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노키오 - 최인하의 결심, 진실을 위한 댓가

까칠부 2014. 12. 18. 03:35

한국드라마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니 한국인 일반의 대체적인 특성이기도 할 것이다. 관계에 집착한다. 기자라는 직업보다 누구의 형제이고 누구와 연인인가가 항상 더 우선한다. 누구와 동료이고, 혹은 친구이고, 아니면 경쟁관계에 있거나 아예 원한을 가지고 있거나. 기자로서 사실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보다 그같은 관계들을 고민하고 풀어가는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자라는 직업조차 단지 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기는 많은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직업이란 단지 생계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자존도 성취감도 없다. 기자로서 어렵게 사실을 취재하고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어 완성된 기사를 대중들에 알린다. 너무나 당연한 기자로서의 사명과 목적조차 형과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걱정과 배려로 인해 항상 뒤로 밀리고 만다. 결국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결심조차 자신의 가족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누군가에 대한 복수를 앞세우고 있었다. 어차피 기자가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좋아하는 최인하(박신혜 분)에 대한 걱정과 원수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어머니 송차옥(진경 분)에 대한 반발이 동기가 되고 있었다. 출발부터 수단에 불과했었다.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기자가 주인공이고 방송국이 배경인데 긴장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고조되고 있다. 사실을 취재하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위기가 아니다. 그것을 기사로 완성하여 뉴스로 내보내기까지의 고민이나 갈등도 아니다. 과연 자신이 아는 사실을 기자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까?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다름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최인하이고, 어려서 헤어졌던 자신의 친형 기재명(윤균상 분)이었다. 최달포로 하여금 아무 거리낌없이 엄마 송차옥과 싸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최인하는 한 발 뒤로 물러나고, 기재명은 최달포에게 복수를 맡기며 자기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건네준다.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마칠 수도 있지만 기자로서 기자의 무기로 송차옥과 싸우려는 동생을 믿고 응원해준다. 그 전장면에서도 캡인 황교동(이필모 분)과 동기 윤유래(이유비 분)가 아직까지 망설이고 있던 최달포의 등을 떠미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자 최달포가 사라졌다.


아니 최달포가 아니더라도 기자로서 스스로 주도하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캐릭터는 우습게도 개그캐릭터를 맡고 있는 최달포의 동기 윤유래 하나다. 직접 자신이 보고 들은 여러 사실들을 취합해서 국민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재명의 감춰진 진실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단서들을 놓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실제의 사실에 가까운 진실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단지 한바탕 우스운 헤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진실을 강조하지만 과연 그 진실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오로지 복수와 사랑을 위해서만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단지 기자가 주인공인 복수와 사랑이 얽힌 멜로가 바로 드라마의 정체성일 것이다.


비중의 배분에 실수가 있었다. 물론 멜로도 중요하다. 충분히 넘치도록 매력적인 주인공들인 만큼 그들 사이에 달콤하면서도 애절한 로맨스는 그 자체로 그림이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기왕 기자를 주인공으로, 방송국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더구나 굳이 '피노키오'라는 가상의 증후군까지 설정하여 언론의 진실성에 대해 묻고자 했다면 그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고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기자라는,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어쩌면 시청자가 직접 접하기 힘든 현장의 치열함을 양념으로라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사랑만 한다. 나머지는 단지 최달포와 최인하의 관계를 보다 치장하여 보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기재명의 범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결국 최인하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최인하의 '피노키오'는 딸국질과 함께 영영 사라져 버렸다.


멜로드라마로서는 무척 흥미롭다. 원수의 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남자의 가족을 절망으로 몰아넣는 당사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 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는 남자를 떠나려 한다. 살인자가 되어 버린 형의 죄를 밝히기 위해 남자는 그 떠남을 받아들인다. 기자의 무기는 진실이다. 가장 소중한 것과 맞바꿔 그 진실을 손에 넣는다. 형의 죄를 세상에 알리고,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를 추락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가 이르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기자라는 설정에 대한 기대가 없었더라면. 방송국과 언론에 대한 관심이 조그만 덜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보다는 평가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미니시리즈도 사실은 길다. 특별할 수 있었던 드라마가 평범해졌다.


최달포가 마침내 복수의 칼을 빼들었다. 기자로서 진실의 칼이기도 하다.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다. 그 칼이 기재명을 넘어 송차옥을 겨냥한다. 기재명을 영웅으로 만든 송차옥의 잘못된 언론관을 정면으로 겨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한 칼이기도 할 것이다. 메시지는 약해졌지만 상업드라마로서 보다 보편적인 재미를 강조한다. 통속은 감정을 따르고, 감정은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삶이란 곧 관계다. 재미있다. 많이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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