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진요 사태 당시 많은 사람들과 등졌다. 친분이 있던 블로거들도 있고, 눈에 익던 방문자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타진요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는가면 그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켜보자. 사실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네티즌의 지성과 양심을 믿고 한 발 물러서 있자. 그래서?
그들이 침묵하는 사이 타진요의 악의는 타블로는 물론 그의 가족까지 갈기갈기 찢어 짓밟고 있었다. 그 상처를 되돌릴 수 있을까? 타진요 전부가 처벌받은 것도 아니고, 타진요가 처벌받는다고 타블로와 그의 가족들이 입었던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목적은 그것이었다. 타블로를 상처주고 고통스럽게 하겠다. 결과적으로 그같은 타진요의 악의에 동조한 것이다. 자신과는 상관없으니까.
원래 기계적 중립론이란 자체가 그렇다. 책임지기 싫다. 상처받기 싫다. 그러므로 한 발 떨어져서 방관자로 남겠다. 심판이 되어 판단만 하겠다. 타인의 고통따위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그로 인한 불합리나 저열한 악의따위 자기가 상관할 바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에 휩쓸리는 이들을 굽어보며 판단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을 자신들은 이성이고 객관이고 냉정이라 자처한다.
의도가 너무 명백하다. 당시 집권여당은 새누리당이었다. 참여연대와 박원순 시장은 새누리당이나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과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사이였다. 병무청이 나서서 확인해 주었다.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들이 참관한 앞에서 직접 재검사를 받았다. 검찰도 사건만 배치했지 정작 새롭게 수사에 들어가지는 않고 있다. 종편조차 조용하다. 어째서이겠는가? 그런데도 굳이 의혹을 제기하고 고발까지 하려는 이유. 전형적인 상처주기다. 야당의 유력정치인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말한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그냥 지켜보자. 그 동안 불의하고 부당한 악의에 의해, 심지어 정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가족까지 세상의 비난에 노출될 수 있다. 잘못된 오해가 자칫 정치적인 판단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적인 의도에 의한 흑색선전이라면 그것을 방치하는 자체가 불법선거른 용인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자기와는 상관없으니까. 자기가 직접 그런 것은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드라마 '미세스캅'에서도 가출청소년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던 살인범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악의를 타인의 악의를 빌어 가린다. 그것이 본심일 것이다. 자기는 아닌 척 누군가 상처받고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며 즐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차라리 확인을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비판을 하든 무엇을 하든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사시비비를 가리고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제 3자들은 다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들과는 상관없다. 승자의 편이다. 책임없는 쪽의 편이다. 타진요 때에도 타블로를 비난하는 것을 방관하던 이들이 사실이 명확해지자 이번에는 타진요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 이 사회가 이 모양이 되고 만 책임을 져야 한다면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심판은 경기에 관여할 수 없다. 경기장 안에 있으며 경기 밖에 존재한다.
아니나 다를까 중립론자들.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옳다. 정치인이다. 서울의 시장이다. 의혹이 있으면 다연히 해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비판도 비난도 그래서 가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혼자서만 깨끗하다.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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