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검찰이 정재계의 거물들마저 거침없이 수사하고 체포하여 처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보다 더 강한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검찰의 인사권을 갖는다면, 그 정부를 선택하는 것은 다름아닌 국민이다. 국민의 여론이 오히려 권력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국민의 눈치만 보면 된다.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사회에서 국민이란 단지 피지배계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신이 먼저 권력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그에 복종하고자 한다. 당장은 분노하겠지만 거물의 부재로 인한 현실의 혼란과 손실까지 감수할 의지나 용기는 없다. 무엇보다 단지 분노할 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 않는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현실의 위계와 권력 뿐이다. 길들여지거나 아니면 부서지고 말 뿐이다.
수석검사인 구동치(최진혁 분)의 수사가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들자 너무나 간단히 근무지를 대구로 옮겨 버린다. 근무지가 바뀌고 담당하는 사건도 바뀌면 더 이상 정식수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조차 구동치를 배려한 것이었다. 문희만(최민수 분)이 구동치를 지키려 일부러 이종곤(노주현 분)에게 부탁해서 그리 하도록 한 것이었다. 수사를 할 수 없으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수사를 계속하는 동안에는 저들은 여전히 불안해 할 것이고 언젠가 행동에 나서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를 완전히 말살하고 배제하기 위한 것이기 쉬울 것이다. 수사과정에서의 잘못들을 문제삼아 벌써 내부감찰을 시작한다. 명분도 실질적인 힘도 모두 저들이 가지고 있다.
겁먹은 맹수의 울부짖음 같다. 새끼를 살리기 위한 어미의 처절한 절규다. 문희만의 거침없는 분노는 그만큼 그가 다급하고 궁지에 몰려 있다는 증거다. 구동치의 수사에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다. 문희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된다면 그의 배후에는 검찰국장 이종곤이 버티고 있다. 이종곤 역시 구동치와 민생안정팀의 고위층마약성접대 수사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오도정(김여진 분)이 내부감찰팀을 이끌로 구동치를 압박한다. 어쩌면 당시 공장에서 보았던 남자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목적에서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중요한 단서가 구동치에게 전달된다. 문희만은 진심으로 구동치를 아끼고 염려해서 그를 말리려 하고 있었다.
사건은 또 한 단계 진화한다. 이종곤과 성무영의 오랜 갈등과 대립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문희만과 오도정의 오랜 인연 역시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정의감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검사와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대기업 고문변호사의 합작인 줄 알았었다. 연수원 동기인 그들에 의해 재건이라고 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이 마침내 잡히고야 말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화영그룹이라는 이름이 끄집어내지는 순간 그것은 전설에서 단지 경쟁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검찰마저 이용하는 추악한 모략과 술수로 전락하고 만다. 위험을 무릅쓰고 재건그룹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증거를 제공한 당사자가 15년 뒤 화영의 임원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되어 검찰들 앞에 나타난다. 그토록 강수를 목숨처럼 아끼던 개평이 정창기(손창민 분)였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힘은 무엇인가? 그 답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종곤이 그토록 위협적으로 말하던 그 위에 존재하는 실체다.
자본이란 곧 욕망이다. 욕망을 구체화하고 계량화한 매개이며 수단이다. 인간이 욕망을 가지는 한 결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을 가지는 것도 인간이다. 당장 더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도 그만한 비용이 소요된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미디어라지만 그 미디어를 지배하는 것 역시 자본이다. 막대한 자본이 미디어로 흘러들어가 그들을 구속하게 된다. 개인의 양심도, 사회의 정의도, 인간이 가지는 욕망보다 강하지 못하다. 당장 사회의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검찰마저 자본의 유혹에 사로잡혀 일탈을 서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본의 편에 서서 견제하고, 위협하고, 다투고, 그리고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에게는 하나가 되어 맞선다. 이종곤과 성무영의 뒤에 있는 것이 그 흔한 대통령이나 거물정치인이 아닌 기업이라니. 그 적나라함에 잠시 감탄조차 잊게 된다. 절묘하다. 그리고 탁월하다.
결국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15년 전 화영그룹은 라이벌인 재건그룹을 공격하기 위해 재건그룹의 법무팀장인 정창기를 이용해서 계획을 꾸민다. 검찰을 움직여 특별검사팀을 꾸리고, 그 특별검사팀에 정창기가 빼돌린 비밀장부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정창기가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자칫 재건그룹의 편에 선 특별검사들이 사고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을 약점으로 삼아 반격해 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더구나 피해자의 아들이기도 한 유일한 목격자 강수(이태환 분)는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세상으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수와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한열무(백진희 분)의 동생 한별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말았다. 과연 그것을 사주하고 행동에 옮긴 범인은 누구인가? 그 범인이 곧 지금 구동치와 민생안정팀이 쫓고 있는 고위층성접대사건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문희만과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이종곤과도, 그와 대립하는 오도정과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구동치가 내부감찰을 받으며 그 손발이 묶인다. 한열무는 아직 수습에 불과하다. 이장원(최우식 분)에게 그만한 열정이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강수는 섣부른 단서를 쥐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공장에서 구동치와 한열무가 목격한 용의자로 여겨지는 남자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공장에서 문희만과 통화했고, 구동치와 강수의 뒤를 쫓아 굳이 중요한 단서를 넘겨주고 있었다. 어차피 구동치와 강수가 타고 있던 차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브레이크에 손을 본 뒤였다. 그로 인해 강수가 크게 다친다.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구동치 역시 위험할 뻔했다. 항상 의뭉을 떨며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그 인물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연다. 물론 더 위험해진다. 싸움은 더 치열해진다.
그것은 어쩌면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좌절이었고, 절망이었으며, 체념이었다. 그래서 더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또다시 구동치와 같은 정의로운 검사가 저들에 의해 꺾여서는 안된다. 힘든 시절을 겪어 왔기에 자식들만은 그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다. 매섭게 다그친다. 문희만의 진심을 읽는다. 비참할 정도로 단호하고 간절하다.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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