다는 가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효신(강하늘 분)은 대단한 어머니를 두었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그녀를 독하게 만든다.


장차 제국그룹의 지분과 경영권을 물려받게 될지도 모르는 제국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당연히 김탄의 일거수일투족은 제국그룹과 이해가 얽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김탄의 사소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제국그룹의 이름이 앞에 놓이며 관계된 사람들의 입장과 이해가 엇갈리게 된다. 누군가는 이익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볼 것이다.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고 누군가는 가지고 있는 것마저 잃을 것이다. 김탄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이에스더(윤손하 분)는 김탄과 김원(최진혁 분)이 경영권싸움을 할 것을 기회삼아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입장과 이해가 그들의 행동마저 결정해 버리고 만다. 김탄이 제국그룹의 경영권을 갖는 것이 이익이 된다 여긴다면 김탄이 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기는 재벌만이 아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만들게 된다. 아니 태어나는 그 순간 벌써 수많은 관계속에 뒤엉켜 있게 된다. 다만 그 단위수가 다르다. 그로 인해 영향받게 될 관계의 숫자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차은상(박신혜 분)은 단지 엄마만을 신경쓰면 된다. 엄마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가족이다. 엄마 박희남(김미경 분)을 위해서 자기의 감정을 억눌렀고, 어머니로 인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가 차은상으로 인해 고민하는 순간에도 아버지의 회사에서는 그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김탄 자신이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잇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왕관을 쓰게 될 이들에게 견뎌야 할 무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영도의 역시 여린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아직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아버지를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아버지의 방식에 반발하되 그러나 그것을 굳이 거역하려 하지 않는다. 유라헬 역시 마찬가지다. 말로는 특별한 신분에 어울리는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결국 김탄을 두고는 또래의 흔한 질투로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차은상에게 어렵게 미안하다 사과한 강예솔(전수진 분)처럼 그녀 역시 아직 많이 어리다. 그녀의 지금 위치에 어울리는 것은 연적을 향해 자신의 추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김탄과의 약혼을 통해 보다 많은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


김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가 물려받을 자기의 회사다. 더 이상 아버지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워낙 크고 대단한 것이다 보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우선한다. 형제의 관계보다 더 우선한다. 이제서야 겨우 알 게 된 자기의 이야기에 아버지와 형이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형이 아버지를 긴다면 역시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차은상과의 관계가 진전되는 만큼 김탄에게도 결심의 순간이 다가온다. 도망칠 수 없다면 그 역시 제국그룹을 손에 넣어야 한다. 힘을 가진 자의 선택은 항상 옳다. 김탄이 제국그룹을 가지려는 이유였다. 사랑하는 전현주(임주은 분)를 떠나보냈다.


차은상이 마침내 감춰왔던 자기의 진실을 모두 앞에서 털어놓고 만다. 졸부가 아니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사회배려자 전형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었다. 초라해보일지언정 스스로에게 떳떳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지금껏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것을 숨겨야 한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자괴감마저 느낀다. 그렇게 자기가 부끄럽게, 남들이 알면 안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인가. 무엇보다 자기의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하는 일일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온 증거인 것이다. 어머니와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


물론 두렵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전학가버린 그 친구처럼 되는 것일까? 그러나 용기란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한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무엇보다 김탄에게도 떳떳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이대로 언제 들킬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김탄에게 의지하는 삶은 김탄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사랑이 인간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든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최영도나 유라헬에게 농락당하고 싶지 않다.


겨우 차은상과 김탄이 만나게 되었다. 사회배려자전형 차은상과 서자 김탄이 서로 만난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어떤 거짓도 오해도 없이. 순수한 이름으로서만. 그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려고 필사적으로 없는 용기까지 쥐어짠 것이었을 터다. 대등해지고 싶다. 동등해지고 싶다. 김탄과 같은 눈높에서 마주서고 싶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일 것이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되어 있다. 어느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해결한다. 차은상은 전사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속박하는 것들과 맞서려는 혁명가다. 김탄이 놓아버린 만큼 차은상은 스스로 쟁취하려 한다. 자기가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 그들이 사랑하는 방법은 혁명밖에 없다. 전쟁밖에 없다. 유라헬은 단지 계기가 되어 주었을 뿐이다. 지금 차은상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어떤 결심이 필요한지.


내일이 궁금하다. 파티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차은상을 기다리는 일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제국고등학교에는 계급과 질서가 존재한다. 차은상은 그 가장 밑바닥에 있다. 드라마임을 믿는다.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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