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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 샤아 아즈나블의 이유...

까칠부 2015. 8. 24. 03:29

70년대 일본 로봇애니메시연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악역으로 처음 등장했던 주인공의 라이벌 샤아 아즈나블의 인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설이라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오로지 주인공 중심의 영웅로봇물에서 주인공이 아닌 라이벌이 주인공의 인기마저 훌쩍 넘어서 버렸다. 감독의 의도에 의해 형편없이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었던 '역습의 샤아'마저도 샤아 아즈나블의 매력에 이끌린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우는데는 실패하고 말았었다. 제작진의 의도마저 넘어서 팬들에 의해 우상으로 군림한다.


하기는 사실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히 지켜보았다면 너무나 쉽게 선명히 그 이유가 드러나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회 주인공이자 라이벌인 아무로 레이와의 전투 도중 샤아는 무심코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어떻게 하면 저 뉴타입을 이길 수 있을까?"


아직 지온이 저지른 악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보여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지온이 적이고 악인가 상세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때 사이드7에서 비밀리에 진행중이던 지구연방군의 군사계획을 눈치채고 기습을 가해온 소규모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샤아 아즈나블이 등장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 갓 모빌슈츠라는 것을 조종하기 시작한 14살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 한 번의 전투에서 무려 5척의 전함을 격침한 지온군 최고의 에이스 붉은 혜성 샤아와 맞서싸워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압도적인 경험과 실력을 가진 샤아 아즈나블과 맞서싸워 살아남으며 언젠가는 그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간중간 주인공 아무로 레이가 치러야 했던 전투들을 그를 위해 경험을 쌓고 성장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과연 14살의 앳띤 소년이 역전의 에이스 붉은 혜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살짝 상황을 뒤집어 보면 실력에서도, 실적에서도, 경험에서도, 무엇 하나 뒤지지 않는 샤아 아즈나블이, 아니 뒤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압도하는 상황에서 단지 모빌슈츠의 성능 때문에 그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도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다. 기관포를 쏴도 끄떡없고, 근접전에 들어가서 콕핏을 집접 가격하며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었다. 모빌슈츠의 압도적인 성능차는 샤아 이외의 파일럿들이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나마 샤아 아즈나블 자신의 실력이 압도적이었기에 우세한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그것은 과연 합리적인 것이었을까?


샤아 아즈나블과 아무로 레이가 다시 맞붙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중반 이후로는 다시 뉴타입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거론되기 시작한다. 인류의 새로운 진화라 일컬어지는 뉴타입은 전투에 있어서도 이제까지의 상식을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보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까지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무엇을 하든 상대는 그것을 먼저 느끼고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적이라 여겨지던 엘메스의 비트를 그런 식으로 아무로는 모두 라이플로 쏘아 떨어뜨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적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이 즈음에는 샤아 아즈나블과 아무로 레이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고 있었다.


그대로였다. 과연 마지막 싸움은 샤아 아즈나블의 패배였는가.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괴물같은 뉴타입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옹의 성능이 압도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샤아는 그때서야 겨우 뉴타입으로 각성했던 터였고, 지옹 자체가 올레인지 공격에 최적화되어 있던 터라 근접전 능력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옹을 타고 치르는 전투는 겔구구를 타고 치르는 전투와 전혀 다른 성격의 전투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아무로는 지옹의 약점인 근접전을 파고들어 지옹을 격추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샤아는 입부분에 장착된 빔포를 사용 건담의 머리를 부숴버린다.


역시나 이제부터는 샤아가 쫓기며 도망치고 아무로가 그 뒤를 쫓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만다. 아무로가 쫓아올 것을 알고 매복한 뒤 함정을 판다. 아무로는 그 함정으로 걸어들어오고 결과적으로 지옹과 건담은 동패구사하고 만다. 비로소 이때에 이르러서야 샤아는 자신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건담을 쓰러뜨리는데 성공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실패라 말할 수 있을까?


