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한국현대사는 1987년 민주화 이전과 이후, 그리고 1997년 IMF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딱 그 사이에 낀 것이 1990년대다.
1990년대는 자신감의 시대였다. 민주화도 이루었겠다. 경제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겠다. 각종 첨단기기들이 미래를 이야기해주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중문화 역시 강하게 자기를 어필하는 것들이 유행했다. X세대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지금이었다면 어쩌면 이본은 싸가지없다며 까였을지도. 개성이 강했다.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 그래서 DJ DOC같은 사고뭉치들도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2000년대 이후는 IMF로 인한 열등감과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일 것이다. 단적으로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장차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미래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같은 자유로움이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다. 정규교육도, 체계적인 트레이닝도 없이 그야말로 놀듯이 자기를 계발하고 발전시키고 자기의 분야로 뛰어들었다. 다양했고 넓었다.
그러나 IMF는 그러다가 진짜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스펙에 대한 집착은 이전의 학벌에 대한 집착 그 이상으로 집요해졌다. 그같은 불안은 연예인으로 데뷔하더라도 안전한 그늘을 찾아 의지하려는 경향으로도 나타나게 되었다. 트레이닝이 중요해주고 관리가 중요해졌다. 어쩌면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각광을 받는 것도 그렇게 철저히 만들어진 연예인들에 대한 식상함이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을 것이다. 아티스트가 아닌 기획사가 개성을 결정한다.
90년대를 지나온 세대들이 90년대를 미화하며 추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가? 자유로웠고, 자신감넘쳤고, 그래서 개성도 강했다. 그만큼 그것을 대하는 자신에게도 여유가 있었다. 자신에게도 전성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80년대를 추억하는 것과 같다. 황금세대였다.
6070과는 다르다. 50년대가 전쟁의 폐허로부터 딛고 일어나는 과정이었다면, 6070은 비로소 평화로운 내 나라에서 내일을 고민해야 했던 시기였다. 고단한 과거와 새로운 문물이 들려주는 내일이 그만큼 역동적으로 기억도니다. 그리고 그 과실이 8090에서 만개했다가 IMF와 함께 급전직하했다.
2000년 초반까지는 1990년대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거의 인적구성에 차이가 없다. 그러나 조금씩 새로운 세대에 의해 채워지며 그 개성이 달라진다. 규모도 커지고 더 화려해지고 더 기능적이 되었지만 그만큼 또 심심해졌다. 타블로는 바뀐 2000년대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예였을 것이다. 과거에는 개성이던 것이 이제는 비난의 근거가 된다. 모두가 서로를 옭죄고 감시한다.
여전히 현역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련만.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연예인의 수명이 너무 짧다. 그래도 추억할 수 있으면 다시 찾을까. 그냥 생각났다. 잊혀지기에는 아직 너무 빨랐는지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그냥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써온 글들의 연장이다. 대중문화란 대중과 호흡하는 것이다. 대중문화에는 시대와 역사와 자신들의 기억이 담겨 있다. 항상 이유가 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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