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한국의 정치문화, 거물숭배와 권력의 사유화...

까칠부 2015. 1. 5. 03:15

권력이란 사유할 수 있는 대상인가? 아니면 공공의 목적을 위한 구조인가?


"그만한 자리에 있으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공직자의 비위를 옹호하며 하는 말이다. 아니 아예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도 능력이라며 추켜올리는 사람마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고도의 구조를 가진 국가가 출현하기 전 권력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의 이야기였다. 왕은 왕이고, 귀족은 귀족이고, 성직자는 성직자다.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출현한 이유다.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하부구조에서 각자 독자적인 룰과 구조를 가지고 자체적으로 생존해야 했다. 왕은 단지 세금을 거두고 전쟁이나 하는 존재일 뿐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을 가진 자대로, 권력을 가지지 못했으면 또 그것대로, 그렇게 사회는 파편으로 나뉘어진다. 권력자가 무엇을 하든 상관할 바가 없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했다. 권력자가 하는 일에 상관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이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그래서다. 개인은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개인이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는 것은 불경하고 불순하다. 정치는 그들만의 일이다. 순수성을 따진다. 정치적으로 과연 순결한가 아닌가. 개인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이나 참여를 부정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력은 선택될까?


인물론의 이유인 것이다. 거물숭배의 근원일 것이다. 자격을 묻는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 하는가가 아니라 과연 권력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만을 묻는다. 일단 지지하고 정책에 대해서 판단하겠다. 공약은 반대하는데 인물을 지지하니 그에게 표를 주겠다. 큰 인물을 선호한다. 유명하고 능력있고 사회적 지위도 좀 되는. 항상 선거때만 되면 일어나는 인물론에 바람론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인물은 지지하고, 정책은 비판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반대하고, 그러고 보면 그 마지막이 결국은 자기가 실력을 키워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가 권력을 가지고 사회를 바꾼다. 내가 정치에 대해 글을 쓰는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젊었고 학벌도 되었고 무척 똑똑했었다. 그렇게 길러지고 길들여지는가.


한국의 정치문화에 남은 전근대성일 것이다. 전제왕조가 끝나고 식민지지배의 일방주의를 경험했다. 군사독재정권은 조선총독부를 계승하고 있었다. 정치를 자기의 일로 여길 계기가 없었다. 정치는 남의 일이고, 따라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옳은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공공연히 방송에 나와 그것을 신념이랍시고 떠든다. 정치적이라는 것이 비난의 근거가 된다. 


얼마전 글을 쓰다가 문득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말았다. 권력의 사유화에 대해서. 보수주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어째서 같은 비리를 가지고도 두 서로 다른 정치집단에서 반응하는 것이 다른가. 어느 정당은 지지율이 폭락하고, 어느 정당은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한다. 권력을 가졌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


지금도 기억나는 한 마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또다시 거물론이다. 대단한 인사가 지지율의 중심에 있다.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니까. 길러지니까. 네가 출세하라. 네가 권력을 가지라. 그러면 다 된다. 그런 사회가 투명하기를 바라는 것도 꽤나 무모할 것이다. 승자가 곧 선이고 정의다.


정치적이지 않아서 좋다. 정치인이 아니라서 좋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흥미로운 현상일 것이다.






더 길게 쓰다가 졸려서 지우고 짧게 쓴다. 글쓰기도 피곤타. 지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