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분명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돈도 벌 수 있고, 풍요롭고 안락한 삶도 누릴 수 있다. 다만 모든 일에는 비례가 적용된다. 그래서 과연 그만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개인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밥을 먹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 있는 식재료를 해발 1천미터 되는 산꼭데기까지 들고올라가야 한다. 등산이 취미인 사람이야 상관없다. 산을 오르는 자체가 즐겁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냥 그 자체로 노동이다. 굳이 밥을 먹기 위해 산꼭데기까지 올라가야 하는가.
화생방실에서 눈물콧물 흘리며 나오니 누군가 그리 말한다.
"맑은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라."
그냥 화생방실 안 들어가고 그런 고마움 전혀 모른 채 살고 말겠다.
포기도 권리다. 굳이 밥 한 끼 먹자고 해발 1천미터나 되는 산을 허위허위 기어올라야 하겠는가. 그냥 굶고 말겠다. 굶는 고통이 차라리 산을 오르는 고통보다 덜하다. 그렇다면 산을 오르지 말고 그냥 굶고 마는 것이다.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예전 KBS의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마라톤 도중 포기한 김태원에 쏟아지던 사람들의 비난에 어이없어한 이유였다. 마라톤을 끝까지 뛰어야 하는 당위와 자신의 건강 가운데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가. 마라톤을 완주해서 얻는 보람과 그를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수고를 비교한다. 못하는 건 못하는 것이다. 할 수 없으면 안하는 것이다. 포기도 용기다. 자신을 해쳐봐야 현실은 누구도 자신을 돕지 않는다.
나 때는 이랬으니까. 시대가 다르다. 예전이는 꽁보리밥을 물에만 말아서 잘도 먹고 살았다. 된장 간장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요즘은 현미를 건강을 위해 먹는다. 고통에 대해 느끼는 감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안락함을 주려고 기성세대는 그토록 힘들게 일했던 것 아니겠는가.
고통을 감내하라. 수고를 감수하라. 그리고 노력하라. 어디까지? 유교사회가 가지는 근본적 문제다. 아니 전통사회가 가지는 보편적 문제이기도 했다. 노인을 위해 존재한다. 노인을 위해 젊은이들이 희생해야 한다. 노인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이 동원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존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더 편하게, 더 쉽게,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더 풍요롭게,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런 시대의 흐름이다. 그렇게 부모세대도 그 부모세대로부터 보다 나은 현실을 물려받았다. 그 부모세대들이 본전생각을 했더라면. 그런데 이제 와서 본전생각에 자식세대에 고통을 강요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킹찍탈은 아예 노래처럼 불려지고 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요즘 애들은 너무 근성이 없다. 정신력이 약하다. 하지만 밥 한 끼 먹자고 1천미터 산을 오르는 것은 근성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고 무모한 것이다. 더 가치있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널려 있다.
노동개혁법안을 보며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대한 절망을 일깨우게 된다. 지지율을 본다. 특히 노인들의 지지에 눈이 간다. 하기는 젊은이들 자신도 그 법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조금 더 고통을 감내하며, 수고를 감수하며, 더 힘써 노력한다면. 믿고 싶은지 모르겠다. 차라리 절망조차 더 서럽다.
무엇을 위한 선진국인가. 무엇을 위한 경제발전인가. 누구를 위해 그래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자신은 그토록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일해야 하는가. 묻지도 않는다. 당연히 답도 없다. 그렇게 모두는 불구덩이로 빠져든다. 그 고통마저 기꺼이 즐기며 행복으로 여겨야 잘 살 수 있다. 개소리다. 개가 짖는다. 왕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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