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징표다. 군왕의 학문이라 일컬어지는 '대학연의'를 우왕(박진우 분)은 이인임(박영규 분)의 반대로 배우지 못하는데, 정작 이성계(유동근 분)는 아들 이방원(안재모 분)에게서 듣고 스스로 찾아서 읽는다. 정몽주(임호 분)의 손에 이끌려 다시 이성계를 찾은 정도전(조재현 분) 역시 대업을 말하며 바로 이 '대학연의'를 내놓는다.
원래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성계가 평소 '대학연의'를 가까이 두고 즐겨읽었다고 기록하고 있거니와, 그 의도란 것 역시 결국은 이성계가 '대학연의'를 통해 벌써부터 군왕이 될 자질을 키우고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송나라의 유학자 진덕수가 4서의 하나인 '대학'에서도 그 핵심이 되는 삼강령과 팔조목을 세분하여 주석한 것으로으로 제왕의 수양과 치국의 근본에 대해 밝히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대학연의'였기 때문이었다. 제왕의 학문, 제왕학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대학연의'를 군왕들만 읽었느냐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당장 서연에서도 권근 등의 사대부들이 우왕에게 '대학연의'를 강론하려 하고 있었다. '대학연의'를 배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군왕을 받들어 보필하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또한 선비의 도리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선비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배우고 익히고 있는 것이 또한 바로 이 '대학연의'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선비라고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면 누구나 선비라고 불렸다. 사대부라고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향리의 자식이든, 권문세족의 후예이든, 무신의 후손이든, 성리학을 배우고 그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려 했다면 그들은 모두 사대부라 불렸다. 이성계가 '대학연의'를 구하려 했을 때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누구나 원하면 책을 살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단지 '대학연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인임은 이성계가 반역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임금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으로 그 밝음으로 삼는다. 그것은 임금의 입장에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신하의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 귀절이다. 조선의 왕들이 괜히 선비들에게 '대학연의'를 읽으라 권장한 것이 아니다. 임금이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임금이 자신을 알아본다면 그것이 곧 임금의 밝음일 것이다. 무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역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인임에 의해 반역의 증거가 되고 최영(서인석 분)마저 그것을 확신하게 된다.
단지 말장난이다. '대학연의'는 제왕학을 다룬 책이다. '대학연의'에는 제왕의 갖추어야 할 제왕의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가 쓰여져 있다. 그러므로 '대학연의'는 제왕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따라서 제왕이 아닌 자가 '대학연의'를 읽는다면 그것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인문학의 고전인 '자본론'이 단지 사회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적표현물이 된다. 적대집단이 주장하는 바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적대집단이 사용하는 단어와 비슷한 단어를 쓰고, 그와 연관되거나 연상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그런 것들이 상대를 이 사회로부터 배제하거나 말살할 근거가 되어준다. 그것을 또 믿는다.
우화일 것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빗댄다. 권력의 속성과 그 권력이 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비단 이인임의 경우만이 아니다. 권력을 탐하여 다른 이를 무고하려 할 때 가장 쓰이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방법일 것이다. 유자광이 남의를 고발했을 때도, 훈구파가 조광조와 그의 당여들을 몰아낼 때도, 중국 명나라의 태조 홍무제와 청나라의 황제 건륭제는 자신들이 주도해서 수도 없이 문자의 옥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 사소한 행동이나 표정까지도 모두 근거가 되어준다. 이유가 있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결론부터 내리고 나중에 이유를 찾는 것이다. 진실을 거짓말보다 더 훌륭하게 사람을 속인다.
단지 '대학연의'인데도. 그래서 이인임은 그것을 반역의 증거로 삼고, 조선의 관리들은 그것을 이성계가 준비된 임금인 증거로 삼았다. 이성계가 실제 '대학연의'를 즐겨읽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설사 즐겨읽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왕이 되고자 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성계를 죽이고자 하기 때문이고, 이성계가 이미 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유가 되어준다. '대학연의'가 아닌, '대학연의'를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이 그 근거가 되어준다. 논리가 그를 위해 부역한다. 정의가 배제된 논리란 비열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인임이 이성계를 죽이려 한다. 아직 이인임에 맞설 수 없기에 이성계는 살고자 한다. 이인임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인임을 공격하려다 고려가 무너질 것을 걱정한다. 고려가 무너지고 난 뒤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두려워한다. 확신이 필요하다. 이인임을 죽이고 고려를 무너뜨려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이. 어쩌면 가장 이기적일 것이다. 항상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양심과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 뿐이다. 그래서 성급한 이방원과는 달리 그는 끝까지 자신을 낮추고 기다릴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자신조차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그는 이미 동북면의 왕이다. 동북면은 오래전부터 그의 왕국이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무런 확신도 주지 못한다. 그저 머리만 좋은 인사는 필요가 없다. 만일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몽주를 곁에두려 했을 것이다. 빗장을 채워두고 상대를 시험한다. 정도전이 본 것이다. 정도전이 더이상 이성계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뒤로 물러난 이유다. 섣부르게 열려 했다가는 용의 역린을 건드릴 수 있다. 가장 절박한 순간을, 자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때를 기다린다. 어차피 이성계는 고려와는 양립할 수 없다. 함주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이성계의 힘은 이미 고려에 넘친다.
이방원과 정도전이 서로 엇갈리고 만다. 이인임이 이성계의 가족을 노리며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그때 이미 정도전은 정몽주의 손에 이끌려 이성계에게로 간 뒤였다. 악연이다. 이방원에 의해 천복이 죽었고, 정작 정도전을 끌어들이려 하면서도 고작 이익만을 내세우고 있었으며, 이제 때마저 맞지 않는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장치다. 이방원에 의해 이성계는 '대학연의'를 알게 되고, 다시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대학연의'를 건네준다. 그 '대학연의'로 인해 이성계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몰리게 된다. '대학연의'는 왕의 학문이다.
이성계가 걸어놓은 마음의 빗장에 정도전은 정면으로 부딪히려 한다. 반역을 말한다. 새로운 왕조를 말한다. 왕이 되라. 새로운 왕조의 태조가 되라. 격동하는 내심을 숨기려 이성계는 칼을 꺼내든다. 정도전을 베는 칼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빗장을 베는 칼이거나. 조금씩 넘쳐흐르던 그의 속내가 이제 그 실체를 드러내려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 진실이. 무겁다.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양은 가득히 - 그들의 눈물, 내가 누구를 어떻게 용서해! (0) | 2014.02.26 |
---|---|
태양은 가득히 - 정세로의 절규, 드라마에 힘을 불어넣다 (0) | 2014.02.25 |
정도전 - 마침내 이성계와 정도전이 만나다 (0) | 2014.02.23 |
별에서 온 그대 - 순간을 영원처럼, 마치 평범한 연인처럼 (0) | 2014.02.22 |
감격시대 - 신정태의 오열, 배우 김현중을 발견하다 (0) | 201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