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도록 들었었다.
"너만 잘되면 돼!"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새싹이 돋고, 낙엽이 쌓여가도,
어디선가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어디선가는 모두가 기뻐할만한 큰 일이 일어나도,
그러나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너희는 공부만 열심히 잘하면 된다.
심지어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만 잘하면 저런 일 당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 못해서 다 저런 일 당하는 것이다.
선생님들 탓할 것 없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먼저 그런 말들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고나 불행을 겪는 것은 오로지 개인이 못나서다. 개인이 잘났고, 그래서 출세도 했다면 그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부해라. 공부해서 출세하라.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기보다 철저히 타자로서 분리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을 짓밟고 올라가는 법을 강요한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다른 사람들이야 어떤 처지에 놓여있든,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든, 중요한 것은 너다. 네가 성공하는 것이다. 네가 잘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정에 약한 한국사회다. 인정이란 관계중심이다. 보편적인 세계가 아닌 자기를 중심으로 한 특정한 세계다. 여기에 타인과의 교감과 공감이라는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조차 단절되고 만다. 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최소한의 명예마저 사라진 한국사회의 이기주의는 여기에서 출발할 것이다.
나만 잘되면 돼. 주위만 잘되면 돼.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그래서 설사 공권력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더라도 그것이 내게 이익으로 돌아온다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증거를 조작해서 범인으로 만들어도 나에게 직접적인 해만 되지 않는다면 역시 전혀 문제라 여기지 않는다. 최소한의 책임만 회피할 수 있으면. 결과야 어떻게 되든 자기의 책임만 줄일 수 있다면.
배가 침몰하는데 선장이라는 사람이 승객들을 대피시키기는 커녕 자기가 먼저 배에서 내려 도망치고 있었다. 대구에서 지하철에 불이 났을 때도 승무원은 가장 먼저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고 있었다. 누구를 탓할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내게 이익이 되었으니 상관없다. 오히려 잘한 것이다. 그래도 성공만 했다면 자기책임까지 어떻게든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인명과 운을 맞바꾼다.
일제강점기가 남겨놓은 안타까운 유산 가운데 하나다. 해방공간에서의 혼란 역시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보편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다. 지켜야 할 보편적인 가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다. 오로지 내 실력만. 내 출세만. 내 성공만. 정의가 사라진 무도한 폭력의 시대는 그것을 더욱 확인시켜 주었다. 정의로운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바보같다는 뜻이다. 영리하다는 것은 규범을 교묘하게 잘 이용한다는 뜻이며, 현명하다는 것은 그러고도 오히려 뻔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새삼 아이들에게 제대로 똑바로 살라 가르친다는 것이 우스운 것이다.
어째서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이 존경받지 못하는가. 부자들도 존경받지 못한다. 정치인, 고위관료, 교수, 저술가... 과연 누가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을까? 아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그만한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그래서 개인은 똑똑해지고 더 크게 성공도 하지만 한국사회 전반은 취약해진다. 그런 사회를 그럼에도 끝까지 부여잡으려 한다.
어느 학교에서 세월호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에게 공부나 하라 윽박지른 사실이 알려졌다. 한두학교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학교일 것이다. 아니라면 학부모들이 다그칠 것이다. 어째서 애들 공부시키지 않았느냐고. 아이들 공부하는데 방해되도록 그런 것을 보고만 있었느냐고.
메비우스의 고리를 보는 것 같다. 두 개는 결국 한 면이다. 그리고 다시 하나로 이어진다. 개인에게 극기를 강요한다. 강해지라. 현실을 바꾸기보다 개인만 강해지라.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정의란 없다. 그런데도 '정'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쓴다. 인정이라는 말에 뿌듯해하기도 한다. 명예도 없고, 가치라는 것도 없다. 성공과 출세만이 있다. 인간이 계량된다.
안타까운 사고를 접하고도 이런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스스로 고민하게 된다. 아니 알고 있다. 대부분 알고 있다. 고치려 하지 않을 뿐. 나만 잘되면 상관없으니.
어른이 아이를 죽인다. 어른의 잘못이 아이들의 순수를 죽인다. 어른이 죄다. 더 큰 죄를 저지른다.
우울하다. 우울한 밤이다. 술에 취하려 한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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