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는 묘하게 비틀어 묘사했지만 결국 최영(서인석 분)과 이색(박지일 분)이 이인임(박영규 분)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오직 이인임만이 불안한 고려의 정국을 수습하고 안팎의 위기로부터 고려와 왕실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인임이 최영에 의해 연금되자 대신들과 무장들이 하나같이 태업으로 그에 저항하고 있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왜구가 내륙까지 침입해 들어온 위급한 상황에 누가 더 필요한가는 너무나 분명할 것이다.
이제는 최영과 이인임의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구구하기만 하다. 오히려 많은 사안에서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같은 친원파였고, 고려의 구질서를 옹호했으며, 당연히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다. 청렴강직한 성품답게 이인임의 탐욕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이인임의 필요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었다. 최영이 자신과 무리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인임 역시 최영을 공격하려는 측근들을 말리고 있었다. 최영은 밖에서 외적을 물리치고, 이인임은 안에서 고려의 왕실과 조정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최영은 충신이었다. 이인임은 간신이었다. 충신과 간신이 서로를 용납하며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충신은 선이고 간신은 악이다. 선은 악을 몰아내려 하고 악은 선을 배제하려 한다. 최영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하고, 이인임은 그것을 이용해 오히려 일신의 영화를 누리려 한다. 당장은 악이 이긴다. 간신이 충신을 누른다. 하지만 언젠가 선은 악을 이기게 될 것이다. 장래를 기약한다. 최영이 이인임과 협력하던 기간은 고려와 왕실을 위한 충신의 인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드라마다. 드라마란 곧 갈등이다. 인물들 사이의 부대낌이 이야기를 만든다. 최영의 역할이다.
고려의 비참한 현실들이 묘사된다. 그리고 역시 최영의 한계도 그려진다. 이성계(유동근 분)는 이미 백성들의 죽지 못해 사는 참혹한 현실을 직접 보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백성들을 징발하여 병사로 삼으라. 당연히 외적을 막기 위해서는 병사가 필요하고, 병사가 필요하면 마땅히 백성을 징집하여 병사로 삼으면 된다. 그것이 백성들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다. 대대로 명문가 출신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아 지금에 이르렀다. 최영의 입에서 권문세족을 비판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최영 자신도 권문세족의 하나였던 것이다. 최영이 지키고자 했던 고려와 이성계를 비롯한 신진사대부가 지키고자 했던 고려가 다르다. 비극의 이유였다.
아비를 병사로 끌고가며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비와 아들 둘 중 누가 먼저 죽겠는가. 아비는 병사로 끌려갔으니 전장에서 어느 눈먼 칼에 맞아 죽기 십상일 것이다. 바로 조금전까지 밭이나 갈던 흙투성이 무지렁이를 데려다가 창칼을 쥐어준다고 제대로 병사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흙투성이 무지렁이가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가장이 사라지면 농사도 하다못하 날품팔이도 할 수 없다. 곡식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아니고 피폐한 삶 속에 힘을 쓸 수 있는 가장마저 사라지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아비는 전장에 나가 죽고, 남은 아들은 배곯아 굶어 죽는다. 처참한 백성의 삶이다.
원래 고려의 토지제도는 국유가 원칙이었다. 모든 토지는 국가에 속해 있으며 단지 필요에 따라 그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일 권리를 나누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권력은 국가로부터 허락받은 수조의 권리를 토지에 대한 사유의 권리로 전용하고 있었다.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수조권을 회수한 뒤에도 권력을 이용해 여전히 권리를 행사하려 한 것이다. 매번 필요에 의해 국가로부터 수조권을 받는 대상은 달라지는데 기존의 권리를 가진 자들이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하나의 토지에 수조권자가 여럿이 되면 법이 정한 세율인 1/10을 지키더라도 정작 농민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었을까?
어른들은 배가 꺼질까 방안에 누워 천장만 보고 있더라는 이성계의 말이 그저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원의 수탈과 권문세족의 발호로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고려말은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려말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그래서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추진된 전제개혁이었던 것이다. 공민왕 자신과 신돈에 의해 숙원사업으로 추진되었던 것도 바로 전제의 개혁이었다. 그리고 최영과 이색마저 그것에 반대하고 있었다는 것은 고려로는 더 이상은 안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최영과 이색과 이인임의 어울리지 않는 공생과 공존은 말 그대로 고려말의 모순과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이인임에게는 정치력이 있다. 권력과 세력이 있다. 최영에게는 무력이 있다. 군부의 어른으로 많은 무신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 무력이 없는 권력은 공허하다. 이인임이 그렇게 쉽게 최영과 이성계의 공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오랜 전란은 최영과 이성계와 같은 군벌의 힘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한 편으로 권력의 뒷받침 없는 무력이란 외로울 뿐이다. 힘으로 누를 수는 있어도 따르게 만들수는 없다. 신진사대부들도 이인임은 두려워하면서 최영은 만만히 여긴다. 이인임 역시 신진사대부는 경계하는데 최영은 우습게 본다. 최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SBS의 드라마 '대풍수'가 그런 점을 잘 묘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정도전(조재현 분)은 백성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자기의 일이 아니라 여긴다. 백성들이 어느새 체화해버린 현실의 공포와 그럼에도 그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기는 그러니까 선비다. 백성이라면 기꺼이 허리를 굽히고 현실을 짳아 자신을 바꿀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 설사 배척받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더라도 한 번 정한 바를 끝까지 따른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지식인의 역할일 것이다. 정도전이 진심으로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다른 곳에 있다.
주고 받는 것은 거래다. 셈을 잘하면 단지 얻을 만큼만 얻고 말 뿐이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은 빚을 지우는 것이다. 빚이란 당장 갚지 않으면 천문학적으로 그 이자가 불어난다. 조건없이 내준다. 자기의 팔 안에 가둔다. 인간의 크기를 보여준다. 변방의 일개 무장이지만 이성계의 사고는 고려 전체를 덮고 있다. 강씨부인(이일화 분)의 사고는 단지 가문과 자신의 가족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인임 역시 정작 사병을 일으켜 궁을 장악해야 한다는 임견미(정호근 분)의 제안에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우왕을 끌어들인 것은 그의 한계다. 거래에는 끝이 있다. 우왕에게 거래의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왜구가 내륙까지 올라와도 그것을 막을 병력이 없다. 중앙군은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각 무장이 보유한 사병을 모은 것이 고려의 정규군이었다. 역시 이인임의 정치력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각자 이해가 다른 무장들을 하나의 단위로 만들어 필요한 곳에 보내야 한다. 선악이 아닌 현실의 필요다. 그러나 악인이어야만 한다. 어려워지는 이유다. 이인임이라고 하는 악의 끝은 어디인가. 정도전은 언제쯤에나 그와 맞서게 될 것인가.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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