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기동전사 건담 디 오리진...

까칠부 2015. 8. 9. 00:35

첫째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그림은 좀 엣스럽다. 그림체 자체는 여전히 무쌍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미려하지만 터치가 거칠고 투박하다. 아무래도 나이탓인지 그림의 밸런스가 흔들리는 것도 많이 아쉽다. 가장 좋아했고 가장 닮고 싶어했던 작가였다. 그만큼 시간이 흐른 탓이다.


둘째 기렌 자비가 생각한 이상으로 찌질하게 묘사된다. 모든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 머리로 알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인간을 모른다. 인간을 실체로서 주체로서 대해 본 적이 없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고귀한 피였고, 더구나 지온 즘 다이쿤과 이상을 함께 하던 데긴 소드 자비의 아들로 자라났었다. 실패란 것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엘리트란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아 바오아 쿠에서 기렌 자비가 의도한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해도 지온의 지배는 결코 오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키리시아 자비가 그를 뒤에서 쏜다.


셋째 애니에서는 설명없이 지나쳤던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어떤 것들은 이후 추가된 것들이고, 어떤 것들은 처음 작품이 구상되던 단계에서 고려되었던 것들일 터다. 원래 작가란 자체가 작품에 실제 들어가지 않더라도 단지 자기만족으로 여러가지 설정을 채워넣는 것을 즐기는 인종이기 때문이다. 샤아 아즈나블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캬스발 램 다이쿤은 가면을 쓰고 샤아 아즈나블로서 살아갔는가. 샤아 아즈나블의 아버지 지온 즘 다이쿤과 지온공국의 역사는 어떠한가.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 바오아 쿠 전투의 의의다. 지온공국 본토가 아닌 일개 군사기지에서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넷째 확실히 '기동전사 건담'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내려 했다는 증거를 '오리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지온 공국은 항복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강화를 맺을 당시에도 지온공국에는 아직 상당한 전력이 남아 있었다. 본국과 그라나다가 멀쩡했고, 아 바오아 쿠와 솔로몬의 패잔병들도 장차 모이게 될 터였다. '기동전사 Z건담'에서는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한 채 티탄즈에 의해 콜로지 전체가 유린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기는 지온 공국의 모빌슈츠를 개발하던 지오닉사가 전리품으로 아나하임에 넘겨진 것만도 이미 원래의 설정을 넘어섰다. '기동전사 Z건담'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다섯째 무엇보다 6권까지 읽고 너무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만두었는데 어느새 완결까지 나오고 말았다. 아마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하다. 란바 랄의 최후는 원작보다 훨씬 더 낫다. 라라아 슨과의 관계 역시. 애니메이션에서는 역시 주인공이 가장 강해야 한다. 


여섯째 어째서 처음 압도적이던 아무로와 샤아의 실력차이가 중반 이후 역전되고 있었는가. 사실 샤아의 경우 아무로를 제외하고 'Z건담'에서 시로코와 하만을 동시에 상대하기 전까지 상대의 에이스와 전투를 벌여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아무로는 란바 랄, 검은 삼연성, 마크 베, 샤리아 블루 등 수많은 강적들과 싸우며 실력을 키워왔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샤아는 아무로와 화이트베이스를 쫓느라 사실상 전투라는 것을 거의 치러보지 못했다. 이래저래. 경험처럼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


원작을 모르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작화가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실망도 커진다. 다만 원작을 알고 이해하고 좋아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읽고 나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본다. 'Z건담'은 건너뛰고 '역습의 샤아'를 본다. 요즘 즐겁다. 오랜 기억을 떠올린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