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 - 해피엔드, 인간을 죄짓게 하는 것들에 대해

까칠부 2013. 11. 15. 08:19

세상에 나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좋다. 하나같이 말한다. 그래도 만나보면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점도 있다고. 그런데 세상은 어째서 이 모양인 것일까?


아들을 위해서. 아들을 지켜야 했다. 엄마니까. 엄마였으니까. 힘들고 괴롭다.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자기를 납득시킨다. 상처입은 양심은 가끔 아이를 찾아가 훔쳐보는 것으로 달랜다. 그리고 위로한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지켜야 했다. 아내는 남편을 지켜야만 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지켜야만 했었다. 이타적이어서 슬픈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양심의 고통마저 그를 위해 기꺼이 받아들인다. 익숙해진다. 중독된다. 그렇게 자신을 상처입히며 서서히 죽여간다. 자신을 잃어간다. 그들이 바란 미래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단지 말 뿐이었다. 사라져 버리라. 죽어 버리라. 그런데 진짜 죽어서 나타났다. 그조차도 죄가 되었다. 자신이 죽였다. 자기가 죽였다. 자기의 말이 그녀를 죽게 만들었다. 설마 신세연(이다희 분)이 자신이 한 그 한 마디를 아직까지 가슴에 담고 있었을 줄이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어쩌면 그같은 죄책감이 더욱 그녀를 내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조민혁(지성 분)을 위해 조민혁을 놓아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신세연은 자신이다. 죄에 쫓기며 살아왔다. 후회하며,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지금껏 발버둥쳐 왔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무엇을 지키려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었는가. 신세연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을 때 안도훈(배수빈 분)도 비로소 자신의 죄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일의 시작으로 되돌아간다.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다시 돌아가 시작하려 한다.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니다. 자신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다. 자기로부터 비롯되었다. 인정할 수 있었다.


리셋이다. 게임을 하다가도 플레이가 자칫 엉키면 게임을 종료하고 저장된 파일을 불러 다시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다시라는 말과 새로라는 말이 어색하게 어울린다. 게임과 인생이 다른 것은 시간까지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조민혁의 리셋은 그래서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리셋이다. 지금까지의 K그룹 후계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바로 지금이 미래를 위한 시작이다. 강유정은 아버지의 빵집을 이어 새롭게 빵집을 연다. 신세연이 보낸 그림엽서를 받아보며 안도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지난 시간이 그에게 남겨준 단 하나다. 비로소 웃을 수 있다.


희망을 말하다. 과거의 죄까지 모두 밝혀지며 죄인이 되어 교도소에 갇힌 안도훈조차도. 과거를 되돌린다. 과거의 시간을 되돌린다. 과거의 영상이 마치 지금의 일인 양 흘러가고 있다. 그는 죗값을 치르려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과거에 남겨두고 온 후회와 미련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밝고 환한 웃음이었다. 가장 크게 성공을 거머쥐었을 때도 그는 웃지 못했었다.


반드시 아들과 함께 살아야만 어머니가 아니다. 아들이 웃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웃음 역시 지켜주고 싶다.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지킨다. 조민혁을 놓아줌으로써 조민혁을 사랑했던 자신을 지킨다. 결국 자신의 죄로 인해 어머니마저 죄인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여자마저 지키지 못했다. 한 번 안아주지 못한 아들 앞에 아버지라고 떳떳이 나서지도 못한다. 자기는 누구였을까? 안도훈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도 신세연을 걱정하고 지켜주고 싶어했던 안도훈은 자기 자신이었다. 안도훈이 마지막 순간 신세연을 위해 손에서 놓았던 그것이 - 어쩌면 조민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을 바로 그것이 자신을 안도훈이게 한다. 신세연의 엽서가 가리키는 것이다. 고마웠다. 위로가 되었다.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괜찮다.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전혀 가치가 없지는 않았다. 자기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울속 자기 모습이 조금은 괜찮게 보인다.


아이를 빼앗기고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웠기에 차마 다른 엄마에게서 아이를 데려올 수 없었다. 본질을 말해주고 있었을 것이다. 안도훈의 어머니 박계옥(양희경 분)이 아이가 죽은 것으로 꾸미기 전에 단 한 번 만이라도 아이를 잃게 될 강유정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그런 끔찍한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얼마나 아파할지.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못할 짓을 하는 것인지. 


처음부터 죄를 지으려 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이 죄인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게 되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모른다. 혹은 외면한다. 몰랐다는 안도훈의 말에도 강유정이 더 크게 화를 내는 이유다. 그렇게 속인다. 그렇게 자기마저 기만한다. 하지만 알려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알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죄를 짓는다. 자기를 속이며. 타인을 속이며.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다 좋은 일이라고. 죄가 아니라고 믿어 버린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라 납득해 버린다. 그래서 죄를 짓는다.


차라리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순간보다 눈앞에서 자기의 아들을 놓아보내야 했던 안도훈의 통곡과 절규가 더 고통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교도소에서 벌을 받고 있을 때의 안도훈조차 그보다는 더 편해 보인다.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징벌이다. 죄를 깨닫는다. 죄를 마침내 알게 된다. 직접 겪고 눈으로 확인한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양심의 고통에 비하면 감옥에 갇혀 자유를 구속당하는 정도는 벌도 아니다. 아니 그래서 더 안도훈은 자기의 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이었는지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서러웠다.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자기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울지 못했다.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눌러왔다. 필사적으로 버텨왔다. 그러는 사이 차곡차곡 눈물이 쌓여갔다. 한 순간에 터져나온다. 전혀 멋지지도, 그렇다고 슬프다거나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볼품없고 한심한 눈물이었다. 억눌러왔던 지난 시간들의 후회가 폭포수처럼 흘러넘친다.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도 쌓여온 것들이 눈물에 씻겨내려간다. 비로소 자신에 솔직해진다. 안도훈이 슬퍼서라기보다 인간이 슬퍼서 서러웠다. 울 수조차 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눈물이 갖는 정화의 의미일 것이다. 안도훈의 눈물처럼. 신세연도 눈물을 흘린다. 조민혁도 눈물을 흘린다. 강유정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안다. 마치 물에 씻겨내린 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홀가분해진다. 가끔씩 소리내어 엉엉 울어보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련을 접는다. 후회를 떠나보낸다. 자기를 되찾는다. 찌꺼기 가운데 진정 자신이 지켜야 할 자신을 찾게 된다. 그만큼 눈물은 진실해야 한다. 드라마가 진실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피엔드였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졌다. 강유정도, 조민혁도, 심지어 안도훈마저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사람은 항상 현재를 살아간다. 그것이 항상 솔직하고 진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회와 미련이 망령이 되어 사람을 과거에 붙잡아두고 마니. 인간을 불행케하고 죄짓게 하는 것들이다.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한다. 그것은 현실의 이야기일 것이다. 현재의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순간의 선택에 대해서.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곰곰히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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