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김태원도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그리 말했었지.
"아내의 소원이 아들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이렇게 되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다. 그래도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내가 죽어도. 내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무력화된 상태에서도.
그러나 과연 그 이후에도 이 사회는 그 가족들을 보호하고 보살필 수 있을 것인가.
이미 경상남도 주민들이 선택했다. 아이들에게 공짜밥을 먹일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 공짜밥을 먹이느니 더 가치있는데 돈을 쓰겟다.
압도적인 지지속에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낙오된 이들을 사회가 거둘 수 있을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더 이상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방치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는 게 낫다.
절망이란 불신이다. 어떤 기대도 낙관도 없다. 그것이 대한민국이다.
장애인들이 생존권을 두고 투쟁하는데 친구와 약속시간 늦은 것을 더 문제삼는다.
어째서 가장은 가족을 죽이는가. 어째서 모성이 자식마저 희생시키고 마는가.
그럼에도 그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거부한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내가 어떻게 되면 고양이들은 어떻게 될까?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웠을지 모른다.
자살도 자유다. 죽음도 자유다. 자기파괴 역시 자유다.
술에 취했다. 자야겠다.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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