토미노 감독이 얼마나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에 지쳐 있었는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샤아 아즈나블은 아무로 레이와 진검을 들고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모빌슈츠의 조종이라면 아무래도 뉴타입의 능력이 더 중요하게 발휘될 테지만 직접 육체를 단련해야 하는 육박전이라면 자신이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샤아 아즈나블이 비로소 처음으로 뉴타입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류의 위력과 가능서을 체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기동전사 Z건담'에서 카뮤 비단에게 그토록 집착하고, 카뮤 비단의 비극을 빌미로 '역습의 샤아'에서 미쳐버린 것으 그래서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래서 끝난 것이었다. 모빌슈츠로도 겨뤄서 겨우 무승부를 거뒀고, 직접 검을 들고 부딪혀서 어깨를 꿰뚫는 대신 이마를 찢기고 말았다. 자신의 패배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돌아서고 있었다. 앙금이라고는 없이, 이제는 키리시아 자비에 대한 복수만이 전부라는 듯이. 그런데 '기동전사 Z건담'을 비롯해 '역습의 샤아'까지 주렁주렁 남은 이야기들이 이리 많으니. 그런 점에서 최소한 아무로에 대한 감정은 'Z건담'에서 그린 것처럼 이미 그 단계에서 정리되었다 보는 것이 옳을 듯.


어쨌거나 제작진 자신의 어쩌면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샤아 아즈나블에게 성장이라는 주인공의 롤을 맡겨 버린 탓이었을 것이다. 아직 어린 주인공이 극복해야 할 감당할 수 없는 강대한 적에서, 실력차이에도 불구하고 단지 모빌슈츠의 성능차이로 끝끝내 이기지 못하고 패퇴해야 했던 가련함으로. 매번 패퇴할 때마다 동료와 부하들을 잃어야 했던 안타까움으로. 그것은 다시 뉴타입이라고 하는 넘을 수 없는 절망 앞에 연인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건담과 당당히 맞서 싸웠고 건담을 부수었다. 패배했고 그 패배를 받아들였다. 샤아 아즈나블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훨씬 더 그럴싸하다. 더구나 여기에 뉴타입의 이상과 복수라는 음습한 그늘이 입체감을 더한다. 아무로 레이는 너무 선명하다.


이후의 인기는 바로 그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후속작인 '기동전사 Z건담'에서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사상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역습의 샤아'는 이제까지의 밝은 모습에 너무나 짙은 그늘을 드리워주었다. 한 인간에 존재하는 모순이 이율배반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샤아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샤아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망가지게 되었는가 자연스럽게 상상을 자극하고 만다. 사실 이것은 주인공이라면 불가능했을 역할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한결같다. 올곧고 정의롭다. 다양한 색깔을 입힐 수 있다. 제작진의 의도와는 달리 팬의 가슴에서 샤아는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게 된다.


이후 샤아를 답습하려는 시도들이 적지 않았다. 샤아의 인기란 위험하면서도 한 편으로 제작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샤아와 관련해서 다양한 컨텐츠와 상품들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캐릭터도 샤아와 같지는 않았다. 같을 수 없었다. 당연하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인한 우연의 결과물인 때문이다. 일부러 의도하여 만들려 해도 결코 쉽지 않다.


최근 샤아까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한동안 건담과 멀어졌더니 이제야 처음 알았다. 인기가 없으면 까이지도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다면 그리 많은 사람들이 단합하여 까대지도 않을 것이다. 안티도 팬이다. 다만 정작 작품은 보지도 않고 까는데만 열중인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라. 그것도 한 즐거움이기는 하다.


다시 건담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 최고는 79년 나온 오리지날 '기동전사 건담'이다. 괜히 리얼로봇물입네 어깨에 힘을 주고 있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든다. '기동전사 Z건담'은 너무 심각하고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설정파괴가 눈에 띈다. 토미노 감독의 스트레스를 이해할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것은 예정하지 않은 후속작이 타의에 의해 결정된 히스테리였을지도. '기동전사 ZZ건담'은 무언가 급하다. 미처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끝나버린다. 오리지널이 최고다. 원류로 돌아간다. 아주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