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누구에게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원하지 않는다면 당당히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요구한다. 그러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책임이다. 당연히 그 책임부터 먼저 묻는다.
실제 판례가 있다. 어느 출판사의 임원이었을 것이다. 정규직을 미끼로 비정규직 여사원을 자신의 방으로 유인해 옷을 벗게 만들고 입을 맞췄다. 법원은 피해자가 스스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는 점만을 감안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의 희망이 사라질 수 있다는, 혹은 드라마에서처럼 짧은 기간이나마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지 못하는 탓이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가족의 생계와 병든 어머니의 생계가 바로 피해자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성폭행 관련해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많다. 성폭행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많은 경우가 과연 충분히 거부의사를 밝히고 마지막까지 저항했는가의 여부다. 어떤 이유로든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고 저항을 포기했다면 합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여성이 남성에 대해 가지는 본능적인 공포와 더구나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을 쉽게 간과해 버리는 탓이다. 어지간한 성인남자도 바로 눈앞에서 누구가 주먹을 지켜들고 목소리를 높이면 저도 모르게 주눅들어버리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물며 신체적으로도 한참 불리하데다 대부분 고립된 상태에서 상대의 위협에 노출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조차 인간 대 인간으로, 대등한 개인 대 개인으로 끝까지 원치 않는 행위를 거부하고 저항하라 말한다. 찢기고 멍들고 피흘린 상처만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비로소 증명해준다.
정신지체를 가진 소녀에게 성에 대하 여러 지식들을 묻고 그 의미를 알고 있으니 합의에 의해 관계를 가진 것이라는 판결도 있었다. 정신지체를 가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애써 생각하지 않은 탓이다. 비장애인들이 그 정도 알고 있으면 다 알고 있듯 정신지체가 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결코 누구나 평등할 수 없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해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고, 같은 남성 안에서도 신체적인 조건이 다 다르며, 사회적으로 지위와 신분과 가진 부가 차이가 난다. 불평등한 현실에서 오로지 개인만을 보고 평등만을 강조한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개인이 스스로 대등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남는 것이 바로 드라마에서 보는 바 그대로다. 성추행을 당했지만 거부하지 않았으니 동의한 것이다. 오히려 그 사실에 대해 쓴 일기가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쓰이다.
아래에서 보는 인간과 위에서 보는 인간과의 차이일 것이다. 하기는 한열무(백진희 분)도 차윤희를 성추행하고 자살까지 하게 한 성형외과 의사 주윤창과 합의해야 했던 차윤희 아버지의 입장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유일한 수입원이던 차윤희가 사라졌다. 가족의 생활비와 아내의 병원비가 당장 막막해졌다. 주윤창을 수사해서 처벌하려면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러고서도 주윤창을 처벌할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다. 검사가 되어 있으니 법으로 어떻게든 해보려 마음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조차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법은 그저 먼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자신이 지금 누리는 지위와 권력과 부는 다름아닌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다. 누구나 실력이 있고 노력만 한다면 자신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은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지도, 더구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고자 검사가 되었다. 자신이 방치한 한 아이의 죽음을 밝히려. 어쩌면 자신의 잘못으로 떠나보낸 어린 동생의 죽음을 밝히려. 그래서 더 검사라고 하는 - 아니 법이라고 하는 현실의 부조리가 절실하게 와닿는 것일 게다. 문희만(최민수 분)는 그같은 부조리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이미 그같은 현실을 알고 몸소 겪었으며 그것을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타협하라고 말한다. 받아들이라 윽박지른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협박까지 한다. 그것을 거스를 힘이 아직 구동치(최진혁 분)에게도, 한열무에게도 없다. 벌써 한 번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꺾이고 말았다. 그들이 선택할 것은 현실에 적응해 버린 문희만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두 사람의 로맨스는 그같은 고민과 함께 한다. 한열무가 오해하고 있던 동생의 죽음의 진실이 드디어 구동치에 의해 일부 밝혀졌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하다. 평등해서는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평등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규직을 미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여성을 성추행했다. 계약연장을 이용해 거부할 수 없도록 피해자를 억압해 성추행을 일삼았다. 그런데 어째서 무죄인가. 피해자는 죽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가해자의 진술만 남는다.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은 가해자와 합의한다. 피해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진술을 거부한다. 무력해진다.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검사인데. 고작 검사일 뿐인데.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판더의 죽음은 다시 송아름(곽지민 분)의 자수로 이어진다. 송아름에게서 나와서는 안되는 이름들이 줄줄이 나온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냥 냄새만 피운다. 송아름에게서 나온 이름 가운데 주윤창이 바로 지난주 송아름이 판다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위장했던 차윤희와 이어진다. 단순히 송아름의 트릭을 위해서만 자살한 것이 아니었다. 차윤희에게서 주윤창이 나오고, 주윤창은 다시 다른 이름들과 이어진다. 송아름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김재만이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동치에 의해 한열무의 동생을 죽인 범인이 검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유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이 치밀하고 견고하다.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의로운 검사가 아닌 정의를 고민하는 검사다. 정의에 대한 확신으로 법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히어로가 아닌, 그저 현실에 치이고 꺾이는 평범한 개인이다. 그래서 더 일상적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선택과 그들이 마침내 내리게 될 결론이 궁금해진다. 사람은 사랑한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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