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원래 한반도는 그렇게 인간이 고도의 문명을 이루며 번성하기에 좋은 조건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농사를 짓기에 불리하다. 평야도 드물고, 일년 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기도 한정되어 있다. 비도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내리는데 때를 못맞추면 그해 농사는 끝장나는 것이다. 어째서 조선조정에서 이앙법의 도입을 적극 반대했겠는가. 딱 모내기할 무렵에 비가 얼마나 내리는가 최근의 기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실 노예노동이란 모든 노동 가운데 가장 비용이 비싼 노동에 속한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결혼까지 시켜준다. 늙어 일할 수 없게 되어도 어찌되었거나 주인이 책임져야 하고, 아직 일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조차 자기가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노예에 의지해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필요한 노동력 만큼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기에 생산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생산은 정해져 있는데 정작 생산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니 모자른 부분을 다른 수단을 통해서라도 벌충해야 한다. 대신 노동에 대한 대가는 폭력과 억압으로 대신한다.
실제 이미 조선 중기만 가도 농업기술의 발달로 생산이 증대되자 외거노비를 중심으로 노비에 대한 통제가 헐거워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노비를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기보다 토지를 양인에게 맡기고 그로부터 소작료만을 받아챙기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었다. 이때부터 노비는 단지 소유주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생산보다는 일상을 보조하는 역할로써 소유주의 신분의 고귀함을 과시하는 도구로 쓰인다. 비효율만 오히려 더 커진다. 다만 그럼에도 전근대의 농업사회에서 생산의 증가는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한정된 생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에서 충분한 노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지배층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이유일 것이다. 조선의 전세는 동시대의 어느 왕조와 비교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재정은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었다. 향촌을 도덕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양반지주들 역시 정작 생산을 담당하는 소작농들에 상당한 양보와 배려를 베풀고 있었다. 그 지출을 책임지던 것이 바로 노비들이었다. 그조차도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더욱 효율이 떨어지면서 점차 와해되어가고 있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신분에 의한 인신의 예속보다 생산수단을 통한 경제적 통제가 더 강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과연 그 상태로 계속 이어졌다면 조선에서도 노비해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겠는가. 말했듯 결국은 지출의 문제다. 목표로 한 생산이 있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결국 억압과 강제에 의한 생산의 증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를테면 근대 이후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나타난 농노제의 심화현상이 그 예다. 서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는데, 그와 보조를 맞추어 농업으로 더 큰 이익을 기대하려면 역시 농노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역시 효율의 문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더 많은 쌀을 수출하기 위해서 조선총독부와 결탁하여 농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더 강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수단이다. 인간은 목적이 아닌 단지 수단이었다. 목적이 아닌 단지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을 바로 노예라 부른다. 존엄이라고는 없는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든지 소모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파괴할 수 있다. 더 큰 목적을 위해서. 더 큰 가치를 위해서. 노골적으로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군대가 아닐까. 군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군인에게 지불할 돈이 없다. 강제로 징발하여 최소한의 비용으로 부린다.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압으로 인신을 약취하여 그로부터 비용을 절약한다. 기꺼이 징집된 병사들은 그같은 목적에 동의해야 한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어떤 법안들을 본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 청년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언제든지 적당한 이유만 있으면 아무때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일정한 연령 이상에서는 오히려 임금을 삭감하여 지급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채용기간을 늘리고 형태도 다양화한다. 결국은 고용이 불안해지고 노동자의 소득은 줄어든다. 오히려 노동자 자신이 그같은 제안에 동의한다.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 열악한 조건에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생산은 늘지 않고 비용은 높아진다.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조이고 줄이고 아끼며 다그치다 보면 나머지가 생기게 된다. 그것이 곧 이익이다.
통제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비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지에 대한 비용이다. 인간이 스스로 존엄하고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그 비용은 함께 비싸진다. 노예노동이 가장 비싼 노동이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담 스미스가 노동가치론을 주장한 것은 그 주체인 인간의 불가침적인 존엄과 가치 때문이다. 너무 쉽다. 너무 값싸다. 너무 간단하게 모든 것이 처리되고 말았다. 갑질은 상대가 저항할 수 없을 때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결과를 예상해본다. 역사는 때로 거칠게 강물을 거스르기도 한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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