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정복자들은 점령지의 모든 것을 전리품이라 여기고 마음대로 약탈하고 점유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당연히 더 많은 것을 가진 만큼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하는 기존의 지배층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적극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피지배픙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저항을 주도할 경우 아무리 강력한 정복자라도 결국 상당한 수고와 피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심지어 때로 저항이 너무 심할 경우 애써 정복한 땅을 고스란히 다시 내놓아야 하는 경우마저 있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점령지에 대한 지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기는 어차피 전쟁을 일으켜 남의 땅을 차지하려는 것도 그 땅에 속한 것들을 탐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상대의 땅에서 나는 것들을 마음대로 자기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막대한 비용과 수고, 무엇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었다. 그 땅을 소유한 소수의 지배층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 땅을 소유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기존의 지배층을 포섭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요구대로 움직일 협력자를 새로운 지배층으로 올리거나. 물론 공짜는 아니다. 지배층을 포섭하는 것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유를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힘을 빌려준다. 더 이상 군사적인 침략을 통한 직접적인 지배는 사라졌다. 대신 그 나라의 지배층을 이용하여 단지 필요한 자원만을 확보하는 보다 지능적인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조선왕조에서는 유교적인 민본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기에 기존의 도덕적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농민의 눈치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배층은 대부분 지주였지만 그럼에도 상당부분 소작농을 위한 배려들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침략자였던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의 피지배층에 대한 어떤 도덕적 책임도 가질 필요 없었고, 따라서 더 자유롭게 노골적으로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더라도 부담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제국주의에 더 이익이 되는 것은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제공할 수 있었던 지배층, 바로 지주들이었다. 토지에 대한 소유를 강화하고, 소작농에 대한 지배를 보장한다. 대신 자신들이 필요한 가격에 필요한 만큼의 쌀을 자신들을 위해 판다. 명목은 수출이지만 내용은 지주로 하여금 대리케 한 농민에 대한 수탈이며 착취였다. 약탈이었다.
비단 일제강점기의 조선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해전 베네수엘라에서 당시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를 비롯 소수 독점자본이 소유하고 있던 다수의 기업을 국유화하며 오히려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작 자국에서 생산된 자원들은 선진국으로 헐값에 팔려나가고 생산에 동원된 국민들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만을 받는다. 선진국들은 더 싼 값에 자원을 사들여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자원을 팔아넘긴 소수의 독재자나 자본가 역시 부를 축적하는데, 정작 다수의 국민들은 그로부터 소외된 채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자원을 팔아 남긴 이득이 전혀 자국의 경제에 재투자되고 있지 않다. 그런 모순된 현실에 반발하는 다수의 국민들을 억압하고자 심지어 선진국들은 독재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명목은 수출치다. 그러나 결국 선진국을 대신하여 약탈과 착취를 돕는 비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경술강제병탄 전까지는 어떠한가.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으로 팔려간 쌀들은 정당한 거래에 의해 넘어간 것들이었다. 그러나 실제 당시에도 너무 많은 쌀이 일본으로 팔려가면서 오히려 농민들이 먹을 쌀마저 부족해지자 지방관 가운데는 더 이상 쌀이 일본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곡령을 실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산업을 지키기 위해 외국과의 무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간섭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국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주권행사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그같은 조치를 취할 재량마저 제한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무역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침략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수출이고 수탈인가. 누구의 입장에서 보았고 판단했는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들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출이다. 파는 입장에서도 역시 수출일 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먹을 쌀마저 빼앗기고 굶주려야 했던 농민의 입장에서는 수탈에 불과하다. 정당하게 지대를 거둬들여 쌀을 팔았을 뿐인 지주의 뒤에 버티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 조선인 중개인이 처녀들을 유인하여 성노예로 넘겼어도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일본정부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해한다. 그것을 수출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바로 이곳 한반도에.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쓴다면 일본으로의 쌀유출은 단지 수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고 명확한 사실 그대로다.
단순히 지주와 소작농과의 관계가 아니다. 지주와 일본 상인과의 거래가 아니다. 지주는 대리인이다. 그만한 대가를 받고 그들을 위한 역할을 해준다. 그러기 위해 그들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한다. 지주 역시 조선인이니까. 조선인이 일본에 쌀을 팔았으니 그것은 수출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은 복잡한 현실의 이유들 때문이다. 여전한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제국주의적인 속성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같은 세계의 질서 한가운데 우리들 자신 역시 있다. 어쩌면 우리들 자신도 누군가를 약탈하고 착취한다. 역사란 결코 교과서처럼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세계를 알고 세상을 이해한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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