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란 곧 동기다. 현재를 납득하고 미래를 기대한다. 그토록 오만하던 장백기(강하늘 분)가 강대리(오민석 분)의 말 한 마디에 바로 목장갑을 꺼내 끼고 쪼그려 앉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강대리가 그리 시키는 것은 다 그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강대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 강대리에게 반항했던 것이었다. 왜 지금 자신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 못하겠다.
시작은 의심이었을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온 것이 어느 순간 전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신마저 버려가며 열심히 일해야 한다. 어째서? 왜? 무엇때문에 자신이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허신해야 하는가? 1억 2천만 달러면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액수일 것이다. 그 가운데 과연 계약을 성사시킨 박과장(김희원 분) 자신의 몫은 얼마인가? 너무나 큰 금액이, 그 금액을 만들어낸 자신의 가치를 오판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박과장과 장백기, 안영이(강소라 분)를 자꾸 오버랩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한석률(변요한 분) 역시 자신의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열심히해도, 자신들과 같은 신입사원들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오히려 누구보다 능력있고 성실하기까지 하기에 안영이는 자신이 속한 자원팀으로부터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다. 고작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란 청소와 커피심부름, 담배심부름 정도다. 그나마 장백기는 이유를 찾았다. 어째서 자신은 이토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과는 맞지 않는 일들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그런데 이 가운데 누군가 끝까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백기는 차라리 회사를 떠나려 했었다.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단계가 보이지 않았다. 현지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1억 2천만 달러라는 큰 계약이 성사되지는 않는다. 내용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다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이 곧 팀이며 기업인 것이다. 철강팀이 계약을 추진하는 동안 그 뒤에서 그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인 여러 개인과 팀들이 있었을 것이다. 계약이 성사되고 나서도 계약된 내용대로 어김없이 실해에 옮기기 위해 다시 수많은 개인과 팀들이, 그리고 기업들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수출계약을 맺었는데 정작 공자에서 제품이 생산되지 않는다. 제품은 생사되었는데 정작 싣고 갈 배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곧 조직이다. 원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 기업의 이유다. 어떤 개인도 그 거대한 구조에 있어 단지 일부에 불과하다.
하기는 그것을 알기에 한석률도 고민하는 것일 게다. 감정이 시키는대로 그냥 들이받으면 된다.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고 그래도 안되면 자신의 상사를, 자신의 팀을, 자신이 속한 기업을 자신이 먼저 거부하면 그뿐이다. 장백기도 처음에는 그러려 했었다. 안영이만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가 단지 자신의 팀으로부터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받아들여질 수만 있다면 자원팀 안에서 정말 잘해낼 자신이 있다. 자기 혼자가 아닌 자원팀이라고 하는 팀이, 원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 기업이, 그리고 그 일부로서 자신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향한 비난이나 모욕은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의 상사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오상식이 아직 많이 미숙한데도 장그래를 인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느 정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 정도는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뒤늦은 고민에 답마저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 과정이 상당히 상징적으로 압축되어 보여진다. 주위를 살핀다. 여전히 바쁘게 일하는 주위의 모습을 곁눈질로 훑는다. 박과장의 주위는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다. 누구와도 진심을 나누지 못했다. 누구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단정지어 판단한다. 아무 가치없는 일들과 보람없는 일상에 대해. 그래서 박과장에게는 동료가 없다. 오상식 과장도, 선차장(신은정 분)도, 김동식 대리나, 너무나 당연하게 계약직에 불과한 장그래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위선조차 보이지 않는다. 위선이란 두려움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모욕하고 희롱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보이지 않는다. 회사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상사와 동료들을 배반하고 기만한 것이다. 나만 잘되면 돼. 나만 잘되면 다른 사람 일이야 전혀 상관없다. 연대가 사라진 이기의 말로를 본다. 자신과 가족만 잘살면 된다.
비단 박과장만이 아니다. 원인터네셔널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지막 순간 고민한다. 자신을 위해. 혹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와 상사를 위해. 옳지 못한 것을 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인정에 발목이 잡힌다. 역시 김부련(김종수 분) 부장과의 관계 이외의 것을 애써 보려 하지 않는 탓이다. 보이지만 무시한다. 그로 인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그것이 결국 회사의 구성원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자기만 눈감고 없던 일로 만들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평온하게 지나갈 것이다. 사회가 부패하는 메커니즘이다. 부패가 확산되고 일반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피해를 입지 않은 소수의 '우리'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장그래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 임시완에게 있어 가장 큰 약점이 되고 있을 것이다. 원작의 장그래는 승부사다. 이번 회차에서도 장그래는 승부사로서 결정적인 순간 박과장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었다. 하기는 그래서 더 승부사다운지도 모르겠다. 전혀 더 심각해지거나 진지해지는 법 없이 항상 평온한 표정 그대로 상황을 파단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드라마는 결국 눈으로 보는 것이다. 가장 긴장되어야 하는 순간인데 박과장이 마침내 파멸하는 순간까지 그저 물흐르듯 지나가고 있었다.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 잘생기고 연기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때가 있다. 캐릭터가 아쉽다. 인상이 너무 좋다.
안영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단지 인정할 수 없어서다.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안영이를 인정하게 될 것 같아서다. 그동안 굳게 지켜왔던 자신의 믿음을 그렇게 쉽게 놓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혹독하게 대했다. 꺾기 위해서. 주저앉히기 위해서. 그러면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원팀 전체가 안영이를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대리 자신이 처음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달랐다. 차라리 안영이를 걱정해서 욕설을 퍼붓는다. 그것은 하대리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어리석고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또한 사람이다. 하대리의 경우는 화나게 할수록 안영이의 의도가 먹혀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설득되고 있다.
장백기는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한석률은 이제서야 겨우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안영이의 싸움은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안영이도 힘에 부친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장그래는... 그냥 장그래의 자리다. 영업 3팀과도 원인터네셔널과도 전혀 상관엇는 처음부터 장그래의 자리였을 것이다. 2년 뒤에도 여전히 함께일 것이라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단지 잊고 있을 뿐이다. 그의 싸움은 너무나 쓸쓸하다. 단지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기약도 없이.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열심일 수밖에 없는 안영이와 무척 닮아 있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일까? 현실의 아직도 수많은 안영이들을 위해서.
박과장도 한때는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는 훌륭한 상사맨이었을 것이다. 타락은 한 순간이다. 선택은 한 순간이었다. 그때 바로잡지 못한 오류들이 끝내 되돌릴 수 없는 잘못으로 이어지고 만다. 파티션에 의해 격리된 직원들이 서로 고립된 파편화된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을 위한 삶에서 어떤 보람조차 찾지 못한다. 자기 밖의 무언가로부터 그 의미를 찾으려 한다. 박과장은 돈이었다.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잊고 만다. 생각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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