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독재가 필요한 때도 있는 듯하다. 개혁을 하려는데 기득권이 반발한다. 법과 제도를 바르게 고치려는데 기존에 이득을 보던 무리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반발과 견제를 무릅쓰고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보다 과감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비판과 반대의 소리를 무시하고 저항은 힘으로 눌러버린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독재라는 것이다. 히틀러 역시 애국자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 독일과 독일민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오로지 독일과 독일민족의 영광과 번영을 위한 것이었고, 그를 위해 유대인학살과 끔찍한 침략전쟁을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다. 옳은 판단이고 선택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어떤 의심도 비판도 허락하지 않게 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로지 독일과 독일민족을 위한 선의에서 비롯된 자신의 선택이기에 그를 반대하는 것은 독일과 독일민족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는 배제해야 할 적이고 악이다.
물론 현실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탐내고 그것을 휘두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어떤 숭고한 이상을 위해 권력이라는 수단을 간절하게 바라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혁명 이후 볼셰비키의 독재가 시작된 것도 러시아의 현실에서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제정러시아의 봉건적 권위와 잔재들을 일소하고, 기득권과 맞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을 고안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더 강한 힘이 필요했었다. 공산주의 일당독재란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었는가 모두는 너무나 잘 안다.
올리버 크롬웰도 금욕적이고 정열적인 모범적인 독재자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냈지만 그러나 누구도 로베스 피에르 개인의 도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결국 하나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가? 다른 주장, 다른 견해, 다른 지향, 다른 추구, 자신과 반대되거나 자신에 비판적인 다른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를 최소한 인정은 하는가. 굳이 그것들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스스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가능한가 아닌가의 차이다. 이미 자신과 다른 수많은 의견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 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희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사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행동들을 용납하지 못하겠다 하더라도 굳이 그로 인해 일어나게 될 희생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공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정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그를 밀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정확히 상대의 주장이나 행동들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상대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겠다. 동기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결국 다름은 서로 다른 인격과 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확실히 정도전(조재현 분)은 이인임과는 다르다. 이인임은 정치가였다. 자신과 입장이 달라도 필요하다면 인정했다. 자신과 견해가 다르고 이해가 달라도 그를 위한 최소한의 자리 만큼은 남겨둘 줄 알았다. 그래서 이인임에 비판적이던 정몽주 등이 이인임의 집권 아래 조정에 출사할 수 있었다. 이인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 또한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떻게 되도 상관없었다. 고려가 어떻게 되든 자신이 누리는 영화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전혀 아랑곳할 바가 아니었다. 누가 옳든 누가 그르는 단지 자신의 권력만 노리지 않으면 된다. 그에 비해 정도전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다르다면 모두가 적이 되고 만다.
질투가 아니었다. 정도전이 누리는 권력과 영광을 탐내어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정도전처럼 임금의 무조건적인 신임과 총애를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바랐다면 조준(전현 분) 역시 가능성도 불확실한 대업에 자신을 내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권문세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하기만 했다면 더 쉽고 더 편한 길들이 얼마든지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 차라리 그보다는 존재였을 것이다. 존엄이다. 정도전의 일부가 아닌 별개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조준 자신이었을 것이다.
의견조차 묻지 않는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멋대로 결정하고 단지 통보할 뿐이다. 자신은 조준이다. 절대 정도전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는 당당한 새나라 조선의 좌시중 조준일 것이다. 묻지도 않고 정도전의 당여라 하여 멋대로 판단하고,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편하게 저 하고 싶은 대로 단지 지시만 한다. 조준에게 자신과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조영무가 그 역린을 건드린다. 결국 생사를 함께한 - 더구나 정치적으로도 크게 입장이 다르지 않은 조중마저 품지 못하는 빈약한 도량인 것이다. 하물며 조준만 못하고 조준처럼 가깝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젊은 관리와 유생들이 결집한다. 공신들에 막혀 꿈조차 꿀 수 없게 된 젊은 관리와 유생들이 정도전의 위기를 기회라 여기고 모이기 시작한다. 벌써 왕자들과 각지의 절도사들 역시 정도전이 추진하던 사병혁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가장 앞장서서 정도전에 맞서 온 이방원(안재모 분)이 그 구심점 역할을 한다. 정도전에 불만을 가지고 반감을 드러내던 이들이 이방원을 중심으로 모여 정도전을 노리게 된다. 듣지 않았다. 헤아리지 않았다. 왕의 신임에만 의지한 무소불위의 권력이 정도전을 방심케 했다. 인치의 한계다. 원래대로라면 재상의 가장 큰 우군이 되어야 할 유자이며 사대부들인 것이다. 사대부와 적이 된 정도전의 권력은 그의 순수한 이상마저 무색케 만든다.
