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아버지와 아들이다. 세상에는 더 크고 중요한 일들이 있다. 자신보다, 심지어 더 소중한 가족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더 가치있는 일들이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의 원망이 쌓여간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원망과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묵묵히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한다.
여전히 사랑하는 것은 가야(임수향 분)다. 그러나 지금 신정태(김현중 분)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김옥련(진세연 분)이다. 가족과도 같다. 여동생 청아가 그렇게 사라지고 그녀는 신정태에게 여동생 대신이기도 했다.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항상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주었다. 의무감과도 같다. 절대 자신은 김옥련을 배신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김옥련을 슬프게 만든다.
김옥련에게는 신정태가 전부다. 오로지 신정태만이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양보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신정태에게는 아니다. 한때 가야와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에 빠지기도 했었다. 지금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여동생 청아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도비패의 일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아무때나 사라지고 모르는 곳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마냥 걱정하며 기다릴 뿐이다. 김옥련의 마음은 그렇게 일방적이다.
생일이라고 단단히 다짐까지 받아놓았건만 결국 신정태는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신정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을 향한 호의가 그러나 사랑과는 상당히 다른 감정이라는 것 역시. 그래서 불안했다. 외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집착하고 확인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쉽게 흔들린다. 상처입고 만다. 역시나 혼자만의 사랑이었구나. 보답받지 못할 사랑이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그런 빈틈을 그녀의 또다른 꿈인 가수를 이용해 김수옥(김재욱 분)이 파고든다. 그 순간에도 신정태는 자기가 먼저 약속하고도 더 중요한 일을 쫓아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를 위한 함정이 준비된다.
굳게 다짐한다. 곱씹고 또 곱씹는다. 신정태라는 이름을. 신정태라는 존재를. 자기 안의 신정태의 자리를. 신이치(조동혁 분)도 그것을 눈치챘다. 신정태를 향한 원망과 증오가 사실은 그렇게라도 신정태의 이름을 마음에 담아두기 위한 가야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도야마 아오키(윤현민 분)를 찾아가 당시 신의주를 배회하던 요시찰대상자들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작은 희망인 동시에 자기 안의 미련을 잘라내기 위한 나름의 시도일 것이다. 신이치는 도꾸(임태구 분)에게 신정태를 자기 앞에 데려 올 것을 요구한다. 자기와 싸우게 만들라. 가야를 위해서도 신정태를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시디신 우메보시를 생으로 씹어먹는다.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는데도 먹는 것까지 철저히 일본인을 닮고자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조선의 것은 천하다. 조선의 것은 낡았다. 기왕에 개가 될 것이면 부잣집 개가 되겠다. 일본의 것은 귀하다. 일본의 것은 세련되다. 장차 조선과 조선인이 나아갈 길은 철저히 일본과 일본인을 닮는 것이다. 상당히 상징적이다.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그렇게 일본인이 되어갔었다. 이미 망해버린 나라 조선이 아닌 조선을 지배하는 일본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조선이야 망하든 말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도비노리로 목숨걸고 밀수도 하고, 인력거꾼의 등도 쳐가며, 어린아이들을 인신매매로 내다팔기도 한다. 사랑도 하고, 장래의 꿈도 가져보고, 그러나 현실이 너무 힘들고 고단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도비노리를 위해 단동에 가 있는 사이 김옥련은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자칫 죽을 수도 있다. 귀가 베여 상처가 더 늘었다. 김옥련과의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같은 도비패의 강개(지승현 분)와 시비가 붙는다. 김옥련과 다시 데이트약속을 잡고도 자신이 만든 악연에 휘말리고 만다. 원래 범죄조직과는 맞지 않느 성격이었다. 지나치게 올곧고 솔직하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도비노리라는 위험천만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고 또 뛰어내린다. 때로 목숨을 잃는 사람마저 있다. 매일같이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상처를 몸에 달고 산다. 마침내 참고 있던 화를 터뜨리고 만다. 그러나 이내 풀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김옥련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신정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정도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그나마 돈을 벌 수 있으니 희망도 가질 수 있고 꿈도 꾸어 볼 수 있다. 그래도 제법 근사하게 차려입고 사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더 훌륭한 개가 되고자 일본인이 되려 하는 도꾸가 있다. 울화가 치밀 정도로 비참하기만 한 현실이다.
그같은 현실을 등에 업고 가야가 신정태 앞에 나타난다. 가야란 신정태가 극복해야 하는 불우하고 불편한 현실인 셈이다. 신정태를 압박하고 있는 현실은 가야 또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부모를 잃고 이제는 스스로가 도구가 되어 쓰여진다. 일국회의 보스 덴카이(김갑수 분)의 욕망이 도야마 아오키와 가야마저 철저히 수단으로 여기고 만다. 가야가 신정태를 적대하는 것도 신정태가 가야와 싸워야 하는 것도 그들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적이 되어 마주서야만 한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도꾸와 가야, 아오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역시 의도한 장치일 것이다. 일본으로의 수출도 고려한다.
민족이 전면에 나서는 것 같으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 그보다는 인간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억압적인 시대에 희생당하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헤어날 수 없다. 미워하고 원망하며 서로가 원수가 되어 싸우고 상처입힌다. 인세의 지옥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떠밀리고 갇히고 만 지옥. 많은 조선인들이 범죄자가 되려 한다. 웃돈까지 줘가며 도비패의 일원이 되려 한다. 그런 신정태를 김옥련은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김옥련에게도 시련을 찾아온다. 올곧았다. 한결같았다. 신정태만을 바라보았다. 비로소 회의가 찾아온다. 신정태가 원망스럽고 자신이 원망스럽다. 새로운 꿈이 찾아온다. 새로운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오히려 달콤해서 깨기 싫은 꿈이다. 시놉시스를 읽었다는 것은 그래서 아주 크게 손해 본 듯한 느낌이다. 진세연의 김옥련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신정태를 향한 악의가 구체화된다. 그리고 신정태를 위한 인연이 준비된다. 모일화(송재림 분)과의 만남은 너무 작위적이었다. 억지로 짜맞추느라 곳곳에 빈틈이 보인다. 신정태가 위기에 처한다. 김옥련이 흔들리려 한다. 가야는 다시 결심을 다잡는다. 일국회의 악의는 아오키를 통해 신정태를 향하게 된다. 운명은 잔인하다. 그들의 길이 뒤섞인다. 저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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