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쁜 녀석들 - 편한 뉘우침과 사죄, 개인의 사정으로 흐르며

까칠부 2014. 11. 17. 03:42

때로 가해자의 죄책감이 피해자에게 더 큰 아픔과 상처로 남기도 한다. 미워할 수조차 없다. 차라리 마음편히 원망할 수조차 없다. 용서해야 하는가. 사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당연히 미워하고 원망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이해한다고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누가 판단하는가.


결국은 그 또한 자기를 위한 이기인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고 나니 그동안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질러 왔는지 비로소 알겠다.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죄송하다. 얼마나 오만한가. 자신과 같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슬픔과 아픔이 눈앞에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과 같은 것일 터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감히 가해자가 피해자를 이해한다. 가해자 자신의 고통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계량하려 한다. 위로받으려 한다. 자기를 학대함으로써 자기가 자기에게 벌울 주고 자기가 자기를 용서한다. 알아듣지도 못할 사과로 단지 자신의 마음의 짐만을 덜려 한다.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돈이다. 누가 보내는지, 어떤 이유로 보내는지, 더구나 그 돈들이 어떤 돈들인지. 정태수(조동혁 분)나 그의 동료들이나 댓가를 받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청부업자들인 것이다. 정태수가 미안해하는 박선정(민지아 분) 역시 그렇게 정태수에 의해 청부살해당한 피해자였다. 어느날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사람을 죽여 돈을 벌던 살인청부업자가 한 달에 100만원이나 되는 돈을 꼬박꼬박 보낼 수 있는 정상적인 직업을 바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정태수 자신은 경찰에 자수하여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이다. 청부살인으로 번 돈으로 청부살인의 피해자에게 돈을 보낸다. 이보다 더 지독한 위선과 기만이 어디 있는가. 그 사실을 알면 피해자의 가족은 과연 기뻐할까?


그냥 자기 편하자고 하는 일들인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돈을 보내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과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그러면서 만족하는 것이다. 자기는 이만큼이나 미안해하고 있구나.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구나. 그런 자신이 자칫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만족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가해자인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 만큼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피한다. 그래서 숨는다. 그래서 도망친다. 딱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자기가 자기에게 벌을 준다. 가까운 사람을 모두 잃고 - 더구나 그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목숨을 빼앗았다 - 혼자서 슬퍼하고 있으면 그를 동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정태수에 의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아직 그는 최소한의 법이 정한 댓가조차 치르지 않고 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서 되겠는가. 그래서다. 사람은 충분히 동정한다. 위로도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죄는 결코 동정도 위로도 해 줄 수 없다. 죄는 죄 그대로 남는다.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벌을 다 받고 사회로 돌아왔다고 죄가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니다. 설사 피해자 자신이 용서하더라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자칫 가해자 개인에 대한 동정이 죄에 대한 용서로 변질된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위로와 이해가 죄에 대한 이해와 섞이고 만다. 지난 박웅철(마동석 분)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도소에서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으니 비로소 발뻗고 잠들 수 있겠다. 그는 과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지난 죄를 지우고 단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만을 동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불쾌한 방향으로 드라마가 흘러가려 한다. '범죄자'들로 구성된 비합법, 비공식적인 경찰내 조직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수단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불가능한 사건을 전담해서 맡는다. 사건이 주가 되어야 할 터다. 범죄자는 범죄자인 채여야 할 것이다.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 자신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미끼로 더 많은 더 큰 죄를 밝혀내고 응징한다. 뉘우치고 말고는 범죄자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이지 다른 사람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5회에서 오구탁(김상중 분)은 그 범죄자들을 위해 경찰로써 그들을 경계하고 견제하려 하는 오미영(강예원 분)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드라마에 너무 이입해 버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범죄자의 입장에서 범죄자를 먼저 이해해 버렸다. 그 과정들을 보여준다. 그런 결론으로 시청자를 유도하려 한다. 그래서 사건이 아닌 범죄자 개인의 이야기로 드라마의 중심이 옮겨진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그같은 범죄자 자신의 노력이 보답받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다지 필요도 없는 박웅철과 정태수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깔끔하게 무시된다. 이제 박선정 한 사람만 정태수의 진심을 이해해주면 정태수의 죄는 사라진다. 사건을 쫓기보다 개인의 이야기를 쫓는다. 이제는 이정문의 범죄와 관련한 또다른 살인청부의 이야기다.


과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위할 줄 알고, 주위에 친절하고 헌신적인 사람일까? 정태수는 어떨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돈을 버는 살인청부없자지만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처럼 아끼고 서로를 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같고 동생같던 이들을 죽인 또다른 형제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며 정태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형님으로 모시던 이두광을 위해 그가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발벗고 나서는 박웅철은 어떨까? 좋은 사람이니 그가 저지른 죄에도 다 이유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누군가에게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다. 개인의 인정이 아닌 보편의 정의와 윤리를 따른다. 아직 우리 사회가, 아니 인간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을 것이다. 단지 내게 좋다고 그가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확실히 밸런스라는 것이 사라졌다. 박웅철보다 싸움을 잘한다. 이정문(박해진 분)보다 머리도 좋다. 오구탁보다도 범죄라고 하는 전문영역에 대해 해박하다. 지금에 와서 나머지는 사족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작가는 정태수 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멤버들은 예정에 없었기에 그래서 작품 안에서 그들은 거의 몰려다니고 있다. 굳이 '미친 개들'에 3명이나 다른 인물들이 속해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개인의 이야기라면 감옥에 갇혀 있는 채로도 박웅철이든 이정문이든 다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구탁과 불량한 이미지를 공유하며 어떤 알 수 없는 광기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오재원(김태훈 분) 검사와 유미영 정도면 팀이 오히려 더 간결해지고 더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처음의 충격과 흥미가 가시니 단점만 눈에 들어온다. 신파적인 구성은 통속드라마로서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개성이 강한 설정을 두고서도 그렇게 평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성의가 없거나 아니면 능력이 부족한 것일 터다. 쉽게 편하게 대중에 먹힐 것 같은 드라마만을 만든다. 대중을 우습게 본다.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 기대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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