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가난과 진화론 - 선별적 복지론에 대해...

까칠부 2015. 3. 21. 15:38

진화를 생명이 존재하는 목적으로 이해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하등생물은 고등생물로 진화한다. 진화해야 한다. 고등생물이란 이미 진화한 생물이고, 하등생물은 아직 진화하지 못한 생물이다. 그러므로 고등생물은 하등생물보다 우월하고, 하등생물은 장차 보다 진화해야 하는 목적적 당위를 가지게 된다.

 

모든 개인은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란 모든 개인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부자란 이미 부자가 된 사람이며, 가난이란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혹은 부자가 되는데 실패한 경우다. 따라서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장차 부자가 되어야 할 목적적 당위를 가진다.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거는 전제다. 기회의 평등. 무슨 말이냐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19세기 영국 부르주아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빈법을 제정하고 시행한 이유와 같다. 부란 우월하며 가난은 열등하다. 따라서 모든 개인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도덕적으로 옳다. 복지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조선일보의 기사에도 나온 '달관세대'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덜 벌고, 덜 쓰고, 그러면서 현실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조선일보의 기사를 비난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그럴 수 있도록만 해준다면 굳이 부자가 되려 노력할 필요 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이 복지다. 가난하더라도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고 좌절이 되지 않는 것. 조금 불편한 정도로 타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사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충돌하는 지점이 이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말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어째서 가난한 이들을 가난한 상태로 내버려두는가. 어째서 그들이 부자가 되도록 돕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가난하더라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계속 말이 반복된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