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액션이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구동치(최진혁 분)나 강수(이태환 분)나 다수를 상대로 제법 멋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직접 구동치의 목숨을 노리는 장면마저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 전체에서 그 비중을 말하라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정도로 매우 미미하다. 그런데 이토록 살벌하고 긴장감 넘친다.
하기는 지배자가 오로지 폭력만으로 피지배자를 다스리던 시대는 역사 이전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의 이성은 폭력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다른 수단들을 끊임없이 고안해냈다. 때로는 신의 이름을 빌고, 때로는 정의와 도덕의 이름을 빌며, 때로는 이성과 지식과 논리를, 때로는 법과 상식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폭력을 소유한 자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지배할 힘을 가지듯, 먼저 선점하고 고도의 훈련을 쌓은 소수는 항상 그렇지 못한 다수를 지배하게 된다. 피지배자는 절호의 수단이라 여기는 그것들이 바로 지배자에 의해 생산된 무엇일 수 있는 것이다. 더 많이 더 나은 것들로 더 정교하게 갖추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 사회의 엘리트들일 것이다. 검사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선택된 엘리트로 경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선택된 소수만이 부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검찰국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 수많는 변호사 가운데 대기업과 고문계약을 맺을 정도면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겨우 수석검사인 구동치가 하려는 정도는 문희만(최민수 분) 선에서도 거의 예측과 대처가 가능하다. 문희만이 그토록 구동치를 옭죄고 다그치는 이유다. 너무 뻔히 속보이게 수사하지 말라. 구동치가 수사하는 사건과 내용들을 이종곤(노주현 분)이나 오도정(김여진 분)이나 벌써 모두 꿰뚫고 있다. 구동치를 이용하는 정도는 그들에게는 약간의 수고로움만 감수하면 되는 일이다.
구동치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구동치가 확보하고 있는 증거가 어떤 것들인가. 그렇다면 거기에 무엇을 더하면 될까? 너무나 공교롭다. 갑자기 그동안 보이지 않던 증거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미 확보한 증거들마저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납치범에게 돈이 건네진 정황이 담긴 통장을 구동치에게 전해주었던 유력한 용의자 빽곰이 난데없이 문희만이 범인이라고 자수하며 증언까지 한다. 그것을 물론 구동치도 알았다. 다만 그것이 과연 문희만이 실제 진점인데 문희만을 쳐내는 과정에서 과거에 묻었던 증거들이 쏟아지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문희만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치밀한 공작인가. 시청자마저 헷갈린다. 이종곤 자신의 입으로 아이를 납치했다 말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드라마는 문희만이 진범이라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과연 문희만이 진범이었을까? 필요한 진실마저 얼마든지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문희만을 연기하는 배우 최민수의 힘일 것이다.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노회한 베테랑의 모습을 제대로 연기해 보여준다. 어쩌면 문희만이야 말로 악역인 것 같고,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구동치와 한열무(백진희 분)를 보호하며 보이지 않게 돕는 역할인 듯 싶다. 실세인 검찰국장 앞에서는 기꺼이 무릎을 꿇고, 서로 라인이 다른 차장검사 오도정과 치열한 수싸움을 벌인다. 껄렁한 웃음 뒤에 칼을 감추고, 권태로운 몸짓 속에 집요함을 숨긴다. 사건이 점입가경을 이루며 보다 커지고 깊어지는 가운데 확실한 중심이 되어 단단히 드라마를 떠받친다. 이종곤과 오도정, 그리고 구동치와 정창기마저 모두 잇고 있는 중심이 바로 문희만이다. 저 위의 사정도, 저 아래의 이야기도 그를 통해 하나로 모인다. 문희만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검사라면 최민수 역시 수많은 배역을 거쳐온 베테랑 배우일 것이다. 격이 맞다.
어쩔 수 없이 숨겨진 악의가 느껴진다. 실체는 없는데 스물거리며 불쾌하게 휘감아온다. 구동치를 시작으로 내부감찰팀은 문희만 부장까지 노리고 있었다. 구동치가 자신을 수사하려는 것을 이종곤은 용서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민생안정팀 전체에 책임을 묻는 가운데 정창기(손창민 분)와 오도정은 문희만이 당시 납치를 지시한 범인이라며 몰아세우고 있다. 오도정이 그토록 급하게 문희만과 협상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도정이 요구하는 고위층성접대 동영상의 원본에는 문희만이 알지 못하는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진실은 다시 한 꺼풀 옷을 벗는다. 재건과 화영이라는 두 거대기업의 이름이 이종곤과 오도정을 앞세워 민생안정팀을 중심으로 다시 맞붙으려 하고 있다. 여기서 드러날 더 큰 진실이 남아 있는가. 드라마는 더욱 궁지로 미궁으로 빠져들어간다. 혼돈의 안개속이다.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은 사소한 곳으로까지 영역을 넓혀간다. 그러고보면 압력으로 인해 좌절될 뻔했던 고위층마약성접대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빌미가 되어 준 것이 당사자들이 연루된 취업비리사건이었을 것이다. 국회의원과 공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관계되어 있었다. 이제는 화영이라는 대기업에 속한 사학재단의 비리가 가지처럼 뻗는다. 모든 사회의 부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일까? 사학재단의 비리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제대로 읽힌다. 어째서 바로 우리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인데 그것을 장사수단으로 삼고 범법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제대로 처벌조차 하지 않는가. 검사가 동원된다.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작 그들을 수사해야 할 검사들이 앞세워지고 있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 사회 전체,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재건과 화영의 대리전이었다. 화영은 재건을 노렸고, 재건은 화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었다. 그 손발이 되었던 이들이 있었다. 다시 그 이름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고위층마약성매매와 15년 일어난 뺑소니, 서로 대립하면서도 문희만과 민생안정팀을 무력화시키는데에는 뜻을 함께하는 그 거대한 이름들에 대해서. 도마뱀꼬리가 거대한 용이 되었다.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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