세자만이 아닌 정도전 자신 역시 들었어야 헸을 것이다. 두루 살피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마음을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필요없었다. 왕이 있었다. 왕의 신임이 있었다. 왕이 건재한 이상 누구도 정도전에게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방심이 틈을 보이고 말았다. 왕과 균형을 이룰 총재로써 관리들과 유생들의 관심과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왕 한 사람이 인정하니 모든 것이 필요없어진다. 그 빈틈을 이방원은 노린다. 공신들 사이에서 어쩌면 주어지지 않을 지 모르는 기회를 이방원과 하륜이 약속한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준다. 관리와 사대부의 지지를 잃은 총재에게 다음은 과연 무엇일까? 독재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는 것이고, 소외된 이들을 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피를 흘려야만 독재는 유지된다. 정도전은 모두를 소외시키고 말았다.
신덕왕후 강씨(이일화 분)가 마침내 병으로 누웠다. 건국에 있어 이방원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신덕왕후 강씨였다. 고려의 명문이었고, 상당한 재산과 인맥으로 이성계가 개경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당대의 권력자들에 소개하여 기회를 주었고, 이성계가 대업을 이루는데도 배후에서 막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강씨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방원도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강씨의 와병과 죽음은 이방원에게도 기회가 된다. 역사는 가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쉽게 빠져드는 함정이다. 사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공신이라고는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던 주원장의 의심병이 조선에서는 정도전을 향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정도전이 보인 부국강병의 노선이 명을 자극하고 그로 인해 이방원에게도 기회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이용한 것이 실력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단지 주원장과 이방원 사이의 밀약으로 처리하다니. 그런 정도를 넘어 한 나라의 왕자로서 명황제의 밀명을 받는다. 조선의 왕자가 중국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하수인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음모론에 이끌리는 것은 좋지만 그러기에는 이방원의 하는 일이 너무 없다. 장점도 명분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대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것은 사대부들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는 것은 새로운 나라의 기득권을 위하는 사대부의 탐욕이었다. 정도전의 공을 탐내어 하륜 역시 자신의 힘으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고자 한다. 권근 또한 사대부로써 국정의 중심에서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기를 꿈꾼다.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주원장의 밀명은 그러한 명분없는 탐욕을 극대화하는 장치일 것이다. 아무리 한 나라의 왕자가 다른 나라 황제의 밀명을 받고 공신이자 나라의 재상을 죽인다. 필연적인 혁명이 성공하고 난 뒤 그 과실을 두고 서로 다투는 저열하고 비루한 현실인 것이다. 대업의 대의를 이루었으니 남은 것은 탐욕 밖에 없다. 그 탐욕시 서로를 노린다.
정도전이 이룬 업적들이 그리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다. 그보다는 권력이다. 정도전이 그토록 가지고자 했던 권력이며, 모두가 탐내고 있는 권력이기도 하다. 그 권력이 있었기에 정도전은 자신이 품은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그 권력을 손에 넣고자 대의를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이었다. 대의가 곧 권력이다. 이제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인가. 그것이 정도전을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과정까지도 포함이다. 또 어떻게 이방원은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가. 성리학의 이상만을 쫓는 정도전에 비해 하륜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누구도 옳지 않다. 누구도 전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 온통 혼란스럽다. 그것이 현실이다. 서로 다른 이해, 서로 다른 견해, 더로 다른 지향과 주장들, 그런 가운데 정도전은 더욱 고립되고 이방원은 더욱 세를 불려간다. 정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정도전의 오만과 오판이 이방원에게 기회를 준다. 정도전 자신을 죽이는 칼이다. 주원장은 필요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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