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는 전근대의 어느 사회인들 안그랬을까? 어차피 힘을 가진 것은 노인이었다. 판단도 결정도 오로지 노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념으로써 강제하지는 않았었다. 나이를 먹으면 노인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다. 더 정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다음 세대가 그 뒤를 이어받는다.
노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어린 놈이 뭘 안다고..."
"어디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말조차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행동하는 것도 먼저 허락을 받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그저 조용히, 가만히, 쥐죽은 듯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연륜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경험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려 한다. 사회는 정체되고 퇴행될 뿐이다.
유교의 경로사상이 가장 안좋은 방향으로 발현된 경우일 것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지 노인이라고 무작정 복종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는 항상 바뀌고 지금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젊은이들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갈 지금을 스스로 만들고 발전시켜나간다. 그런데 노인이 자신의 기억과 경험만을 앞세워 그를 누르려 한다. 어째서 동아시아 사회는 그토록 오랫동안 발전없이 정체되어 왔었는가.
송시열이 처음부터 대동법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나서서 대동법의 실시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단지 스승인 김집이 대동법에 반대하고 있었기에 그를 거스를 수 없어 반대입장에 섰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그리 주장했으니까. 스승이 그리 여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자기도 그렇게 여기고 주장해야 한다. 갈렐리오 갈릴레이는 당시 진리로 여겨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새로운 사상이나 이념에조차 공자의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성의 권위를 부정할 수 있었던 유럽과 기성의 권위 아래 종속되었던 동아시아, 그 차이는 명확하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 자신들이 아는 것을 젊은이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 자신들을 가능했는데 젊은이들은 전혀 안되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삶이다. 앞으로는 젊은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야 할 그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강제로라도 젊은이들을 길들이려 한다. 자신들처럼 고생하게.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도록.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할 수 있도록.
노인들이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다. 젊은이들을 길들이고 싶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다. 나아가 존경받고 싶다. 우러름받고 싶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라 여긴다. 그런 교육을 시켜야 한다. 가게 앞에서 오줌을 싸고도 어른에게 감히 그런 걸 따져묻는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노인들이 생각한다. 지하철에서도 흔히 보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나이를 앞세워 끝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한다.
노인들을 더이상 공경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염치를 모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부모를 공경한 나머지 부모에게 죄를 짓게 한다면 그것은 가장 큰 불효일 것이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어린 자식을 내다버린다. 노인이 자기가 살자고 자식이 그 자식을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과연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어린 자식을 버려서라도 자기를 봉양하려는 자식들을 기특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부모도 뭣도 아닐 것이다. 나이를 앞세워 어린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에 길들여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몰염치가 일상화되어 버린다. 그 혐오스런 모습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경로인가.
가장 큰 효는 부모보다 더 잘되는 것이다. 더 부귀하게 더 풍족하게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만이 부모가 그동안 자식을 위해 들인 노력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일 것이다. 굳이 노인들이 지나온 삶을 미화할 필요 없이 자식들이 잘사는 지금의 모습이야 말로 그들의 보람이며 긍지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유신을 일으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던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유신 이전의 일본의 역사마저 긍정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움켜쥐고 있다.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의 것이다. 자신의 것이다. 젊은이들을 침묵시킨다. 젊은이들을 가두고 억압하여 복종케 한다.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시대는 발전하지 않는다. 무려 수십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 말한다. 그런 노인들을 공경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경쟁자다. 노인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에게 더 불안한 일자리와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처우를 강요한다. 그런 정책들을 지지한다. 과연 그런 것들마저 노인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르고 복종해야 하는가. 젊은이들이 먼저 살아야 한다. 하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역사교과서만 바꾸면 역사가 바뀔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어째서 유럽에서 다른 문명과는 달리 급격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 과거를 단절한다. 지난 권위를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유럽의 역사는 반역의 역사다. 불경의 역사다. 노인들에 사로잡힌다. 부모니까. 혹은 연장자니까.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역사의 주인은 노인이 아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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