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리더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한 가지는 선지자, 다른 한 가지는 순교자다.
간단히 눈이 두껍게 쌓인 저 앞에 어디가 다리이고 어디가 절벽인지 알 수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누군가 확인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먼저 앞서가 위험을 각오하고 다리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것이 리더다.
과연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장을 맡는 것이 옳을까? 정치인 개인으로서라면 절대 맡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칫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다. 안철수의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여기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가 과연 차기 대선을 노리는 입장이라면 자청해서라도 받는 것이 더 현명하다. 지금 당장 새정연에 필요한 것은 내홍의 종식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내분을 정리하고 당의 체제를 일신하지 않으안된다. 그것은 당위다. 누가 그것을 하겠는가?
재보선에서의 패배 이후 샌드백이 되다시피 한 문재인으로서는 절대 무리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여야 할 텐데, 그 가운데 친노도 친문도 아니면서, 대외적으로 개혁적인 이미지를 앞세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당내의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거물이라면 한 사람밖에 없다. 안철수를 선택한 이유다. 안철수라면 최소한 자신의 이름값으로라도 개혁에 반발하는 이들을 구태로 몰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안철수 자신이 주장해 온 새정치에 대한 구상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단력과 행동력,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당을 구해내는 실력이다. 새정연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심지어 문재인보다도 안철수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더 무겁다. 문재인이 가리려 한다고 안철수를 가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자기 한 몸을 위기로 내던져 당을 구하고 자신의 이상과 신념, 역량을 대중에 각인시킨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혁신의 과정에서 당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부수입이다. 안철수의 약점이라면 이름만 있고 세력이 없다는 것이었으니. 그런데 거부한다.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정책이나 개발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 상처없이 대선후보에 안착해야 한다. 헛꿈들 꾸고 있다. 노무현을 말한다. 노무현이 어떻게 국회의원도 아니었으면서 대선후보까지 될 수 있었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계산이 아니다. 행동이다.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다.
문재인은 텄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으로 끝내려 한다. 얼마전 유출된 성명서는 흥미로웠다. 싸움을 각오했다. 그러나 그 뿐. 누구로부터도 욕먹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안철수에게도 고스란히 돌려준다. 안전한 곳에서 좋은 것만 받아먹으려 하다는 잊혀지고 만다.
자기를 내던져야 한다.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결코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더욱 필사적이 되어야 한다. 한두번의 실패는 당연하다. 결국 그것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가가 정치인의 역량이다.
모두가 자기만 생각한다. 자기 계파만을 생각한다. 새정연의 한계다.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문재인도 더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목숨을 건다. 싸움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대선의 꿈을 접은 모양이다. 불리하더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아쉽다. 마음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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