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대의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에서의 승리란 적 수뇌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거나 혹은 괴멸시킴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수뇌란 곧 머리다. 설사 머리 없이 손발만 남아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더라도 더 이상 조직적인 저항이란 불가능하다. 그때부터는 전쟁이 아닌 토벌과 소탕만 남는다. 그래서 현대의 많은 선진국에서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정부와 주요인물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시설과 메뉴얼을 준비해 두고 있다. 하다못해 자연재해를 당했어도 정부가 중심에 있지 않으면 효과적인 대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후일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력을 재정비하여 반격을 준비하려는 것도 아니다. 일단 도망치는 것이다. 잡혀서는 안되니까. 왕의 적의 수중에 들어가서는 안되니까. 왕은 곧 머리다.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의 정신이며 의지다. 왕이 적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자유를 잃게 된다면 그만큼 조선의 정신과 의지는 타격을 입게 된다. 당장 적과 목숨을 걸고 싸우고자 하는 장수와 병사들에게 왕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세자가 있어 정당하게 왕위를 계승하고 그를 대신하려 하더라도 이미 자신들의 왕은 적들에 의해 꺾이고 만 뒤인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워넣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적은 결코 그 시간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왕이 곧 나라인 이유다.
일단 살아있으니 뒷날이라는 것도 생긴다. 왕이 살아있다면 마땅히 왕을 구해야 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신하된 의무다. 왕으로써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신하들로 하여금 전력을 재정비하고 반격을 꾀하도록 만든다. 아무런 실권이 없어도, 할 줄 아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어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동기가 되고 이유가 된다. 왕이 아직 살아있고 자유로운 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함경도의 정예기병이 남아있었고, 삼남의 백성과 물자 역시 모두 동원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에 항복함으로써 조선의 모든 싸움은 끝나고 말았다. 선조(김태우 분)가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설사 명으로 망명했다 하더라도 선조가 살아있다면 신하들은 결코 자신들의 싸움을 끝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장황하다. 이산해(이재용 분)만이 그것을 이해한다.
신립(김형일 분)이 어리석었다 말하는 이유다. 물론 실제 신립이 드라마에서와 같은 이유로 달천평야에서 고니시(이광기 분)의 1군과 결전을 벌일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는 모른다. 그보다는 오히려 전장의 장수로서보다 조정의 관리로서 정치에 더 익숙해진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상적이었다면 조령에서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고 달천평야에서 무모한 싸움을 벌이기보다 전력을 보전해서 왕이 있는 한양을 방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신립이 이끌고 있던 8천의 경군이야 말로 당시 조선조정이 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의 거의 전부이다시피 했었기에 만일 신립이 패한다면 충주에서 한양까지 일본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전멸을 각오하고 달천평야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어쩌면 싸우지 않고 물러날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과 그로 인한 정치적인 손실을 계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립으로 인해 조선은 한양을 방어할 최소한의 병력조차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왕이 자신을 지켜야 하듯 장수들 또한, 물론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의무이자 당위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지만 그래서 이일은 상주에서 패배했으면서도 신립과 함께 달천평야에서 싸울 수 있었고, 달천평야에서 패한 뒤에도 역시 무사히 도망쳐서 임진강 방어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의 병사, 단 한 명의 장수가 아쉽던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이일과 같이 경험을 갖춘 지휘관이 한 사람이라도 더 남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는가. 신립은 탄금대에서 죽음으로써 더 이상 어떤 기회도 남기지 못했다. 신립 휘하의 장수와 병사들 마저 어떤 기회도 가지지 못했다. 병법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길 수 없을 때는 도망치는 것이 최선(走爲上)라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죽으면 끝이다. 죽고 나면 더 이상 다음이란 없다. 살아남는 것의 소중함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죽음은 그저 허무할 뿐이다. 차라리 신립의 비장한 대사가 어이없이 웃음게만 들린 이유였을 것이다. 가치없다. 아무런 의미없다.
어쩌면 그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지나치게 선조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오버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단지 겁이 났다. 조선최고의 명장이라는 신립마저 패했다. 한양에서 신립이 이끌고간 경군의 대부분이 신립과 함께 달천평야에서 뼈를 묻고 말았다. 충주의 일본군과 한양 사이에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그래도 믿고 있던, 더구나 자신의 신하들이기도 한 장수들과 병사들이 어처구니없이 일본군에 일방적으로 패하고 도망치는 모습들을 장계등을 통해 모두 전해듣고 있었다. 실망감도 컸을 것이다. 그보다는 허무이고 분노였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자신의 앞에서 큰소리를 치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선조가 보이게 되는 조정과 장수들에 대한 불신과 회의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조선의 누구도 마음놓고 믿을 수 없다. 이순신을 반대를 무릅써가며 전라좌수사에 앉히고는 마침내 그를 의심하여 죽이려 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대사였을 것이다.
"내가 파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간 군사와 백성들이 이 도성을 버리는 것이오!"
그것이야 말로 선조의 진정한 속내가 아니었을까. 모두가 나라를,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어째서 자신만 남아서 도성을 지켜야 하는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도성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은 조선의 왕인데? 조선의 전부이며 조선 그 자체일 텐데도. 그가 류성룡(김상중 분)을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에게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조선의 왕이어야 했다. 오로지 이산해만이 그것을 이해하고 지지해준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처음으로 파천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산해는 이후 삭직당하고 만다. 선조가 말한 그대로 선조를 위해 먼저 나서서 파천을 지지했고, 그 책임까지 온전히 자신이 지고 있었다.
명분상 결코 옳지 못하다. 대의적으로도 백성을 지켜야 할 군주가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망쳐야 한다. 왕이기 위해서. 왕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왕으로서보다 인간으로서 개인의 감정과 목적만을 우선한 이기적인 선택이었음은 부정할 수 엇을 것이다. 그래서 파천을 고집하는 선조가 마음에 안들고, 그러면서도 그런 선조에 반대하는 류성룡의 입장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두가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옳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선조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하기는 그래서 역사일 것이다.
탄금대에서 신립의 조선군이 고니시군에 입힌 피해란 사실 무시해도 좋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증거가 탄금대에서의 승리 이후 바로 한양으로 북진하기 시작한 고니시군이며, 실제 가토의 2군보다 먼저 고니시군이 한양에 도착하고 있기도 했었다. 절반의 피해라면 사실상 군이 와해되는 수준이다. 전투의 묘사야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사실을 잘못 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진 싸움이고 결과 또한 처참했다. 싸움의 결과만 조금 바꾼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의 내용에 어떤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재미도 없는데 거슬리기만 한다.
현대의 국가에서도 정부와 수반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물며 전제왕조다. 왕이 곧 나라이던 시절이다. 왕이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느 개인이 목숨을 내놓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단지 지금의 기준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나라의 녹을 먹는 장수가 되어, 더구나 자신이 거느린 병력이 조정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도망쳤던 이일은 이내 다시 합류하여 임진강 방어선을 지킨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비웃을 일일까? 도망쳤던 관군들이 다시 모여 의병이 되고 전쟁의 흐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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