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양심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진실을 외면한 채 인간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잠시 양심을 속이더라도 검사로서 진실을 쫓을 것인가. 양심을 속이고 진실을 쫓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내세워야 한다. 도저히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면 둘 다 놓아버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양심과 진실을 모두 포기한 대신 안락과 평온을 얻는다.
어쩌면 그것은 문희만(최민수 분) 자신이 지나온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 누구나 한 번 쯤 마주하게 되는 순간일 수 있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그럼에도 자기가 해야만 하는 사명, 그리고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본능일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자기를 속이며 최면을 건다. 자기는 틀리지 않았노라고. 결국 자기가 옳았던 것이라고. 이종곤(노주현 분) 국장이 그렇게 쉽게 한열무(백진희 분)의 도발에 넘어간 이유였다. 이종곤의 자부심은 자신이 저버린 양심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대신 나쁜 놈들을 많이 잡았지 않은가. 문희만의 그같은 변명은 그렇게 믿고 싶은 자신의 바람일 것이다. 계속 검사로서 남아있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나쁜 놈들도 더 많이 잡아서 처벌받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검사가 아니게 된 순간 모든 것은 끝나고 만다. 양심을 유예한다. 아니 그것이 문희만 자신의 검사로서의 양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다시 말해 문희만에게는 지금의 검사로서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희생시켜 온 것들이 있어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정창기(손창민 분)가 여전히 문희만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15년이나 전에 일어난 - 더구나 공소시효까지 겨우 일주일 남짓 남겨둔 사건을 놓지 않고 끝까지 쫓으려 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동치(최진혁 분)나 한열무, 심지어 검찰수사관인 강수(이태환 분)까지 모두가 15년 전 어린이납치살해사건과 연관된 관계자들이다. 결국 정창기의 제보로 시작된 마약사건은 15년 전 실제 한별을 납치하고 살해할 것을 지시한 장본인인 화영그룹의 이사 박문근에게로 모이게 된다.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마약성접대 장소에 박문근도 함께 있었고, 그곳에서 15년 전 일어났던 어린이 납치살해를 자신이 주도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하필 구동치, 한열무를 비롯 이장원(최우식 분)에게 주어진 사건 다수가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문희만의 의도에 의해 배분된 사건들이었다.
양심은 속였지만 진실마저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밝힐 수 없었던 사정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침묵해야만 했던 이유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검사다. 범죄자를 잡는 것이 그의 일이다. 15년의 기다림 끝에 당시 납치를 주도한 범인 가운데 하나인 이종곤을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그리고 다시 성접대 동영상을 미끼로 배후에 도사리고 있던 박문근을 끌어낸다. 문희만이 진짜 노리는 것은 국회의원도 차기 검찰총장도 아닌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누군가일 것이다. 자신과 정창기를 말처럼 부려 마침내 재건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쓰러뜨리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과연 문희만이 살해현장에 들러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넥타이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문희만 자신이 그곳에 떨어뜨려 놓은 듯하다.
양심을 지킬 것인가, 진실을 쫓을 것인가. 아버지를 지킬 것인가, 검사로서 자신의 사명을 쫓을 것인가. 아버지를 잠시나마 죄인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검사인 자신은 아버지의 자랑이기도 하다. 검사인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배반이다. 만일 진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백곰을 살해했다면 그 진범을 잡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만 바라보며 살아온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끝내 선택해야 한다면 둘 중 하나다. 둘 모두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의 선택지 가운데 없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검사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다. 그것을 잊는 사람들이 현실에는 얼마나 많은가.
절묘하다. 하지만 그래서 무리한 부분도 눈에 띈다. 설마 정창기가 물고 온 마약사건이 화영그룹의 이사인 박문근까지 가리킨다는 사실을 문희만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 과정에서 고위층성접대와 관련된 한 여성이 자살하고, 마약을 공급하던 마약업자가 살해당한다. 성접대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에는 박문근이 15년 전 어린이납치와 살해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증거가 녹화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주도해왔다기에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 설마 이 모든 것들이 문희만과 정창기가 15년이라는 시간동안 화영 하나만을 노리고 자신을 속이고 희생해가며 준비해 온 결과물인 것인가. 전지와 전능이 문희만에게 부여된다. 반전을 거듭하며 복잡하게 얽혀가는 드라마를 지탱하는 하나의 중심이다.
그래서 문제다. 작가야 당연히 작품에 대해 전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작품내의 인물에 그같은 작가의 전지가 전이되어서는 곤란하다. 역시 합리적인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아니면 전부 우연으로 단지 여러 사건들이 우연찮게 마치 필연처럼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게 되었던 것인가. 기계로 만든 신이 작품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 지나치게 장치와 구조에 대해 집착하다 보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작품이 아닌 작가의 머릿속에서 작품이 완결된다. 문희만이 알고 있고 역시 노리고 있는 바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진짜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단지 기우에 불과하기를.
결국 화영의 이사 박문근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은 채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기소는 커녕 한 번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기는 검찰내 수많은 고위급 인사 가운데 그나마 이름이라도 언급된 것은 검찰국장 이종곤과 청와대 민정수석 성무영 정도일 것이다. 어차피 일개 평검사와 수습검사가 그 이상을 직접 보거나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힘의 실체만을 정창기를 통해 전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인지하지 못해도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며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해로 헤어진지 수년만에 단절되었던 관계를 다시 이어가려 한다. 서로의 감정을 고백하고 연인으로서 새로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구동치에게는 없다. 급전직하 상황이 가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쉽게 말하는 이들은 그것을 운명이라 할 것이다. 고비다. 모든 매듭을 풀어야만 한다. 혹독하게 그들을 몰아간다. 마무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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