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가치있는 이유는 그만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그저 보이고 들리고 알게 되는 모든 것이다. 그저 믿고 판단하고 결론내리면 그 뿐이다. 비만인 어느 아주머니가 갑작스럽게 살을 빼다가 무리한 운동으로 헬스장에서 쓰러져 숨지고 말았다. 흔히 말하는 '팩트'다. 그러면 어째서 왜 아주머니는 그렇게 무리하게 살을 빼야만 했던 것일까? 한순간의 판단의 차이가 뉴스의 가치를 결정지었다.
13년 전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소방대장이 독단으로 소방대원들을 불속으로 밀어넣었다는 현장소장의 증언이 있었다. 피노키오인 이웃으로부터도 사복을 입고 길을 걸어가는 소방대장을 보았다는 증언이 뒤따랐다. 증언이 있었다고 하는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너무나 쉽게 믿어 버리고 말았다. 사실에 대한 믿음만으로 판단하고 결론내렸다. 소방대장의 공명심이 대원들을 위험으로 내몰았고, 정작 소방대장 자신은 혼자만 살자고 도망쳐서 어딘가 숨어있는 중이다. 그 편이 쉬우니까. 편하니까. 굳이 다른 진실이 감춰져 있지 않나 찾아헤매지 않아도 기사는 쓰여지고 대중은 반응한다.
사람들이 거짓된 선동에 쉽게 넘어가고 마는 이유일 것이다. 2회에서도 최달포(이종석 분)를 둘러싼 악소문에 대해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문의 당사자인 최달포 자신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소문의 내용은 사실이다. 입증의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겨 버린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믿어 버린다. 믿고 판단해 버린다. 그렇게 결론부터 내린다. 사람은 믿고 싶은 사실만을 믿으려 한다. 많은 사회에서 지식인이 존경받고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벼려진 날카로운 지성만이 관성과 타성 속에서 감춰진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
기자 역시 한때는 시대를 대표하는 양심이자 지성으로 존경받던 시절이 있었다.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바로 그런 기억들에 근거한다. 기레기라 부르며 언론의 보도에 대해 냉소부터 보이는 것은 그같은 기대를 배반해 온 시간들에 대한 댓가다. 어째서 기자는 기레기가 되는가. 스스로 자신이 가장 혐오하고 경멸하는 기자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작은 성공에 도취되었다. 그래서 순간에 만족해 버리고 말았다. 한 발짝 서두르려 한 걸음을 아꼈다. 그저 자신이 취재한 내용이 기사가 되어 뉴스로 보도된다는 사실에만 들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순수하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 기자들도 현실에는 얼마든지 있다.
아직 기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수한 것은 아직 기자도 되지 못한 최달포와 윤우래(이유비 분)가 아니라 뉴스로 내보내기에만 급급했던 데스크 자신이다. 과연 취재한 내용들이 사실인가. 추가로 밝혀야 할 사실들은 없는가. 신입인 최달포도 눈치챈 사실을 베테랑으로 이루어진 데스크에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오류와 실수들을 줄이고자 현장의 취재가 뉴스로 내보내지기까지 데스크를 통해 걸러지는 것이다. 자신도 역시 같은 기자였다. 과거 자기의 가족을 절망으로 내몰았던 그들처럼 자신도 역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자로서의 자각이며 반성이다. 기자가 되려 한다. 장난이 아닌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한 시련과 노력이 시작된다.
사실 설정오류다.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 LA에 사는 로빈슨은 16살이다. 일단 미국 LA에 사는 로빈슨이 누구인지 알아야 이 말이 참인지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다. 최달포는 물론 최인하(박신혜 분) 자신 역시 취재한 내용 이상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데 기사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병원을 찾아 추가로 취재를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사실을 피노키오 증후군은 미리 판단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13년 전 이웃집에 살던 피노키오는 자신이 목격한 사람이 사실은 소방대장 기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최달포에게는 시련이 필요하고 최인하에게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할 자신감이 필요하다. 하기는 피노키오 자체가 드라마를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
최달포의 형 기재명(윤균상 분)이 최인하를 본다. 가장 앞장서서 아버지를 모함하고 자신들 가족들을 궁지로 몰았던 당사자인 송차옥(진경 분)의 딸이다. 이미 복수로 손을 더럽혔다. 벌써 자신의 손에 죽음 사람만 셋이다. 처음 한 걸음 떼기가 어렵지 일단 오물에 발담그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진다. 세 사람을 죽였는데 거기에 한 사람이 더해진다고 죄가 더 커지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자살하고 살아있다던 아버지의 시신까지 발견되며 혼자가 되었다는 상실과 좌절이 그를 극단으로 내몬다. 아마 최달포 역시 기재명이 자신의 형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그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안찬수(이주승 분)가 그리 노래를 부르던 '안맞는 퍼즐조각'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인 문덕수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컨테이너에 불을 질러 두 사람을 살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덕수가 자신의 형 기재명과 통화를 했었다. 최달포가 기재명과 만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문덕수의 핸드폰의 위치가 잡히고 있었다. 과거 자신들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가를 최달포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겠지만 심증은 이미 형 기재명을 범인이라 가리키고 있다. 기재명을 쫓아야 하는가. 기재명의 범죄를 밝혀야 하는가. 무려 13년만에 형과 만난 자리에서 기하명이라는 원래 이름을 숨긴 채 최달포로 자신을 소개한다. 형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가. 한 회라는 짧은 분량 안에 최달포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기자로서, 그리고 과거의 불행한 기억에 대해서는 암울할 정도로 무겁다. 그러나 한 편 최인하를 향한 서범조(김영광 분)의 관심과 호감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가벼워진다. 최달포와 최인하의 감정은 그 가운데에 있다. 한없이 가벼운 코미디와 한없이 무거운 비극 가운데 그들은 모호함과 선명함의 경계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에마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거짓으로 이루어진 자신이기에 최달포는 진심을 전하지 못한다. 엉뚱한 서범조에게만 진심을 털어놓는다. 차라리 솔직해서 더 서러울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아픔일까. 밝은 웃음마저 어쩌면 슬프게 느껴진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조금은 시간을 끌다 나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기재명의 죄가 더 깊어지고 난 뒤 먼 길을 돌아 형제는 서로 다른 진실을 가지고 마주하게 된다. 더 고민이 깊어진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그만큼 더 혼란은 커진다. 기자로서 무모하게 뛰어든 첫사건이다. 기자가 되려 한다. 최인하를 사랑한다. 형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최인하가 송차옥의 딸임을 알았다. 선택해야 한다. 고뇌의 시간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448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생 - 그래도... 내일 봅시다! (1) | 2014.12.06 |
---|---|
피노키오 - 김공주의 일갈, 기자의 양심은 카메라에 있다! (0) | 2014.12.05 |
오만과 편견 - 검사가 범죄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이유 (0) | 2014.12.03 |
오만과 편견 - 한결의 죽음과 고위층 성접대, 조각들이 모이다 (0) | 2014.12.02 |
나쁜 녀석들 - 인간이 저지른 죄와 인간이 만드는 죄 (0) | 2014.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