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 - 기업과 자본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

까칠부 2015. 10. 9. 05:41

8년이라는 시간이 뜬금없다. 완결되지도, 그렇다고 연속되지도 않는다.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작스레 '8년 뒤'라는 자막이 뜨고 인물도 배경도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그냥 8년이 지나가고 만다. 중간에 자막을 놓친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빗대어 말하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돈을 벌고자 한다면 굳이 객주따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를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아야 한다. 좋은 소를 알아보고 제값에 팔 수 있어야 한다. 소를 사고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적정한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소를 찾고 소를 살 손님을 찾는 것은 발품이고, 서로 욕심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마음품이다. 직접 소를 기르고 관리한다면 그 수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를 위해 무려 87명이나 되는 사람을 부리고 한 달에 240냥이라는 큰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저 벌어놓은 돈으로 이자만 놓더라도 평생 아쉬움 없이 호사를 부리며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과 동기를 위한 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가 필요한 사람들은 좋은 소를 살 수 있고, 소를 팔려는 사람들은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거래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용되어 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어쩌면 자신처럼, 혹은 자신보다 더 크게 될 수 있는 재능과 가능성이 숨어 있다면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큰 보람일 것이다. 굳이 신석주(이덕화 분)가 자신의 비밀을 엿본 죄로 징치당하고 쫓겨나는 길소개(유오성 분)의 손에 2냥이라는 돈을 쥐어주고 있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의 운과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을 남겨 자신의 뒤를 잇게 한다. 천봉삼(장혁 분)에게서 이후의 송파마방의 미래를 본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여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한다. 더 많은 이익을 올리고 더 크게 사업의 규모를 키움으로써 더 많은 고용과 더 높은 임금을 통해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돕는다. 급여를 받는 노동자의 수입은 곧 그들의 소비로 이어지며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들도 그렇게 시장으로 흘러든 개인의 수입을 통해 소비되며 다시 이익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특정 개인의 소유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는 기업의 성패와 명운에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세금까지 들여가며 도우려 하는 이유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죄도 악도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모두를 이롭게 풍요롭게 만든다. 그를 위해서는 마땅히 더 많은 기여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격적인 투자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은행의 역할일 것이다. 기업은 스스로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항상 벌어들이는 그 이상을 써야만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설비와 고용을 늘린다. 그 부족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은행의 역할이다.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상의 자본을 공급함으로써 생산을 늘리고 경제의 규모와 활력을 키운다. 은행이 기업에 빌려주는 돈의 상당부분은 당연히 개인이 맡긴 예금이며, 이는 다시 이자와 고용을 통해 개인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오히려 앞장서서 건실한 기업을 파탄내고 개인의 삶까지 희생시킨다. 하기는 김학준(김학철 분)은 은행이라기보다는 사채업자에 가깝다.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이 우선이다.


돈을 빌려주며 술수를 부리고, 그 돈을 이용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천가마방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오히려 경쟁력을 갖추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한 송파마방까지 일부러 찾아가 편지풍파를 일으키고는 그것을 통쾌해한다. 아니 아쉬워한다. 잔치가 아닌 송파마방이 망한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열등감일 것이다. 신석주에 대한 질투와 김보현(김규철 분)에 대한 원망도 결국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그들처럼 당당히 모두의 위에서 우러름받으며 살고 싶다. 그 근본원인을 모른다. 신석주와 김학준이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다. 길소개에게 결여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원래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것을 뜻했었다. 단순한 돈벌이가 아닌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다.


시대가 바뀌는 비감을 거칠지만 솔직한 송치만(박상면 분)을 통해 담담하게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송파마방의 쇠살쭈 조성준(김명수 분)은 여전히 자신의 의형일 뿐이었다. 송파마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굴과 이름은 물론 서로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훤히 꿰뚫는 말 그대로 가족이어야 할 터였다. 인정이 그들을 묶는다. 단순히 송파마방이 탐나서가 아니다. 송파마방은 어디까지나 의형 조성준의 것이기에 마찬가지로 의동생인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천봉삼이 말한 객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의 무게와 같은 것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없다. 당연한 것은 그저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배신감마저 느낀다. 조성준과 자신이 가족이라면 천봉삼은 단지 남일 뿐이다. 송파마방을 위해서라도 천봉삼에게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조성준의 말에 그는 차라리 분노한다. 바뀌어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몽니랄까? 따라갈 수 없다면 차라리 모두를 자신이 있는 원래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싶다.


천소례(박은혜 분)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어린 동생을 버리고 도망쳐왔던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보려 한다. 돌아가려 한다. 돌아갈 곳을 만든다. 그러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괴롭고 고단한 의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또다시 8년이다. 원수인 김학준의 곁에서 그를 위해 웃고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길소개는 다시 뒤를 지우고 앞으로 나가려 한다. 죽은 아버지의 허상만이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8년동은 그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어 갔을까. 천소례가 천봉삼인지 알아보라 보낸 오득개(임형준 분)가 하필 어눌한 최돌이(이달형 분)를 만나 전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돌아간다. 운명은 그들 남매를 아직 만날 때가 아니라며 갈라세우고 있다.


아쉽다면 일상의 대화와 관계가 결여된 듯한 천봉삼의 캐릭터일 것이다. 나머지가 없다. 낭비되는 대사나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라 분량도 가장 많은데 의도만으로 채워지니 아무리 힘을 빼려 해도 힘만 들어간다. 연기는 분명 훌륭하다. 너무 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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