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노건호와 김무성 - 죽은 자에 대한 예의...

까칠부 2015. 5. 29. 17:40

삼국지를 보면 주유가 죽고 제갈량이 조문을 갔을 때 강동의 인사들이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제갈량으로 인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데 조문을 온다는 것은 죽은 이를 희롱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제갈량은 주유의 위패 앞에서 목놓아 울며 추도사를 읊는 것으로 그같은 의심을 불식시킨다.


간단한 것이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가 있다. 아니더라도 죽은 아버지를 계속해서 조롱하고 비웃으며 자신을 위해 이용하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아무런 사과도 입장표명도 없이 추도식에 나타나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데도 손님으로 대우해주어야 할까? 예의란 단지 형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요구하려면 먼저 진심을 보여야 한다.


과연 어떤 사과가 있었는가? 아니더라도 죽은 이에 대한 어떤 새로운 입장표명이 있었는가? 어제까지 모욕하고 오늘 다시 추도식에 참석한다. 바로 얼마전까지 이름에 오물을 끼얹으며 멋대로 이용하다가 추도식에 나타나 자리만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형식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엄격한 유교사회에서도 그것만은 무척 경계하고 있었다. 예란 형식이 아닌 실질이어야 한다.


도대체 노건호가 왜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 비판이 아니다. 비난이다. 더구나 야권지지자로부터까지. 야당소속도 아니고, 야당과 어떤 정치적 연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출마설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비난한다. 야당에 불리하다. 불리하면 과연 노건호씨의 탓인가? 아니면 불리하게 만드는 여건의 탓인가? 하지만 역시 비난하기 쉬운 것은 상대적으로 약자다.


조금 늦었다. 요즘 글 쓸 시간이 거의 없어서. 한 마디 하고 싶은데 다른 것 때문에 자꾸 미뤘다. 감기 때문에 몸도 안 좋고. 어이가 없는 것이다. 예의는 누가 어겼는가. 과연 무례를 당했다는 그 사람은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었는가. 강자는 그래서 편하다. 한국사회의 비루함이며 비열함일 것이다. 한심스럽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장례식이나 추도식에 참석했을 때는 죽은 이에 대한 성의있고 진심어린 말 한 마디가 우선이라고. 죽은 이를 위한 자리다. 그것을 잊는다면 그는 이미 자격을 잃은 것이다. 노건호가 공격한 부분일 것이다. 예의를 모른다. 그게 바로 수준이다.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