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만과 편견 - 한결의 죽음과 고위층 성접대, 조각들이 모이다

까칠부 2014. 12. 2. 03:16

뻔히 보이는 함정인데도 너무나 쉽게 빠지고 만다.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자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드라마 제작현실이란 그렇게 여유롭지만은 않다. 어느 순간 자칫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결과 드라마는 혼란에 빠져버리고 만다. 애초의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서울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한눈을 팔든 샛길로 새든 일단 서울까지는 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을 보여주려 함인가. 무엇이 작가가 진정 의도한 것인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강수(이태환 분)가 어쩌면 한별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 한참을 더 시청자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죽었다던 한별이 사실은 살아 있다. 죽은 것은 한별이 아닌 다른 아이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한별이 죽임을 당한 당시의 사정을 추적해가는 구동치(최진혁 분)와 한열무(백진희 분)의 동기가 희석된다. 한별이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는데 한별을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이 그렇게 절박하거나 치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동기를 강화한다.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희망이 이내 죽은 것은 역시 한별이었다는 잔혹한 절망으로 돌아오고 만다.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희망따위 가지지 않았더라면. 구동치가 구하려 했던 아이는 한별이 아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도 한별이 아니었다. 구동치가 구하려 했던 그 아이가 바로 강수였다. 강수는 살았고 그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다른 아이는 죽어 있었다. 또 한 번의 절망과 좌절이 한열무를 분노케한다. 강수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구동치의 죄책감을 다시 자극한다. 반드시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 더구나 시청자만이 알고 있는 사실, 과거 정창기(손창민 분)가 저지르고 문희만(최민수 분)이 수습하려 했던 교통사고 피해자의 어린 아들은 한별이 아닌 강수였었다. 어쩌면 강수를 대신해서 한열무가 어이없이 희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어이없는 죽음이다.

 

고위층이 연루된 성접대 수사 역시 결국 한별의 죽음과 연결된다. 문희만과 정창기의 불화와 갈등은 오래전 있었던 어느 교통사고로부터 비롯된다. 정창기가 운전하던 차가 한 여성을 치었고 문희만은 그것을 수습하려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여성을 어머니라 부르던 아이가 아마 강수였을 것이다. 그 어린 강수가 브로커 박순배가 보는 앞에서 손가락으로 마침 문밖을 지나던 문희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그 박순배가 판더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지는 고위층 성접대 수사를 무마하기 위한 브로커로 등장한다.

 

어쩌면 박순배가 경찰을 그만두고 브로커로 변신한 것과 시기적으로 상당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정창기를 이용한 함정수사에서 시작된 마약수사가 어느새 여기까지 이르게 된다. 고위층이 연루된 성접대 사건을 파헤치고, 더불어 구동치와 한열무 사이에 고리가 되어주는 한별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까지 밝혀낸다. 문희만은 아니다. 정창기가 변호사마저 그만두고 전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수가 있는 곳을 알고 죄책감에 자신마저 내팽개치고 있었다. 강수의 신세에 대해 아무것도 밝히려 하지 않고 있었다.

 

위기가 찾아온다. 당연하다.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연루된 사건이다. 차기 검찰총장까지 노리는 거물이다. 국회의원까지 포함되어 있다.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의 은밀한 지시에 방치하듯 구동치의 수사를 용인하던 문희만이 오도정(김여진 분)을 통해 전해진 위쪽의 지시에 구동치를 내주려 한다. 하기는 인사권까지 쥐고서 마음대로 소속 검사를 발령내릴 수 있는 윗선에게 문희만 정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비로소 단서를 잡았는데.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토록 밝히려 했던 한별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과 범인에 다가갈 수 있는 고리를 찾았는데. 과연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대부분의 평범한 대중이 보기에는 평검사조차 사실 굉장히 높아 보인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형량까지 구형할 수 있다. 검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자칫 별 것 아닌 일로도 억울하게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검사가 잘만 봐준다면 곤란했던 일도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검사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더 높고 더 큰 무언가가 존재한다. 일개 브로커가 부장검사를 찾아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차장검사까지 나타나 담당검사를 다른 지방검찰청으로 내려보낸다. 명백한 불법행위가 보이고 있음에도 개인이 국가기관이라는 검사가 수사조차 마음대로 못한다. 수사받던 범죄자가 풀려나고, 그 범죄자가 지시를 받고 감히 검사를 죽이려 한다. 그래도 충분히 뒷감당이 가능하다. 정의란 왜 이리 고달프고 힘이 드는가.

 

수사드라마일까? 아니면 연애드라마일까? 하지만 수사도 연애도 결국 일상이다. 몇 번이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검찰의 일상을 다룬 생활드라마일 것이라고. 직업이 검사이다 보니 하는 일도 범죄자를 쫓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평일 출근해서 회사일을 하듯 그들은 범죄를 쫓는다. 그러면서도 사랑도 한다. 질투도 하고, 밀당도 한다. 사건이 매개가 되어준다. 과거의 사건을 쫓으며 두 사람은 과거 오해로 잠시 멈췄던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평소의 그들은 그냥 평범한 남자, 그리고 여자다. 일상에서까지 검사인 문희만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근 나머지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 수사와 수사 외적인 것은 같은 것이다. 검사와 검사 이외의 삶은 같은 것이다. 그 역시 검사가 그의 일상이다. 단지 방향이 다를 뿐.

 

정말 절묘하다. 문희만과 정창기의 갈등이 그렇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수가 물에 빠지던 장면이 그런 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창기가 미끼가 되어 시작되었던 마약수사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구동치와 한열무 사이에 놓여 있던 한열무의 동생 한별의 죽음은 전혀 다른 경로로 그 진실과 만나려 한다. 마치 퍼즐처럼. 마치 블록맞추기 놀이처럼. 각각의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간다. 어느 정도 그 형태가 보이고 있음에도 확신할 수 없다. 어딘가 또 다른 단서가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수사와 연애는 별개가 아니다. 고위층의 비리를 쫓는 사회정의와 동생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려는 개인의 사정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다. 무심코 셔터를 누른 카메라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다. 범인과 그를 쫓는 수사관과 헤어진 연인들이. 아이를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인간세상이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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